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제님께 써드린 훈훈한 멘션(?)
학교 축제에서 메이드복으로 노는 흑화.
묵찌빠는 '노는' 때문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본주의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쿠로코가 답지도 않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세이린 농구부가 클럽 활동비를 충당하기 위해 분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필요성은 알지만, 충분히 이해하지만…….
“쿠로코- 안 그래도 무표정이면서 그렇게 눈까지 죽은 생선눈깔이면 접객 못 한다? 손님 오셨어-.”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쿠로코는 어깨를 치며 말하는 코가네이의 목소리에 큰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면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오가 다 되가는 지금, 아직 빈교실로 남아있는 3학년 교실의 세이린 농구부 메이드 카페는 한창 바쁠 시간이다. 선배들에게만 일을 떠넘기는 짓은 할 수 없기에 쿠로코는 서둘러 교실 뒷문-현재 카페 입구-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들. 자리에는 쿠로코 메이드가 안내하겠습니다.”
눈부신 미소와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명랑하게 말하는 건 혼자만 집사 차림인 세이린의 여장이다. 농구부 선수들이 보면 저절로 등에 식은땀이 나는 그 미소는 다른 무엇보다 카페가 성업 중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 이런 부끄러운 꼴까지 하고서 손님마저 없으면 그거야말로 대참사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쿠로코는 (애써)생각하며 “엣? 어디?”라며 역시 자신을 못 찾는 손님을 앞에 손을 들어 보였다.
“쿠로코 메이드는 접니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가씨들.”
외부 관람객인 모양인 사복 차림의 소녀들이 짧게 비명을 질렀으나 오늘만 해도 10번 가까이 본 반응이기에 쿠로코는 개의치 않았다. “이쪽으로 오시죠.”라며 앞장서자 한 박자 후에야 소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가석으로 안내하고 주문서를 작성한 후 한 장을 테이블 위에, 한 장을 자신이 들고서 “그럼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인사한 후 주방 쪽 카운터로. “와- 의외로 예쁘다-.”라고 뒤에서 소녀들이 제 딴에는 작은 소리로 재잘거리는 것이 들렸으나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도 물론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라면 또 모르겠지만 15살이나 돼서 여장이 예쁘다니. 그야 워낙 근육이 안 붙는 체질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3번 테이블, 아이스라떼 하나랑 레모네이드 하나…….”
“미토베 선배, 5번 테이블 밀크티랑 아이스라떼!”
쿠로코가 말을 마치기 직전에 거의 뛰어들다시피 해서 카운터로 온 커다란 그림자가 소리쳤다. 시끄러운 교실 안에서 아주 민폐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충분히 튄다. 쿠로코는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끼며 옆에 서있는, 세이린 농구부 메이드 카페에서 2번째로 큰 메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카가미 군, 뛰지 마십시오. 먼지 납니다. 그리고 소리 지르지 마세요. 원래도 목소리 크면서 소리까지 지르면 손님들에게 방해되잖습니까.”
“그치만……!”
“3번 테이블이 아이스라떼랑 레모네이드, 5번 테이블이 밀크티랑 아이스라떼지? 싸우는 게 일상이란 건 알지만 오늘은 외부 관람객도 많고, 여자 분들에게 190cm이나 되는 남자 메이드가 화내면서 소리치는 건 가볍게 호러니까 카가미는 너무 소리 지르지 마. 쿠로코도 도발하지 말고.”
뭐라 소리치려 한 카가미는 바쁜 미토베 대신 나온 츠치다의 말에 불만스러워 보이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조금만 기다려-.”라는 말을 남긴 츠치다가 주방 안쪽으로 사라지자마자 크게 한숨을 쉬며 카운터에 거구를 맡기는 카가미. 거의 시험기간을 방불케 할 만큼 기운이 없는 그에게 쿠로코도 조금 걱정이 되어 작게 “무슨 일 있었나요?”라고 묻자.
“내 테이블 손님, 대학생?인 거 같은데…… 나 보자마자 둘이서 웃기 시작하더니 계속 귀엽다고 그러고…… 덩크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다리…… 계속 보고…….”
그래서 주문을 받아 도망쳐 왔다, 고.
“아씨…… 미국이었으면 고소해 버리는 건데…….”
다리를 본 걸로 고소라니, 섬나라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발상이다. 카가미는 묘한 데서 아메리칸 스타일이 나온다고 쿠로코는 생각하며.
“소송 사회네요. 보지 말라고 말씀은 하셨나요?”
“했어! 했는데…….”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카가미였다.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거겠지. 리코나 알렉스 같은 여장부 타입이야 어쨌든, 그렇지 않은 여자에 대해서는 꽤 껄끄러워 하는 카가미다. 얼굴이 뻘개져서는 키 때문에 허벅지가 다 보이는 스커트를 끌어내리며 “보지 마, 요…….”라고 말하는 게 눈에 보였다. 뭡니까, 그거. 서비스입니까. 그렇게 말해서 안 볼 리가 없잖습니까. 저 같아도 봅니다. 오히려 들춥니다.
