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귀AU 자목
...인데 정작 시귀가 한 명도 안 나옵니다() 그냥 무대 설정만 소토바 마을.
시귀 모르시는 분은 유력자막내아들 중딩무라사키바라X스님 키요시로 보시면 됩니다.
“아츠시, 절에 인사 하러 가자.”
“에——.”
어머니의 말에 아츠시는 거의 반사적으로 불평스러운 소리를 길게 뺐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전교생 기숙사제 학교에 다니는 아츠시에게 있어서 고향에서 보내는 방학은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간이다. 그런데 절이라니. 심지어 어제 집에 왔는데!
“빨리빨리 일어나. 원래 어제 오는 길에 데려가서 인사부터 시키려다가 작은 스님이 괜찮다고 하셔서 오늘까지 기다려 준 거야. 어서 가서 씻어.”
“인사 꼭 가야 돼~? 어렸을 때 봤잖아, 스님 할아버지.”
“작은 스님! 큰스님은 봄에 쓰러지셨다고 했잖아. 작은 스님이 새로 주지가 되셨으니까 당연히 인사를 가야지.”
알았으면 얼른 씻으라는 등쌀에 못 이겨, 아츠시는 하는 수 없이 중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큰 몸을 일으켰다.
절. 본래 일반명사인 그 단어는 이 마을에서만큼은 고유명사다. 마을에 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마을에서 ‘병원’이란 말이 곧 ‘미도리마 의원’을 가리키는 것처럼. 또 ‘어르신’이라는 말이 곧 ‘무라사키바라가의 당주’를 가리키는 것처럼. 그 외에도 마을에는 ‘서점’이나 ‘목공소’만으로도 뜻이 통하는 곳이 잔뜩 있었지만, 가장 특별한 것은 그 세 곳이었다. 인구 2천이 조금 넘는 마을의 정치와 의료, 그리고 죽음을 담당하는 곳. 무라사키바라가는 지역의 정치를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그 세 곳 중에서도 언제나 가장 중심에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나 그것이 모든 사람의 죽음을 책임지는 절을 무시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무라사키바라와 미도리마, 그리고 키요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하는 형태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까.
물론 작년에는 미도리마가, 올해는 키요시가 대가 바뀌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츠시는 젖은 머리를 대충 털어버리며 생각했다. 작년 여름 방학에 귀성했을 땐 미도리마의 새로운 의사-신타로에게 인사를 하러 끌려갔었다. 3가문의 직계로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그뿐이다. 미도리마와 키요시의 유일한 후계자 두 사람은 아츠시의 가장 큰 형과 비슷한 연배였다. 어렸을 때 같이 놀기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아츠시가 조금 머리가 컸을 땐 세 사람 모두 마을을 떠나 기숙사제 학교에 가 있었다. 지금의 아츠시가 그런 것처럼. 마을 안에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건 초등학교뿐이고, 조금 수준이 있는 교육을 받으려면 무조건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두 사람이 마을에 있었다고 해서 아츠시와 잘 지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특히 신타로와는. 의사라 그런 건지 원래 성격인지 잔소리가 많은 그를 아츠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 왔을 때도 그걸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런 귀찮은 짓을 또 해야 한다니. 아츠시는 한숨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늘척거리던 것을 어머니 손에 붙잡혀 끌려나온 참이었다. 쨍쨍한 햇빛. 왜 이런 날씨에 밖에 나와야 한단 말인가. 거기다 절이라면 서쪽 산 중턱이었다. 이 날씨에, 산. 세상에.
“내가 꼭 가야 돼~? 누나랑 형들이랑 벌써 다 인사했을 거 아냐.”
“넌 무라사키바라네 아들 아니니? 그걸 말이라고 해?”
