산군. 그를 지칭하는 것으로는 세이린산 인근 마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불리기 시작한지 4, 50년 쯤 지나서야 그는 그 뜻이 “산의 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뽐낼 일도 아니었다. 그저 이 산에 자신보다 강한 동물이 없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따금 산맥을 타고 북쪽에서 젊은 동포가 내려오는 일도 있었지만 족족 물어 죽인 결과일 뿐이다. 다른 동포들은 20살이 되기 전에 노쇠해 죽는 것을 자신은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기에 영물이라는 모양이지만, 그 역시 크게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크게 집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역시 산다는 건 적당히 즐거운 법이고, 굳이 죽을 이유가 없는데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죽음을 억지로 찾아 나설 것도 없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가끔 산에 올라오는 인간들이 자신이 멧돼지를 먹어치운 것에 감사하거나, 반대로 배고플 때 눈에 띈 인간을 먹은 데에 “산군의 천벌”이라고 벌벌 떠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한 인간이라는 건 늘 그런 이상한 동물이었다. 뭐 가끔 공물이라면서 고기를 두고 가는 건 좋았지만, 그뿐이다. 산에 사는 건 아니지만 가끔 와서 동물을 잡아가거나 나무를 베어가고, 배고플 때 눈에 띄면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덤벼서 뜯어먹을 뿐인 존재. 그게 인간이었다.
다만 이건 좀, 어쩌면 좋을까 싶다.
“…….”
인간 치고는 퍽이나 탁한 눈(전에 한 번 공물로 받은 적이 있는 그것처럼 생겼다. 아무리 봐도 산에서는 못 살 것 같이 생긴, 다리도 없고 몸통도 꼬리도 이상한…… 뭐지?)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를 그는 내려다보았다. 몇 번 멀리서 본 얼굴이다. 하늘색 털은 이 산속에선 눈에 띈다. 아직 어린 인간 수컷. 곁에 늙은 인간 암컷을 데리고 나물이니 버섯이니를 따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닌 지금 크게 관심이 가는 대상은 아니었다. 살도 별로 없어 보이고.
다만.
“저는 산군님이 직접 물어 죽이러 오실 만큼 나쁜 짓을 한 걸까요…….”
한숨처럼 뱉는 말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죽기 직전의 짐승이 내지르는 단말마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할머니를 버리고 여기까지 도망쳐 왔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죽기 직전인데도 희미하게 웃는 것이 이상했다. ‘할머니’가 평소에 같이 다니던 그 늙은 암컷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글쎄. 무리 생활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무리 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들을 떠올려 봐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다. 자신이 등지고 있는 쪽에서는 지금도 맹렬한 기세의 산불이 일렁이고 있었으니까.
겨울에 불이 나는 건 그다지 보기 드문 일도 아니다. 유난히 물이 없는 해에는 한 겨울 동안 서너 번씩 난리가 나는 일도 있었다. 이번 불은 근 10년 만이었으나 그 10년 동안 못 부린 기승을 한 번에 부리는 듯 엄청난 기세였다. 열기를 느끼고 잠시 바람 반대편 작은 산으로 피해있던 그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어 상태를 보러 큰 산으로 돌아올 정도로는 큰 불이었다.
이렇게 큰 불에 늙은 암컷이 살아남는 것은 무리 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매우 힘든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산군님, 물어 죽이시려면 지금 물어 죽여시주면 안 될까요. 저는, 이제…….”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소리. 그는 동그란 붉은 눈을 끔뻑이며 하늘색 머리통을 봤다. 이제는 가늘게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먹히기 직전에 사람이 내는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지금 발밑의 어린 수컷은 자신이 먹히는 게 두려워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먹어달라고 간청할 정도니까.
인간이 이해가 안 간 적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렇게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 어린 생명이 자신의 생을 내던지는 것을 보는 것도. ……거기에 이런,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든 것도.
불길은 여전하다. 바람도 계속 자신의 등을 때리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 떠난다면 이 어린 수컷이 그 열기에 집어삼켜질 것이라는 건 자명했다.
그는, 만약 인간이었으면 한숨을 쉬었을 터나 안타깝게도 100년 가까이 살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호랑이의 몸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입을 벌리고, 어린 수컷의 가죽……이 아니라 옷?이라고 하는 가죽도 뭣도 아닌 것을 물었다.
“엣…… 아…… 에?”
떨어지지 않게 어린 수컷을 문 그는 곧 세게 땅을 찼다. 산을 질주하기 시작하는 네 다리. 붉은 털에 감싸인 몸이 거구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불이 삼킨 산을 타고 올랐다. 임시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작은 산까지는 그의 튼튼한 네 다리로는 금방이다.
인간이 산에서 동물을 한두 마리 잡아가던 것을 보면 자신이 먹는 걸 조금 나눠주는 것으로 족할 터다. 이 덩치에 많이 먹지도 않을 테고. 다만 털도 제대로 안 난 이 허연 몸이 지금 같은 한겨울에 얼어 죽지는 않나 싶지만…… 품에 끼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직도 뭔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어린 수컷을 물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달렸다.
그 ‘어린 수컷’의 이름이 “쿠로코 테츠야”라는 것을 알고, 산군이라는 호칭 대신 그에게 “카가미 타이가”라는 이름을 받는 것은 조금 후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