카가미가 알면 분개할 생각을 하면서도 그를 조금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은 쿠로코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카가미가 묘하게 가학심을 자극하는 건 일단 접어두고, 설사 외부참관객인 여대생들이라도 카가미의 허벅지를 멋대로 감상하는 건 달갑지 않다. 카가미에게 맡겨둬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카가미 군.”
“에?”
카가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쿠로코는 먼저 나온 3번 테이블의 메뉴를 트레이에 옮겨 돌아갔다. 정중히 인사하며 서빙한 후 다시 카운터로. 그 사이에 나온 5번 테이블의 메뉴를 트레이 위에 올려둔 카가미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잘 듣지.
“가죠.”
“어, 어…….”
음료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걷는 카가미의 뒤를 따라 쿠로코도 5번 테이블로 향했다. 쿠로코를 보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여대생(추정) 두 사람. 하지만 쿠로코는 그를 무시하고 말없이 서서 카가미의 서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실례하겠습니다, 아가씨. 갑작스럽습니다만 아가씨들께 이벤트를 하나 해도 될까요?”
“이벤트?”
여자 두 사람과 거의 동시에 입을 열려고 한 카가미의 발을 쿠로코는 콱 밟아주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건 평소에 농구부 연습에 단련된 결과다.
“네. 지금부터 저, 쿠로코 메이드와 카가미 메이드가 묵지빠를 하겠습니다. 한 쪽에 거시고, 건 쪽이 이기면 음료가 무료가 됩니다.”
“와-! 진짜요?”
옆에서 카가미가 작게 “야! 쿠로코!”라고 소리쳤지만 역시 무시하고.
“네. 하지만 지면 이긴 쪽의 소원을 하나 들어 주셔야 합니다. 물론 금전적인 부담이 가는 소원은 아니니 안심해 주십시오.”
그 말에 놀라 얼굴을 마주 보는 두 여대생. 쿠로코는 아무 말 없이 그녀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몇 마디 나누더니.
“그래요, 그럼.”
하고 승낙했다.
“그럼 우리는 카가미 메이드!”
까르르 웃으며 지목하는 두 사람.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한 쿠로코가 그제야 카가미와 마주했다. 마주 하자 이제는 눈으로 당황과 당혹감을 전하는 카가미였으나 쿠로코는 괜찮다는 뜻만을 표했다. 자신은 있다. 아마, 100%.
“가위바위보!”
여대생 두 사람의 높은 목소리. 거기에 맞춰 오른손을 내민 두 사람의 승패는…… 카가미가 가위, 쿠로코가 바위였다. 일단 승기는 쿠로코에게로. 순간 마주보는 두 사람. ‘승부’가 시작되자마자 카가미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하여튼 이 사람은.
쿠로코는 비스듬하게 아래로 향해 있던 주먹을, 정면으로 치켜들었다.
“카가미 군.”
“아…… 에?”
“카가미 군.”
눈을 똑바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자, 카가미가 주저하면서도 자기도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 시합 중에 몇 번이나 마주하는 눈빛과 주먹. 반사적으로 카가미가 천천히 주먹을 쥐고, 쿠로코의 주먹에 부딪치는 그 순간.
“묵묵 묵!”
찰나.
경직. 정적.
“이겼습니다.”
“에에-?!”
거의 비명을 지르는 두 여대생과 주먹을 내민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카가미. 이런 술수 같지도 않은 술수에 넘어가 졌다는 게 충격인 모양이었다. 아니, 당신이 이기면 곤란합니다만.
“그럼 아가씨, 송구스럽습니다만 쿠로코 메이드의 사소한 부탁을 하나.”
말하고, 쿠로코는 여전히 경직 상태인 카가미의 어깨를 붙잡고 그 큰 몸을 그녀들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손을 그대로 아래로 내려, 그의 튼튼한 허벅지를 감쌌다.
“힉?!”
“죄송합니다만 카가미 메이드의 다리를 보지 말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제 거라서요.”
“……에…….”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카가미 마냥 경직한 여대생 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서, 쿠로코는 담담히 다시 입구로 향했다. 역시 입구 쪽에 있던 키요시가 “하하, 보는 것보다 만지는 게 100쯤 성희롱이야 쿠로코-.”라며 드물게 정론을 말하고 휴우가가 “어이! 카가미가 새빨개져서 건전지 바닥난 로봇인형처럼 움직이잖아! 저래갖고 일이 되겠냐?!”라며 성을 냈지만 쿠로코는 못 들은 체 하며 새로운 손님에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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