얼굴을 찌푸렸다. 그놈의 무라사키바라. 위로 누나 하나와 형이 셋이나 있는 아츠시는 아주 자유롭게 자란 편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형식’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귀찮고 짜증나는데, 태어나자마자 후계자였던 큰 형이나, 아들 하나씩밖에 낳지 않은 다른 두 가문을 생각하면 머리가 다 어지러울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에게 가여운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으나, 본질적으로 아츠시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역시.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인사든 뭐든 해치워 버리고 집에 가자. 그리고 막내에게는 많이 무른 어머니를 졸라서 빙수를 사달라고 해야지. 아츠시는 굳게 결심했다. 일단 마음을 고쳐먹으면 그렇게까지 먼 길이 아니었다. 금세 산문이 보였다. 얼마 만에 오는 절인지. 마지막으로 왔을 때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절에 스님 할아버지-전대의 키요시와 그 부인이 있었다. 그 아들, 아니, 꽤 예전에 아들은 집을 나가버리고 대신 남기고 간 손자가 후계자였었지. 이름이…….
“안녕하세요, 작은 스님.”
아츠시에게 이야기할 때에 비해 두 톤 정도 올라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고개를 든다. 짙은 밤색 나가기 차림의 남자가 빗자루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멈춘 참이었다. 색소가 옅은 회색 머리카락. 같은 색의 눈이 들리고, 이쪽을 본다.
“아아, 작은 사모님. 오셨어요? 아침부터 많이 덥죠?”
부드럽게 구부러지는 눈. 입술. 눈썹. 낮은 편이지만 잘 퍼지는 목소리였다. 산이라 그런 걸까. 그런 것치고는 아까부터 시끄러웠던 매미 소리가 마치 하나도 안 들리는 것처럼, 그런.
“네에. 벌써 이렇게 더워서 올해는 어쩌려나 모르겠어요. 큰스님은 괜찮으시구요?”
“네, 덕분에. 큰어른은 안녕하시죠?”
“아버님이야 늘 똑같으시죠~.”
인사치레가 오고 간다. 어렸을 때부터 비슷한 대화를 백 번도 넘게 들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묘하게, 남자의 목소리만은 아츠시의 귀에 와서 박혔다.
“오늘은 별 일 없으세요? 미츠오 씨는요?”
“아아, 미츠오 씨는 오늘 조금 늦게 온다고 하셔서 제가 청소를 할까 하고…….”
“작은 스님———!”
이야기를 가르는 것처럼 들린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에 세 사람은 동시에 뒤로 돌아 보았다. 작지만 그럼에도 잘 들리는 목소리가 “미츠오 씨…….”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면 늦게 온다고 했던 이는 생각보다 꽤나 빨리 온 모양이었다.
미츠오를 더해서 몇 마디 더 인사치레가 오가고, 빗자루는 그가 받아들었다. “작은 스님은 들어가세요. 날도 더운데 작은 사모님이랑 꼬마 도련님한테 차라도 드려야죠.”라면서 그는 키요시의 등을 떠밀었고, 곤란한 듯이 웃으면서도 키요시는 앞장섰다. 아츠시는 ‘꼬마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불만을 품었으나(이미 아츠시는 미츠오보다 머리 하나는 크다!) 그를 제기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키요시의 뒤를 따라 절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은 아츠시의 기억보다 훨씬 작았다. 아마도 초등학생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커져서 그런 거겠지만. 이 정도면 키요시에게는 엄청 작지 않을까. 아츠시는 다리 길이에 비해 꽤 느긋하게 걷는 뒤통수를 보았다. 자기보다 큰 사람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생각해 보면 신타로도 엄청난 장신이었다. 거의 2m는 되지 않을까. 다른 마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3가문에만 뭐가 있나…….
사무실로 안내되어 차가운 보리차를 받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아츠시를 소개했다.
“저희 막내에요. 아츠시. 기억하시죠? 더 일찍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학교가 학교라 집에 잘 오질 않아서……. 아츠시, 인사 해야지.”
“기억하시죠?”라고 어머니는 말했지만 아츠시부터가 키요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기야 봤을 테지만, 눈에 띄면 잔소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신타로와 다르게 이쪽은 허허 웃으며 방관하고 있던 이미지가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전부 합쳐도 10마디도 안 되지 않을까.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변성기를 지난, 낮으면서도 멀리까지 퍼지는 지금의 목소리를 들은 건. 얼굴을 본 것도. 애초에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나 있었을까. ‘거한’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덩치도 크고, 이렇게 정좌를 하고 앉아 있으면 자세가 좋아 앉은키 역시 엄청나게 큰데도 인상은 유했다. 전체적으로 색소가 부족해 보이는 머리나 눈썹 색 때문인지, 아니면 입가를 떠나지 않는 희미한 미소 때문인지.
