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4. 작성
말하자면, 그녀를 질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긴토키는 방에 앉아있었다. 몇 시일까. 거실벽에 붙어있는 시계는 장지문이 닫혀있는 방에선 보이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긴토키에겐 투시 능력이 없다. 현실적인 선에서, 그에겐 휴대폰도 손목 시계도 없었다. 따라서 지금 그에게 현재 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창밖을 보는 것 뿐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이거 확실하게 오전은 아니구만. 그는 머리를 북북 긁었다. 창밖 대신 천장을 올려다본다. 이번엔 장지문. 잠시 응시하다가, 그만 두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대신 그는 다시 이부자리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평일인데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다는 건 건전한 사회인으로서 실격이겠지만, 그렇다고 긴토키가 평소에 아주 착실하고 성실하고 이상적인 사회인이냐면 그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렇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눈 앞 가득 하얀 천장. 아니, 하얗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물론 본래 흰색이었을 터인 그것은 세월과 함께 퇴색하여 지금은 상당히 누르스름한 것이다. 그렇다고 도배를 다시할 여유가 해결사 사무소에는 없었다. 집세도 빠듯한데 도배는 무슨.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천장을 본다. 생각이 끊긴다. 누르스름한 천장. 하얄 터인 그의 머릿속도, 마치 천장의 색이 옮아온 것처럼, 다른 색이 섞인다. 저렇게 어중간하게, 그리고 조금은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노란색이 아니라――――――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말하자면 황금색이었다. 그것도 자신처럼 꼬불꼬불 말린 곱슬머리가 아니라 찰랑찰랑한 생머리. 아아, 과연.
말하자면, 그 주체가 태양인지 창조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긴토키나 신센구미 녀석들로는 상대도 안 되는 존재에게, 말도 안 될 만큼 사랑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으면 부럽고, 질투가 나고, 그러다 그게 도를 지나쳐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물론 머리카락만이 아니라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형태는 전부 그랬다. 같은 붉은 눈인데 자신은 죽은 동태 같은 눈이고 저쪽은 반짝반짝 빛나는 루비와 비견해도 될 정도라니,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한 일은 없다. 그뿐인가? 햇빛을 잘 안 보는 누나는 당연한 거라고 쳐도, 허구헛날 밖으로 나도는 동생까지 화장품 모델로 써도 될 만큼 하얗게 부드러운 피부의 소유자인 것이다. 얼굴의 조형에 이르러서는 말할 필요조차도 못 느낀다. 뭐, 둘 다 속은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었지만.
긴토키는 눈을 감았다. 암전. 종지부. 그는 지금 자신의 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찍어야만 했다. 찍고 싶었다. 무리다. 아아.
말하자면, 그들은―――――――――――――그는, 사랑을 좀 지나치게 받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신은 믿지 않지만, 창조주든 절대자든, 아니 하다못해 그들의 양친이든, 여튼 그런 존재가, 그들을 만들어놓고서.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놓고서. 만들어놓고 아까워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이 세상에 내어놓고, 20년 동안 그들을 지켜보며 전전긍긍하다가, 역시 너무나도 아까워서, 데려가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당연한 이치처럼, 순리처럼 생각되었다. 누나는, 덧없이 아름다웠던 그 누나를, 다른 누군가에게 내줘야 한다니 얼마나 아까운 마음이 들었겠는가? 그래서 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존재는 누나를 빼앗기지 않도록 그 녀석과의 길을 꼬아놓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역시 아까워서, 데려가버린 것이다.
그것만이라면 괜찮았다. 아니, 괜찮지 않지만. 여튼, 괜찮다고 치자. 그런데 그 누나는 자신의 동생 역시도 너무나도 사랑했던 것이다. 뭐라 형언하기 힘든 그 존재처럼, 자신의 혈육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것이다. 물론 동생도 그 사랑에 답했다. 그에 지지않는 크기로 답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동생에게 그 사랑을 전하고, 그보다 더 큰 사랑에 휩쓸려갔다. 그래서, 동생의 사랑은 갈 곳을 잃었던 것이다. 받아줄 사람이 없어선 성립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는 그것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려고 했다. 살아볼까 했다. 하지만 뭐라 표현하기 힘든 존재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휩쓸어가버렸다. 하지만 긴토키가 생각하기에, 그는 그렇게 휩쓸릴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덧없는 누나와는 달리, 자신이 내던져진 세상에, 발을 확실하게 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긴토키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그가 바란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그가 저주하는 상사보다, 그가 따르는 대장보다, 그와 싸움만 하는 라이벌보다, 그가 발을 붙이고 있던 세상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가 이따금 낯 간지러워서 들어줄 수가 없는 말을 해주었던 자신보다, 누이와 함께 있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질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든 태양이든 창조주든 절대자든, 그런 정체 모를 무언가의 그에 대한 사랑은 아무래도 좋았다. 누이의 동생에 대한 한없는 애정도,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동생은, 소년은, 그 말을 입에 담았던 소년은,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세상에서 제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쁜 놈…………."
아아,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말은 그의 누이가 '세상'에서 없어진 후에 했던 말이었다. 과연. '누이가 없는 세상'에선 제일이었단 얘기가 된다. 납득하지 않을 수 없다. 뭐야, 처음부터 질 게임이었잖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게임판에 이름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사기잖아, 이거.
긴토키는 다시 눈을 떴다. 눈이 부시다. 덥다. 하지만 밖에선 그 흔한 매미 소리, 쓰르라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소리도. 있는 것은, 이 세상 전부를 찔러죽일 것 같은 햇빛 줄기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
말하자면, 이 흉한 감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었다.
소년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누이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고 증명하는 것. 하지만 자신이 있는 세상 대신 누이를 택한 시점에서 그건 글렀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다못해, 동급인 것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증명되려면, 그것이 증명되려면, 증명되려면. 아아. 소년이, 소년의 사랑이, 누이를 택한 것처럼 보인 소년의 사랑이, 자신도 휩쓸어 가버린다면. 그래서. 그래서. 함께. 하게. 되면.
긴토키는 숨을 멈춰봤다. 덥다. 따갑다. 뜨거운 공기가 자신을 익혀죽이려고 했다. 따가운 햇살이 자신을 찔러죽이려고 했다. 바라던 바다. 그래서 그는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자, 어서. 어서. 어서. 어서. 어서!
아무리 기다려도 숨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눈을 떴다. 아―― 아――……. 아무래도 소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자신의 생각보다 얕았던 모양이다. 숨이 끊어지지 않는 것도 분명 그 때문이다. 그 증거로, 이렇게, 눈물조차 나질 않으니까. 메말라있었다. 이 세상 전부 메마르면 좋을 텐데. 그리고 자신은 말라죽는 것이다. 등골이 오싹한 공포와, 기대. 하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 뭐가 좋을까? 반대로 물에 빠져죽어볼까? 이따금 소년이 주던 열기처럼 타죽는 건 어떨까? 그 쾌락을 생각하면서 고압 전류에 몸을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한 마디 한 마디 심장을 관통하던 그의 말처럼 총이라도 쏴볼까? 아아, 한 번도 맞댄 적은 없었지만 그 올곧은 도신을 생각하며 배를 가르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긴토키는 생각하는 동안 아주 유쾌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옷을 벗어던진다. 평소엔 가지런히 개놓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잠깐 거울을 본다. 부츠를 신는다. 현관문을 열고, 열기와 햇살이 함께 들이닥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는 밖으로 나갔다.
말하자면, 긴토키는 그녀에 대한 질투라는 감정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가 원하는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사랑에 휩쓸리고자, 아주 유쾌한 기분이 되어,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와 그의 누이가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