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님 리퀘스트. 드라이브 데이트 하는 흑화.
인데 잘 보면 드라이브 데이트 시작도 안 했습니다.()
참고로 쿠로코가 딴 면허는 수동입니다. 스틱입니다. 기어 변속할 때마다 카가미 두근거리라고 수동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시합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다지 달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피해갈 수도 없는 패배라는 이름은 이번엔 카가미를 찾아왔다. 상대는 무라사키바라가 소속된 강호팀. 양 팀 에이스가 모두 존에 들어가 격돌한다는 뜨거운 전개를 펼친 시합이었으나 결과는 카가미 팀의 석패로 끝났다. 어지간히 기뻤는지, 시합이 끝난 후 무라사키바라는 코트에서 마왕처럼 웃어댔다. 그런 캐릭터였나요, 무라사키바라 군. 이라는 쿠로코(in 객석)의 츳코미는 물론 코트까지 닿지 않았다.
석패라고는 하지만 패배는 패배. 전력을 다했기에 결과에도 물론 승복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팀메이트들에게 인사를 하고서 먼저 락커룸을 나온 카가미의 표정은 당연히 밝지 않았다.
“드라이브 데이트할까요, 카가미 군.”
락커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카가미를 놀래킨 쿠로코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세이린 농구부에서 가장 먼저 면허를 딴 건 생일이 지나기가 무섭게 시험에 합격하더니 아버지 차를 끌고 학교로 온 리코였다. 그 다음은 뭐든 중간은 하는 코가네이, 남다른 공간감각 능력을 가진 이즈키, 실기에서 한 번 떨어졌다는 츠치다. 존경하는 선배들이 면허를 따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카가미만은 리코를 비롯한 면허소유진에게서 절대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운전하다 야생동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안 치려고 핸들 잘못 꺾어서 자기가 다칠 것 같으니까”. 동기들이 납득했다는 듯이 일제히 “아-.”하며 끄덕였고, 반론하는 카가미를 다독이며 “포기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었더랬다. 차나 운전에 대해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 같이 입을 모아서 하지 말라고 하면 부아가 치미는 법이다. 카가미는 가장 먼저 동의를 표하면서 “포기하십시오.”라고 한 쿠로코를 타겟으로 삼았다.
“너도 동물 튀어나오면 핸들 꺾을 타입이잖아!”
2호를 유난히도 예뻐하는 쿠로코다. 다른 동물에 대한 애정도 아마…….
“아뇨, 전 그냥 동물을 치어버릴 겁니다.”
칼 같은 대답이었다. 너무나도 단호한 쿠로코의 말에 카가미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물론 그냥 쳐버리는 것이 차에 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더 좋다곤 하지만 그렇게 딱 잘라 말할 것까지야.
“왜냐면 제 차에는 카가미 군을 태울 거니까요.”
세계적인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치어버리고 카가미 군의 안전을 확보할 겁니다.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카가미를 두고서 쿠로코는 그렇게 덧붙였다. 의미를 이해한 카가미 얼굴이 서서히 붉어져서 말 없이 입을 닫아버렸던, 아직 교복을 입고 있었던 시절의 어느 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이후로도 카가미가 쿠로코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탄 일은 없었다. 연수중에는 물론이고 생일이 지나 무사히 면허를 취득한 후에도 “아직 미숙하다”며 절대로 카가미를 태우지 않았던 것이다. 면허 땄으면 됐잖아, 라는 카가미의 반론은 당연히 묵살되었고 운전 연습의 실험체에는 키세가 붙잡혀 갔다. 나중에 키세에게서 “쿠로콧치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 왜 그래요?! 완전 무서웠슴다!”라는 불평이 카가미에게 쏟아졌으나 타본 적이 없는 카가미로서는 뭐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자동차 열쇠에 달린 열쇠고리를 검지에 끼고 돌리는 쿠로코에게 카가미는 곧장 승낙의 뜻을 표했다.
멋있는 스포츠카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렇게 사과하고서 쿠로코가 문을 연 승용차는 어머니 차라는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출근용 차는 회사에서 나온 걸 쓰기로 하고, 슬슬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얼마 전에 중고차를 샀다고. 꽤 옛날 모델이라 어쩌고저쩌고 하는 쿠로코의 설명을 들어도 차에 관심이 없는 카가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기에 그의 눈에는 충분히 멋있는 차로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동작으로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거는 쿠로코는 더더욱. 하얗긴 하지만 크고 마디가 불거진 손이 검은 핸들을 잡자 손가락 마디마디의, 손등의, 손목의 뼈와 핏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카가미 군.”
쿠로코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카가미는 자기가 핸들을, 정확히는 핸들을 잡고 있는 쿠로코의 손과 팔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엔 감정이 잘 읽히지 않는 눈가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데에 쑥스러움이 가중되었다. 순간적으로 뭐라 변명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변명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좀 보면 어때서, 라고 세게 나가면 되나? 하고 카가미가 생각한 찰나.
“안전벨트 채워야죠.”
갑자기 쿠로코가 카가미 쪽으로 쑥 몸을 숙였다. 순식간에 거의 밀착하듯이 가까워지는 체온. 이젠 언제나 자기와 같은 향기가 나는 머리카락. 직후 반사적으로 숨을 멈춘 카가미는,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석화에서 풀려났다. 쿠로코는 어느 샌가 제자리로. 뭐, 뭐라고? 안전벨트…… 아, 안전벨트.
“출발합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합 때처럼 심장이 쿵쿵거리는 카가미를 분명히 알 텐데도 쿠로코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출발시켰다. 카가미는 간신히 “……어.”라는 소리를 짜내고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에 열기가 다 느껴졌다. 살려주라, 좀. 속으로 수를 거꾸로 세고, 작게 심호흡까지 하고서야 카가미는 손을 얼굴에서 뗐다. 차는 어느 샌가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로 나와 있었다. “어디 가는데?”라며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질문을 하자.
“키세 군에 따르면 전 시내 주행에는 뭐랄까…… 안 맞는 모양이라서요.”
“아아…….”
위에 달려있는 손잡이에 거의 매달려 있었다던가.
“그래서 아예 고속도로로 갈까 하고. 해안도로 드라이브, 해보고 싶었거든요. 카가미 군이랑.”
……이건 슬슬 일부러가 아닐까. 카가미는 다시 얼굴을 감쌌다. 때문에 그는 쿠로코가 자신을 곁눈질로 보고 만족스럽게 웃는 것도 알 수 없었고, 시합에 져서 우울한 걸 다 잊어버린 자신을 보고 안도한 것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카가미 군. 저 그거 불러 주세요.”
“하?”
“맨인블랙2에 나오는 노래.”
“MAN IN BLACK… 아아, 그…….”
주인공 옆자리에 탄 불독이 차 타는 내내 부르는 …….
“야!”
카가미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노래를 불러달라는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개가 부르는 노래를 불러달라니. 그것도 말하는 개! 설마 개가 나올 줄은, 그것도 말까지 할 줄은 몰라서 보는 내내 얼마나 무서웠는데!
빽빽 소리 지르는 카가미의 말을 듣는 쿠로코의 옆모습은 하지만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버려 두면 노래는 카가미한테 시켜두고서 자기가 콧노래를 부르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때문에 한참 그 영화의 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카가미는 천천히 입을 다물고, 결국엔.
“……너도 부르면.”
해버렸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 된 쿠로코였지만 곧 “알겠습니다.”하는 대답.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쿠로코가 기분 좋으면, 됐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핸들을 꺾었고, 멀리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