젱님 그림을 보고 쓴 흑화.
그리고 젱님은 트윗을 삭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기만 한 형상이었다. 공룡 마냥 척추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뾰족한 무언가부터 꼬리에 날개까지.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사람과 똑같은 형상을 취할 수도 있는 카가미였으나 원래 튀어나와 있는 것을 넣어두고 있는 건 갑갑하다는 모양이었다. 꽉 끼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라던가.
그래서인지 카가미는 쿠로코밖에 없을 때는 이형의 모습을―――누가 봤다간 대번에 악마라는 걸 알아차리고도 남을 모습으로 어슬렁거렸다. 그러지 말라고 한 마디 하면 꽤 굵고 힘도 센 모양인 꼬리로 바닥을 탕 치며 무언으로 항의했다. 하고 있는 짓은 상당히 위협적인데다 카가미는 원래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역마 처지에 대놓고 거부할 수는 없어서 입을 비죽 내밀고 말없이 노려보는 건 뭐라고 할까…… 토라진 어린 아이 같다고 할까…….
악마면 좀 더 악마답게 굴면 좋을 텐데. 그러면 쿠로코도 이런 식으로 묘하게 신경 쓸 일이 없다. 선을 그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카가미는 그러지 않으니까. 저런 형상을 하고서도.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산만하게 늘어놓으며 쿠로코는 손을 뻗었다. 오늘 마을 아이가 성당에 두고 간 장난감 공이 꽤 마음에 드는 듯, 카가미는 아까부터 그걸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더불어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꼬리도 정신이 없다. 개처럼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꼬리는 경험상 그가 꽤 기분이 좋다는 걸 말해주었다. 지하세계에는 저런 장난감이 없는 걸까. 생각하며 쿠로코는 아무 생각 없이 뻔은 손을 그의 꼬리로 가져갔다. 타이밍 좋게 자기 쪽을 향하며 위로 올라온 꼬리를, 반사 신경 하나만은 좋다고 칭찬 받는 순발력으로 붙잡
“흐이이?!”
자 카가미가 기성을 내지르며 튀어 올랐다. 아니, 날아올랐다고 해야 하나. 안 그래도 신장 190cm에 달하는 그는 천장과 머리 사이의 간격이 그다지 크지 않은데, 날갯짓까지 하며 튀어 오르면 그야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다. 쾅 소리와 동시에 다시 밑으로 떨어지는 몸. 고무공을 튕긴 것 같다고 쿠로코는 생각했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카가미에게는 통각이 있다는 것이다.
기성에 이어 짧게 악 소리를 내고 카가미는 곧장 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야 아프겠지. 쿠로코가 있는 성당은 석조 건물이다. 쿠로코는 카가미와 달리 사람이기에, 아무리 상대가 악마라고 해도 자기 때문에 놀라서 머리를 박으면 죄책감을 안 느낄 수 없었다. 괜찮냐고 물으려고 입을 연 순간, 고통에 웅크리고 있던 카가미가 홱 고개를 들고 쿠로코를 보았다. 분명 으르렁거리며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표정은, 어째선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에.
“진짜지?!”
“아니, 뭐가…….”
질문은 해놓고서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 듯한 카가미는, 질문의 의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쿠로코를 두고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쿠로코에게로 밀착하는 거구. 아무리 사역마라고는 하지만 이만큼 거리가 가까우면 위험하다. 그것도 카가미처럼 고위급 악마는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려고 한 쿠로코였으나 그보다 빠르게 카가미는 움직였다.
어느 샌가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마저 보일 만큼 가까이에, 카가미. 쿠로코가 무의식중에 숨을 멈춘 순간, 무언가가 닿았다. 아랫도리에.
손. 카가미의.
“뭐 합니까, 당신?!”
“하자며!”
“뭘요?!”
“정기 교환!”
정기 교환. 정기 교환이 뭐였지. 정기는, 그, 精氣일 테니까, 그러니까, 그건…….
“미쳤습니까?! 내가 언제요!”
“지금! 꼬리 잡았잖아!”
이제 와서 딴소리냐는 듯한 카가미의 말투에 쿠로코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야 잡았다. 잡았지만, 타의는 없었다. 그냥 기분 좋은 듯이 움직이기에 별 뜻 없이. 그게 악마한테는 그런 사인인 줄은 몰랐다. 물론 사역마까지 부리면서 거기까지 공부하지 않은 쿠로코에게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뜻 아닙니다! 그냥, 흔들리길래!”
“하아?! 장난 하냐?! 그런 뜻도 아니면서 어떻게 꼬리를 잡을 수가 있어! 너 신부잖아! 신부가 그런 짓 해도 돼?! 건드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대체 꼬리가 뭐라고 책임 소리까지……. 그건가. 뭔가 굉장히 중요하면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그런 기관인 건가. 그런 기관을 대체 왜 내놓고 다니는 겁니까. 아니 뭐 소환했을 때도 알몸이었으니 애초에 뭘 가린다든가 하는 개념이 없는 것도 같습니다만 그래도. 아니, 일단.
“손 떼고 얘기해요! 주무르지 말고!”
소리를 질러도 카가미는 안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옷이라는 걸 원래 안 입는 탓에 쿠로코의 옷도 벗길 줄 모르는 것일까. 그건 다행이지만 아무리 신에게 바친 몸이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주물러댔다간…….
“아, 쿠로코 좀 섰…….”
카가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쿠로코는 신언을 재빠르게 영창하며 같은 문구가 손바닥에 새겨져있는 오른손으로, 자기보다 한참 큰 몸을 날려버렸다.
동정의 위기였습니다…….
길게 숨을 뱉으며 어느 샌가 식은땀이 난 것을 닦고 있자, 반대편 벽으로 날려버린 카가미가 “야!”라며 빽 소리를 질렀다.
“너는 신부라는 게 툭하면 폭력이냐?!”
“대화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닙니다만.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해하게 만든 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생각 없습니다.”
아무리 남성체라고는 하지만 악마한테 손을 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정말로 정기를 있는 대로 빨려서 산송장이 될지도…….
“잘 해준다니까! 진짜라니까!”
“됐습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거절에 카가미의 기분이 눈에 보이게 안 좋아졌다. 부풀린 뺨이라든가, 튀어나온 입이라든가, 신경질적으로 벽과 침대를 툭툭 쳐대는 꼬리라든가.
“쿠로코 바보! 멍청이! 말미잘! 동정!”
마지막으로 큰 소리를 내며 사이드 테이블을 꼬리로 넘어뜨리더니, 카가미는 소리치고서 창문 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쿠로코가 말릴 새도 없이 날개를 펴서는 밤하늘로 사라져버렸다.
사역마 신분에 멀리 갈 수도 없는 데다 무슨 일을 저지르면 쿠로코에게 바로 전해지니 사고는 안 치겠지만…….
쿠로코는 한숨을 쉬며 쓰러진 사이드 테이블을 바로 세우려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카가미가 기분 좋게 가지고 놀던 장난감 공이 바닥에 구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이드 테이블을 세우고서 공을 주워든 쿠로코는 가볍게 한 손으로 공을 공중으로 튕겨 보았다. 이미 어린이 소리 들을 나이를 한참 지난 쿠로코로서는 이런 게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걸로 카가미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야.
내일은 아침 일찍 시장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쿠로코는 잠잘 채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