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줄 정도라면 당연히 문이 잠겨 있을 거라 예상하고 어느 새 체온이 옮아 따뜻해진 열쇠를 열쇠구멍에 꽂았다. 막힘없이 들어가는 작은 철 조각. 천천히 돌리면 귀에 거슬리는 스프링 소리를 한 번 내고서 제 위치에서 멈췄다. 열쇠를 빼고 그 손을 그대로 문고리로 가져간다. 묘한 긴장. 돌리고, 민다.

   “여어.”

   튜브형 아이스크림(통칭 츄페트)을 물고 벽에 기대 앉아 점프를 보고 있는 현 최강의 양이지사가 있었다.

   “…….”

   뭐지, 이 긴장해서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은.

   “너 발소리 안 내고 걷지 마, 무섭잖아. 호카게가 되고 싶은 그런 썸씽이냐?”

   발소리 안 내고 걷는 걸 기척으로 알아채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아, 오키타 군도 츄페트 먹을래? 에- 포도맛이랑…… 아니, 포도맛밖에 없다. 그냥 포도맛 먹어. 아? 뭐야, 그 표정. 포도맛 별로야?”

   “……아니, 당신을 보고 있자니 꽤 여러 가지가 아무래도 좋아졌달까…….”

   구체적으로는 신센구미라든가 양이지사라든가 어제의 참극이라든가 기타 등등. 이 사람에 관해서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만큼 다 손해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여기 오는 것만 해도, 물론 망설임은 없었지만 꽤 복잡한 심경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츄페트나 빨고 있고…… 하아…….

   소고는 깊고 깊은 한숨을 쉬며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바로 앞에 있던 신발장 겸 청소도구함 위에 열쇠를 올려놓고 신발을 벗은 후, 조금 고민하다 주먹 하나 정도 비우고 긴토키의 옆에 앉았다. 앉자마자 “응.”이라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 츄페트를 건네 온다. 아니, 별로 츄페트가 먹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생각하면서도 일단 받아 절취 부분을 이로 잘라 버리고 빨아올렸다. 바로 입과 코에 퍼지는 싸구려 포도향. 오랜만에 먹는 거라 그리운 맛이라면 그리운 맛이지만 굳이 이런 상황에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

   “너 안 잤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지만 끝까지 말한 것은 긴토키뿐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그의 눈은 점프를 향해 있었다. 페이지는 어째서인지 편집부 코멘트. 보통 읽나, 저거. 소고는 방금 끊어버린 츄페트의 절취 부분을 방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골인.

   “자기는 잤어.”

   “3시간?”

   이 사람 요괸가. 그 뭐냐, 사람 마음 읽는 요괴. 이름이 아마…… 사토리. 요괴든 아니든 거짓말 해봤자 안 통할 것 같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결국 소고는 솔직하게 신고하기로 했다.

   “……4시간.”

   “생각보다 오래 잤네.”

   하며 웃는다. 놀리는 듯한 반응에 조금 기분이 나빠져 소고는 말없이 츄페트를 다시 입에 물었다.

   여전히 점프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 남자는 화장은 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풀고 있다. 옷도 오늘은 은색 매화가 피어있는 새카만 나가기 단벌의 키나가시. 어제나 그제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라고 할까…….

   “뭐 하느라 잠도 못 주무셨나?”

   알면서 굳이 묻는 점에서 성격이 나온다. 내가 할 말 아니지만. 한숨을 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소고는 츄페트에서 입술을 뗐다.


(중략)


   눈을 뜨고, 처음엔 눈을 떴는지도 몰랐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리자 천천히, 어둠 속의 하얀 윤곽이 뚜렷해졌다. 긴토키다. 그것을 확인하고 소고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눈을 깜빡였다. 점차 또렷하게 변하는 시야. 함께 눈에 들어온 생소한 천정에 이곳이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생각났다.

   “깼어?”

   숨소리만으로 위에 있는 남자가 묻는다. 두 사람뿐인 방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들리는 것은 숨소리, 심장소리, 긴토키가 소고의 머리카락을 쓰는 소리. 닿아있는 부분의 열이 옷너머로도 소고의 몸에 완전히 동화돼서 따뜻하다. 숨을 쉬면, 달콤한 향기.

   아아, 긴토키다.

   소고는 손을 뻗어 긴토키의 목 뒤를 잡았다. 어제 이 사람이 직접, 자신의 손을 끌어 닿게 한 곳이다. 조금만 힘을 주면 별 저항 없이 얼굴이 아래로 내려왔다. 닿을 듯이 가까이했던 목, 턱, 입술. 어제는 땀이 배어 있었다. 오늘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향기만은 어제만큼, 아니 어제보다 더 짙게 다가왔다.

   얼굴이 더 가까이. 어둠 속에서 더 하얗게 보이는 피부. 입술. 자신을 울리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네가 울었으니 충분하다고 한 입술. 분명히 달콤한 향기가 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더 가까이. 무의식중에 소고 역시 입을 조금 벌리고, 머리를 들어올려서,

   닿기 직전에, 긴토키의 손바닥에 막혔다.

   “오키타 군, 잠 덜 깼다.”

   아니다. 잠이 덜 깨서라니, 그런 게 아니라.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긴토키에게도 분명히 보였을 터. 짧게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그가 이름을 불렀다.

   “해도 돼? 정말?”

   무슨…….

  “이대로 해 버려도 되는, 그런 마음이야?”

   정말로? 다시 한 번 물어온다.

   긴토키의 손을 치워야 할 손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떨려야 할 성대도, 움직여야 할 입술도 제자리에만. 그대로 조금 시간이 지난다. 다시 한 번 긴토키의 숨소리가 들렸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절대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해도 될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마음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아직은.

   “아니라고 말 못 하지?”

   그럼, 아직 안 돼.

   그렇게 말한 후, 긴토키의 얼굴이 다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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