“아츠시!”
갑자기 등을 맞았다. 아픔에 일단 인상을 찌푸려보았지만, 그 이상으로 어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꽤 오래 넋 놓고 키요시를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뭐 하라고 했지? 아아, 인사.
“무라사키바라 아츠시.”
자신이 무라사키바라가의 막내아들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벌써 어머니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서 아마 이름도 알고 있을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말하는 게 바보 같다고 느끼면서도 평탄하게 이름을 되풀이했다. 어머니의 눈초리는 더욱 매서워졌다. 존대를 하라는 뜻이겠지.
“아츠시, 군?”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태도에도, 키요시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츠시의 이름을 불렀다. 낮지만 잘 들리는 목소리. 아츠시는 멍하니 입 모양을, 부드러운 눈가를 보고만 있었다.
“아츠시 군은 중학생이야? 고등학생?”
“중학생. 2학년.”
“그래? 하하, 되게 크구나. 얼굴은 앳된데 키가 커서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
“별로. 당신이 더 크잖아.”
“아츠시!”
이번에야말로 정말 아프게 얻어맞았다. 그리고 곧장 “말버릇이 그게 뭐니, 작은 스님한테!”라고 벼락이 떨어졌다. 마을사람 모두가 ‘작은스님’이라고 부르며 만나면 고개부터 숙이는 상대에게 ‘당신’ 소리는 벼락이 떨어질 만한 일인 듯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츠시에게는 키요시를 작은 스님이라고 부르거나 그에게 고개를 숙여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 죄송해요, 작은 스님. 막내라서 오냐 오냐 하고 키웠더니 애가 위아래가 없어서…….”
“괜찮습니다. 중학생이면 그럴 나이죠. 신경 쓰지 마세요.”
‘중학생이면.’ 키요시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온화했으나, 어째서인지 아츠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은?”
아츠시가 입을 떼자, 어머니가 또 눈을 세모로 해서는 자식의 이름을 외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키요시 쪽이 아무렇지도 않게 “응?”이라며 아츠시에게 대꾸했고, 덕분에 아츠시는 무사히 원래 하려던 질문을 끝맺을 수 있었다.
“이름.”
이젠 말이 안 나오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어머니와 순수하게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남자. 큰 형과 비슷한 연배일 터인 남자가 고개를 갸웃한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고 있자, 남자는 이제야 아츠시의 의도를 알아들은 듯.
“아아, 미안. 그래. 원래 소개는 양쪽에서 다 해야 하는 거지.”
하고서.
“키요시 텟페이. 얼마 전부터 여기 주지가 됐어. 학교 다니느라 고향에 올 일이 별로 없겠지만, 잘 부탁해. 아츠시 군.”
“흐응.”
텟페이.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미도리마고 키요시고 이름을 촌스럽게 짓는다고 생각했었지, 그러고 보면.
“텟페이 있지, 맨날 여기 있어?”
어머니는 하얗게 질려서, 자식을 혼내겠다는 단계마저 지나 시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걱정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츠시는 키요시-텟페이만을 보고 있었지만. 텟페이는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다는 듯이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응- 뭐, 집이니까? 늘 있지. 일이 있으면 나가지만.”
“그럼 나 놀러 와도 돼?”
이번 질문은 더 예상을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되기야 되지만…….”라며 말끝을 흐리고서.
“절엔 아무것도 없는데……?”
평범한 중학생이 관심을 가질 물건 같은 건 없다는 뜻이겠지. 그건 아츠시도 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도 당신이 있으니까.
대답하는 대신 아츠시는 “상관 없구.”하고 한 마디 던질 뿐이었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빙수는 못 먹을 것 같지만(어머니는 하얗게 된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절에서 나가자마자 맞을 것 같다.) 한여름에 땀을 흘리며 서쪽 산까지 온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