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도 제대로 안 뜬 시간, 소고는 조용히 눈을 떴다. 거실에서는 그보다도 한참이나 일찍 일어났을 누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춥다. 겨울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긴 걸까? 눈사람 만들기와 눈싸움(히지카타에게는 특별히 돌을 내장한 뉴에이지 스타일이다.)만으로는 보상이 안 될 만큼 한파의 피해가 크니까 한 보름 정도만 겨울 하고 봄으로 넘어가면 될 텐데. 별로 유익하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소고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일으킨 것까진 어떻게든 했는데, 이불 속에서 나가고 싶지가 않다.
어스름에 익숙해진 눈으로 옆을 보자, 요 몇 주 사이에 완전히 일상으로 편입된 광경이 보였다. 소고 쪽으로 몸을 누인 긴토키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고는 스스로 아침에 강한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긴토키는 강한 편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약했다. 그것도 심하게. 그제는 일어나자마자 “나, 장래희망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는 직업으로 할래. 자유업 같은 거.” 같은 헛소리까지 했었다. 자기보다 더 칠칠치 못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야무지게 되는 법이다. 소고는 어느 새 눈이 확실하게 떠진 것을 느끼며, 하지만 찬 바닥에 몸을 대기는 싫어서 이불에 둘둘 말린 채 옆으로 굴렀다. 긴토키의 몸에 가볍게 부딪친다. 부딪친 건 좋은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방금 자신이 누워있던 잠자리였다. 소고는 이불 속에서 끙끙거리며 몸을 다시 돌렸다. 드디어 긴토키의,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고 눈도 제대로 안 뜬 얼굴이 보였다.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남을 깨울 땐 최소한 이불에서 나와서 깨워줄래?”
“춥단 말이에요.”
“잘 됐네. 따뜻해질 때까지만 자고 일어나자.”
“그러면 긴토키 씨는 4월까지 안 일어날 거잖아요. 흰개미에요? 동면하게. 얼른 일어나요.”
말하고서 소고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긴토키에게 박치기를 선사했다. 다만 자세가 자세인지라 별로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일단 소고 스스로도 별로 머리가 안 아프다. 하지만 각성에 도움은 됐는지 긴토키는 “왜 겨울잠 자는 수많은 동물 중에 하필 흰개미야? 머리냐? 머리색이냐? 곰도 있잖아? 백곰이란 놈도 있다고, 세상에는.”하고 한참 꿍얼거리더니 “우, 으아아-.”라는 괴성을 지르며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마사지라도 하는 것처럼 힘을 주어 꾹꾹 누른 후, 겨우 긴토키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다 좋은데, 곰이 개미보다 위인가? 뭐가 더 좋은 건데? 크기와 털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것 같은데.
먼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긴토키는 박치기의 복수인지 소고의 이불을 있는 힘껏 당겼다. 또르르 말려나오는 소고. 긴토키는 이왕이면 반대편 벽에 확 부딪치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의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고가 조금 재밌었을 뿐이다. “지금 거 저녁에도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네가 4살 꼬마입니까? 응? 14살이잖아. 빨리 일어나서 이불이나 개.”라고 일갈 당했다. 저러면서 아마 저녁에 또 조르면 해줄 거다. 소고도 그 정도는 긴토키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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