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쫓아내고 점프 보니까 재밌어요?”

   소고가 이부자리에 오른쪽 얼굴을 맡기고 긴토키를 올려다보며 묻자 남자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말없이 손을 뻗어왔다. 다음 순간 “꾸엑” 소리와 함께 소고의 얼굴이 정확히 이불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마주하다못해 그 안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한참이나 찍어 누르는 긴토키와 얼굴을 들려는 소고의 힘 싸움이 이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누른다는 메리트에다 원래부터 완력에서 긴토키가 우세한 탓에 결국 소고가 해방된 것은 질식 일보직전이 되어서야였다.

   “무슨 짓이에요?!”

   “네 잘못이야.”

   반동으로 힘차게 고개를 쳐든 소고가 으르렁거리는 것에 긴토키는 점프로 얼굴을 가리고 즉답했다. “뭐가요?!”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본성이랑 얼굴과 행동이 따로 노는 네 잘못이라고!”

   빽 소리를 지른다. 여전히 점프는 긴토키의 얼굴 바로 앞에서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묘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긴토키를 바라보던 소고는 곧 천천히 미간의 주름을 없애고, 대신 씩 웃었다. 점프와 하얀 머리카락 사이에 아주 조금 보이는 귀가 붉다. 하항-.

   “긴-토-키-씨-.”

   소고는 일부러 길게 늘여 이름을 부르며 손목을 잡았다. 점프를 잡고 있는 손가락에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까처럼 불리한 자세에서의 힘겨루기는 승산이 거의 없지만 이미 수비로 돌아선 긴토키 상대라면 그렇지도 않다. 당장 오늘 발견한 약점부터 공략을…….

   소고는 나중에 그 순간 긴토키가 독심술이라도 한 게 아닌가 했다.

   점프가 그의 손에서 떨어진다. 하얀 잠옷을 걸친 팔이 눈앞으로 지나간 직후 절로 신음소리가 나는 아픔이 찾아왔다. 타의에 의해 몸이 반대방향으로 회전하고 긴토키가 밀착해온다. 물론 이렇게까지 기쁘지 않은 밀착도 없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고 반항하려고 한 다음 순간 이번엔 목에 격통이 엄습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위로 들리고 꽉 막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팔은 둘 다 긴토키의 한 팔과 몸통 사이에 단단히 고정되고 그의 다른 팔은 소고의 목이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정확한 위치를 꽤 센 힘으로 조르고 있었다. 용의자를 구속할 때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한다. 물론 이렇게 밀착한 상태에서 구속해야 할 만큼 긴토키가 틈을 보이는 일이 아예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긴…….”

   “씻어.”

   항의하려고 겨우 목소리를 짜낸 소고의 말을 긴토키는 매정하게도 중간에 싹둑 잘라버렸다. 순간 그 짧은 한 마디가 무슨 뜻인지 소고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 뭘 하라고?

   반항할 생각조차 못하게 구속한 걸로는 부족했는지 긴토키는 그 자세 그대로 자신과 소고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자기보다 키도 덩치도 작은 몸을 말 그대로 끌고서, 방문으로 향했다.

   “잠깐, 긴토키 씨?!”

   “씻고 옷 갈아입고 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필요 최소한의 말만 하면서 긴토키가 발로 장지문을 열었다. 겨우 사태가 파악된 소고가 반항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겨우 소고 몸이 빠져나갈 만큼 문이 열리자마자 구속할 때와 마찬가지로 강제로 해방되어, 소고는 그대로 문밖으로 추방되었다. 넘어질 뻔한 것을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면하고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장지문은 “탁”이 아니라 “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닫힌 후였다.

   하. 한숨이라고도 탄식이라고도 말하기 힘든 것이 입에서 툭 나왔다. 이만큼 철저하게 당하면 화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을 소고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길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숨을 쉬고 소년은 자기가 지금 막 쫓겨서 나오게 된 복도를 이리저리 보았다. 딱 붙어있는 소고와 긴토키 방 주변에는 원래 용건이 없는 한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지라 오늘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꼴사납게 쫓겨나는 걸 본 사람이 없는 건 다행이다. 소고는 이부자리 위에 엎어졌다가 구속당했다가 하는 통에 흐트러진 대복을 대충 털어 정리하고 아마 긴토키가 아직 서있을 장지문과 마주했다.

   “긴토키 씨……. 나도 연애는 양손으로 세야할 정도로는 해봤지만 이만큼 다이나믹한 앙탈은 듣도 보도 못 했거든요……?”

   자기 얼굴 붉어진 거 보이기 싫어서 연인을 완력으로 구속해 방 밖으로 추방해 버리다니. 그야 물론 보통 여성은 자기 연인을 완력으로 이길 수 없으니 불가능하고, 남자가 여자 상대로 이랬다간 천하의 막 되먹은 놈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는 건 괜찮아도 빨개진 건 안 돼? 아니, 그 때는 불가항력이라 넘어간 건가? 이상한 데서 지기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정과 결과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다이나믹하지만 일단 ‘붉어진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라는 동기 자체는 연인으로서 사랑스럽다고 표현하기 충분한 것이었기에 깊게 숨을 한 번 내쉬고서, 소고는 긴토키를 책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문창살에 가볍게 노크를 하고.

   “알았어요. 씻고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같이 자요.”

   장지문너머에서는 대답이 없다. 여기서 바로 거절 멘트가 나오지 않는 것을 승낙의 뜻으로 여기고 소고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끝내려는데.

   “……이상한 짓 안 하면.”

   창호지를 겨우 통과할 만큼 작은 소리가 똑바로 ‘승낙’의 뜻을 전해왔다. 보는 사람이 없기에 이번엔 입가가 웃는 것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이상한 짓이요-?”

   “…….”

   “알았어요.”

   대답도 없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도 긴토키가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소고는 얼른 항복했다. 여기서 더 삐치게 하면 정말로 혼자 자야한다. 바로 문 저편에 긴토키가 자고 있는데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 것만은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입원 기간 내내 마음 같아서는 같은 병실의 대원 녀석들을 다 쫓아내고 억지로 어디를 부러뜨려서라도 같이 있고 싶었는데 퇴원하고서도 독방이라니, 어느 RPG 게임 최종 보스의 정신공격이냐. 크리티컬! 이라는 마크가 뜰 것 같다.

   “이상한 짓은 안 하는데, 안고 자는 거 정돈 괜찮죠?”

   이번에도 대답은 침묵. 이 역시 승낙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번에야 말로 소고는 “그럼 씻고 올게요.”라는 말을 남겨두고 욕실로 향했다. 다시 긴토키 방문을 열었을 땐 졸음을 참으며 기다리고 있던 방주인이 괜히 평소보다 뚱한 표정으로 옆자리를 툭툭 두드리기에 조금 웃으며 순순히 그 품속으로 들어가, 먼저 잠들어버린 연인 때문에 한참이나 잠을 못 이루게 되지만 지금의 소고로서는 알 방도가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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