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제님 리퀘스트.
유녀 카가미랑 동양 화가 쿠로코로 흑화.
이게 다 요시와라 라멘토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기야 하지만, 당최 예술가라는 인간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노래와 춤, 글씨와 그림은 물론이고 단가 정도는 그 자리에서 지을 수 있는 게 이곳 세이린관의 기본 소양이었기에 카가미도 손님의 요청이 있으면 할 수 있었으나, 할 수 있는 것뿐이다. 카가미는 스스로에게 크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할 수 있다’는 것뿐이지, 솔직히 시와 그림에 관해서는 간신히 낙제만 면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타고난 운동신경과 목소리에 의존하여 춤과 노래가 평이 좋았기에 이렇게 ‘오이란’ 소리까지 듣게 됐지만…….
“정말 하는 거야……?”
“합니다.”
이런 ‘괴짜’까지 오이란이라는 이름 때문에 오게 되었으나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카가미는 한숨을 쉬었다.
포목상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손을 안 뻗치는 곳이 없다는 테이코의 전속 화가, 쿠로코 선생님. 그것이 아카시 소개로 처음 가게에 온 쿠로코 테츠야에 대해 들은 설명이었다. 돈이 있어도 신참객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할 만큼의 위치까지 올라간 카가미다. 그런데 마치아이차야에도 부르지 않고 처음 온 그 날 당장 카가미 전용 접대실까지 들어간 시점에서 범상치 않은 양반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천하의 아카시 소개일 줄이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세이린관이지만 아직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역사가 짧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아카시가 직접 소개한 손님.
리코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카가미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가게의 명운을 좌우하는 접대. 머릿속으로 카무로 시절 키요시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되새기고서 접대실로 들어간 카가미를 맞이한 것은, 도저히 천하의 아카시가 소개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였다. 규격 외라는 소리까지 듣는 카가미와 비교할 것도 없이 중간 정도밖에는 안 되는 키에, 이렇다 할 특징이랄 게 없는 얼굴, 무표정. 순간적으로 이 사람이 그 ‘쿠로코 선생님’이 맞는지 의심한 카가미였으나 리코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리 없었다. 곧장 바닥에 이마를 거의 대다시피 하며 손님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인사를 길게 읊고, 카가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꽤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던 남자가, 바로 코앞에서 카가미를 보고 있었다.
“나으리……? 제 얼굴에 뭐라도……?”
간신히 말을 더듬지 않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던 것은 들어오기 전에 수없이 심호흡을 한 덕분인 것 같았다. 오이란이 된 후엔 그런 일이 없었지만 급이 낮았을 때는 꽤 이상한 손님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카시가 소개한 이상 어떤 손님이라도 물릴 수는 없다. 무슨 짓을 당하는 건 아닐까. 카가미가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붓과 먹, 벼루, 종이를 준비해 주십시오.”
“……네?”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남자치고는 조금 높은 목소리가 평탄한 어조로 말하고, 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붓, 먹, 벼루, 종이, 그림. 그 말을 알아듣고 카가미는 간신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카무로를 부를 수 있었다. 곧 남자가 시킨 것들이 준비되었다. 화가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그림이라도 그리게 할 셈인가. 아무리 거짓으로 먹고 사는 카게마라지만 화가 앞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카가미는 뻔뻔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카가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카무로가 나가기가 무섭게 종이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더니, 그대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필휘지. 안타깝게도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었지만, 남자의 손놀림은 그야말로 그 사자성어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보는 눈이 없는 카가미의 눈에도 알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남자의 하얀 손끝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후우, 하고 남자가 작게 입에서 공기를 빼는 소리를 냈다. 집중하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몰아서 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카가미는 그제야 자신이 남자의 그림에 홀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안이 벙벙해 남자를 보았다.
