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열두 번도 더 싸우는 쿠로코와 카가미였으나 그들이 아직도 친구로서는 절교, 연인으로서는 파국에 이르지 않은 것은 싸우는 이유가 지극히 시시콜콜했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 친 사소한 장난부터 시작해서 별 뜻 없이 나간 말 한 마디까지. 같은 반 학생들이나 농구부 부원들은 이제 카가미가 좀 언성을 높여도(쿠로코는 싸울 때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또 저러나 보다.”하고 제 할 일을 하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금방 평소처럼 이야기를 하니 신경 쓰는 만큼 손해였다.
이번 일도 그러했다.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 싸움의 불씨는 분명 시시콜콜한 것이었고, 말이 많지는 않지만 카가미의 신경을 거스르는 데엔 도가 튼 쿠로코가 괜한 한 마디를 하고, 거기에 카가미가 먼저 욱하는. 다른 점이 있다면 말만이라도 “적당히 해~.”라며 말리는 사람이 없이 오늘따라 단둘이었으며, 카가미가 쿠로코를 툭 밀친 곳에 학교 외벽이 있다는 점이었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쿠로코의 등이 벽에 부딪친 순간 카가미는 오른손으로 소리가 나게 쿠로코 얼굴 옆 벽을 쳤다. 쿠로코의 커다란 눈 속 하늘색 눈동자가 거의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 직후에는 그 손의 주인을. 평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큰 키와 한 손으로 퇴로까지 막고 있는 카가미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쿠로코는 순식간에 고개를 숙였다. 22cm라는 신장차는 분명 대부분의 상황에서 쿠로코에게 불리했지만, 농구를 제외하고는 사고가 단락적인 카가미의 허를 찌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 카가미의 손 위치가 쿠로코의 머리와 비슷하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깨까지 이어지는 카가미의 팔은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다는 뜻이었다. 머리를 조금 숙이는 것만으로도 쿠로코가 가볍게 그 아래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까딱하며 발을 옮겨 순식간에 카가미가 만든 작은 감옥에서 빠져나온 쿠로코는, 이런 상황을 벌어질 줄은 예상도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이의 오른쪽 어깨를 붙잡았다. 신장차와 체격차가 크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못한 상황에서 세차게 어깨를 잡고 돌리면 그야 카가미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커다란 몸이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이번엔 쿠로코가 그를 벽 쪽으로 밀었다.
근육으로 다져진 몸이 벽에 부딪치는 것과 거의 동시. 쿠로코는 팔을 뻗어 카가미의 몸 양 옆에 손을 짚었다. 순식간에 카가미의 몸은 쿠로코가 만든 작은 감옥 속에. 분명 카가미가 만든 그것보다 훨씬 엉성하고 약할 터였으나 속에 갇힌 사람은 쿠로코가 고개를 들어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어깨를 움찔했다. 하지만 이미 뒤에는 벽, 양 옆에는 쿠로코의 팔. 퇴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