하늘색 머리카락. 같은 색의 긴 속눈썹. 내리깐 눈꺼풀. 조금 중성적인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함’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용모였다. 작지는 않지만 크지도 않은 키. 특별히 단련한 것 같지도 않은 몸. 하지만 그 손은 지금 분명,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솔직히 기루(妓樓)에 와서 카게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건, 손님으로서 최악의 태도였다. ‘오이란’이라는 통칭을 가진 카가미의 명예를 걸고 당장 방 밖으로 쫓아내고 싶을 정도로는. 그리고 쫓아낸다고 해도 소개한 아카시에게 어떻게 저런 무례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냐고 당당히 항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는.
하지만 카가미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대신, 조용히 몸을 일으켜 남자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옛날 카무로 시절 키요시에게 글과 그림을 배울 때를 생각하며 먹을 들고 벼루에 그것을 갈기 시작했다. 쫓아낼 수도 있었지만, 쫓아낸다고 해서 가게의 명운에 그늘이 지는 일도 없겠지만, 그것보다도 카가미는 이 남자의 그림이 완성되는 걸 보고 싶었다.
“테츠야가 요즘 그림이 안 그려져서 꽤 고생했었거든. 요즘 물 건너 말로 슬럼프라고 한다던가?”
그렇게 말해봤자 10살도 되기 전부터 요시와라에서만 산 카가미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아름다운 걸 보면 아름다운 게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계속 일만 시켰으니까 숨도 좀 돌리게 해줄 겸. 그래서 요시와라의 이름 있는 유녀는 모조리 소개해줬는데, 설마 세이린관의 오이란에게서 빛을 찾을 줄이야.”
요시와라의 이름 있는 유녀를 모조리라니……. 다들 신참객은 상대도 안 하는데다가 그걸 억지로 만나게 하려면 웃돈도 얹어줘야 할 텐데 그럼 그게 대체 얼마야……. 아니, 됐다. 이 사람,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아마도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카가미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연거푸 잔을 비우고 있는 쿠로코의 잔을 또 채웠다. 쿠로코의 그림을 처음으로 본 지 열흘이 지나서였다.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던 듯, 쿠로코는 그림이 완성되자마자 어째서인지 카가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황급히 세이린관을 떠났다. 아직 쿠로코가 산 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접대실에 혼자 남은 카가미는 아직도 그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한 동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 쿠로코 이름으로 마치아이차야 호출이 들어와 가보니 쿠로코와, 그를 소개한 아카시가 있지 않은가. 아카시는 익히 들은 바와 같이 잘 생긴 얼굴에 늠름한 기백이 흘러넘치는 청년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면 열이면 열, 모든 여자 눈이 돌아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가미의 눈은 그 옆의,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존재감의 쿠로코만을 보고 있었다.
이르기를, 카가미를 보자마자 영감이 떠올라서 당장 그걸 그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쿠로코의 변명이었다. 그도 자신의 행동이 큰 결례였다는 건 알고 있는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했지만 카가미는 개의치 않았다. 그 그림을 볼 수 있는데, 결례 정도야. 쿠로코의 그림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라는 모양이고, 세이린관의 재정에 그 정도 여유는 없으니 앞으로 아마 볼 일은 없겠지만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그래서, 아카시 군에게 신세를 지는 모양이 돼서 좀 꼴사납긴 합니다만 앞으로는 정식 손님으로서 찾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에.
“잘 부탁합니다.”
하고, 쿠로코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물론 마치아이차야에는 높은 계급의 유녀를 불러 연회를 베풀고, 그 유녀만의 정식 손님이 되는 절차를 밟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카가미도 오이란이 된 후엔 매번 그런 식으로 손님을 받았지만, 아니, 그래도, 설마.
하지만 쿠로코는, 덤으로 아카시도 진심이었다. 카가미는 사흘 후 쿠로코와 요시와라에서의 부부의 연을 맺는 잔을 들었다.
쿠로코는 좋은 손님이었다. 원래 이 말투라며 카게마인 카가미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썼고, 그럴 필요 없는데도 잠자리에서 자기보다 카가미를 우선했다. 거기다 올 때마다 그 날 밤 전부를 사서는 카가미가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게 했다. 오이란까지 올라갔다지만 하룻밤에 손님을 한 명만 받을 수 있다는 건 상당한 호사다. 거기다 그것이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한 쿠로코라면 더욱.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라는 쿠로코의 부탁에 결국 못이기는 척 넘어간 것은 그래서였다.
쿠로코는, 갑작스럽게 종이와 붓을 준비시켜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물론 쿠로코의 그림에 첫눈에 반한 카가미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보다가 영감을 받은 거라고 하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쿠로코의 그림은 전부 테이코의 것이었기에 감히 달라는 소리도 꺼낼 수 없었지만, 완성된 그림을 잠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카가미는 좋았다.
정말로 그걸로 좋았는데.
“저기, 쿠로코…….”
“합니다.”
아직 말도 안 꺼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실행하겠다는 쿠로코의 의지는 굳건해보였고, 카가미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냥 쿠로코의 그림이 좋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었다. 자신을 보고 그림을 그려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잠시라도 쿠로코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그런 얘기를 했을 뿐인데 쿠로코는 어째서인가 “그럼 카가미 군에게 그려드리겠습니다.”라며 붓을 들었다.
설마 그게 몸에 그려준다는 소리일 줄은 몰랐다.
결국 카가미는 쿠로코가 시키는 대로 몇 겹이나 되는 기모노 자락을 헤치고, 햇빛을 받지 못해 하얗게 되어버린 상반신을 내놓았다. 유녀 같은 카게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세이린관의 이념에 따라 근육이 붙은 몸을 어째서 그렇게 안고 싶어 하는 건지 카가미는 알 수 없었으나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쿠로코는 맘에 든다고 하니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고 하니까.
쿠로코는 카가미의 나신을 보며 짧게 숨을 뱉었다. 하지만 그뿐, 말소리는잠시 나오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쿠로코는 겨우 결심한 듯이 “앞으로 누워주세요.”라고 말했다.
붓이 등에 닿는 건 꽤 간지러웠다. 웃으면 웃는 대로 “가만히 있으세요.”라는 질타가 떨어졌다. 간지러운 걸 어떡하라고. 카가미는 툴툴거렸으나 쿠로코는 자비가 없었다. “이제 카가미 군 앞에서 그림 안 그립니다?”라니. 너무하잖아.
득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고문이 지나간 후에 쿠로코가 “다 됐습니다.”라면서 붓을 뗐다. 카가미의 몸에서도 힘이 쭉 빠졌다. 손님 받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하루에 연속 다섯을 받은 이후로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을까. 늘어져 있던 카가미가 옆을 보자, 쿠로코가 옆에서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따금 자신의 등을 보는 걸 보면 등에 그린 그림을 옮겨 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것도 테이코에 넘기는 걸까?
카가미의 시선을 눈치 챈 쿠로코가 작게 웃었다. “아뇨, 이건 테이코에 안 넘깁니다.”라고 대답. 생각을 읽지 마.
“제가 언젠가 카가미 군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날이 오면,”
순간, 숨이 멎었다.
“그 때 문신사를 불러서 이 그림 그대로 카가미 군의 등에 새겨달라고 할 겁니다.”
저도 모르게 카가미는 몸을 일으켰다. 그 말은. 그건. 하지만 입도 벌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고, 동시에 너무나도, 꿈같은, 그런.
쿠로코는 여전히 작게 웃고만 있었다.
“카가미 군은 모르겠지만, 전 사실 질투도 많고 독점욕도 세거든요. 카가미 군이 제 곁에 있다가 다른 남자한테 가 버리는 게 싫어서 언제나 하룻밤을 다 살 정도로. 그러니까 만약에 카가미 군이 자유의 몸이 되어도 제 것이라고 새겨버릴 겁니다.”
“싫은가요?”라고 떠보는 말에 카가미는,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을 리가 없었다. 싫을 리가.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그림은, 카가미는 이름 모를 커다란 나무와 거기에 앉아있는 두 마리 까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