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어이 미도리마.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엄-청 깊은 사정이 있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흥. 사정을 모르면”
“빠지라고? 기적의 세대는 레퍼토리가 그거 하나냐?”
손이, 농구공을 어렵지 않게 골대에 눌러 넣는 손이 내 팔을 붙잡고 끈다. 뒤로 두 걸음. 앞에는 코트를 누비는 뒷모습.
“……키세 얘기냐.”
“잘 아네. 그래도 그 놈이 너보다는 좀 나았던 것 같다. 이유를 말하라고 몰아붙이긴 했어도 너 같은 소리는 안 했으니까.”
“그 녀석은 쿠로코에게 약해서 아무 말 안한 것이야. 뭐, 이 이상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쿠로코에게 더 심한 소리를 할까봐 나선 거라면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야. 내가 할 말은 다 했다. 나머지는, 저 비겁자의 주장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것인지는 시합에서 증명할 테니까.”
카가미 군을 보던 미도리마 군의 눈이 다시 그의 어깨를 넘어 나를 향했다. 나보다도 20cm 이상 높은 위치에서 쏟아져 내리는 차가운 시선은 분명히 실망과, 경멸을, 담고 있었다. 도망치듯 고개를 숙였다. 예전 같으면 이렇지 않았겠지. 애초에 미도리마 군이 이런 눈으로 날 보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설사 있었다고 해도 그걸 똑바로 쳐다보며 반론을 할 정도의 ‘무언가’를 갖고 있었을 터다. 물론 그 ‘무언가’는 착각에 불과했지만.
카가미 군이 조금 자세를 튼 것이, 아래를 향해서 마침 보고 있던 그의 허리 주변에서 느껴졌다. 조금 고개를 들자 다시 미도리마 군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바라던 바다. 증명이든 뭐든, 자잘한 얘기는 전부 시합 때 농구로 하자고.”
호전적으로 이야기하는 카가미 군의 표정은 내게는 보이지 않지만, 보인다.
“하지만 하나, 미리 정정해둔다. 별로 시합에 안 나온다고 코트에서 도망쳤다는 건 아냐. 매니저도, 감독도, 벤치에 있는 녀석들도 전부 같이 싸우는 거니까. 쿠로코가 키세에 대해 분석하고, 감독이랑 같이 훈련 메뉴 정하고 작전을 짜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카이조를 못 이겼어. 아직 우리 매니저한테 실망하긴 이르다고, 당근.”
“당근……!”이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타카오 군이 자기 입을 양손으로 막았지만 카가미 군과 미도리마 군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흥.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야. 뭐, 좋다. 일단 결승까지 올라와라. 얘기는 그 다음에서 시합에서 하도록 하지.”
“OK, 손 씻고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말한 카가미 군은 “가자.”라고 짧게 말하더니 내 팔을 잡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벌써 짐을 다 챙긴 선배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죄송할 따름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서둘러 카가미 군과 보폭을 맞췄다.
뒤에서 타카오 군이 “당, 히힉, 당근이래! 아하하하! 그렇지! 신 쨩 초록머리에 주황색 유니폼이니까! 크크큭, 크큭, 후히히히! 당근! 당근 100%! 몸에 완전 좋은 미도리마 당근타로! 크하하하! 거기다 뭐야? 손? 왜 손?! 목 아냐?! 손 씻고 기다리면 밥이라도 주는 거야?! 완전 착하네, 세이린 10번! 부하하하하!”라며 호흡 곤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웃고 있었다. 미도리마 군의 “시끄러운 것이야, 타카오!”라는 일갈이 들렸지만 웃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비웃음당하고 있습니다, 카가미 군.”
“시꺼.”
반 발짝 앞을 가는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머리가 나쁜 건 자각하고 있고 별로 공부 못하고 잘하고에 관심도 없는 모양이지만 놀림 당하면 역시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다음부터는 한자 공부만이 아니라 속담이나 숙어 공부도 같이 해야겠네요.”
“시끄럽다고!”
“네가 더 시끄러, 바카가미! 빨리빨리 안 오고 대체 뭘 하다가 이제 오는 거야, 앙?! 맞을래?!”
“우리가 뭐라 할 테니까 참아, 감독! 아무리 그래도 스커트로 날아차기는 무리수야! 그리고 감독의 팬티 서비스는 아무도 기뻐하지 않아!”
“……휴우가 군……?”
합류하자마자 캡틴이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걸 보면서 나와 카가미 군은 우리 짐을 챙겨준 동기들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얘기했어?”라고 묻는 데에 별 얘기 아니라고 대꾸하고 여전히 얼굴이 붉은 카가미 군과 나란히 걸어 2층으로. 제일 앞을 걷는 캡틴과 감독님이 한 바탕하는 걸 맨 뒤에서 보면서 걷고 있다 옆에서 “너,”라고 갑자기 말을 걸었다.
“기적의 세대랑 마주칠 때마다 매번 이럴 거냐?”
“별로 제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민폐천만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며 대답했지만 카가미 군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표정엔 변화가 없다. 농구 외에는 크게 집착이 없는 사람이다. 특별히 아주 귀찮다고 생각하지도 않겠지.
“아-”하고 뜸을 들이던 카가미 군은,
“너 그거냐? ‘과거가 많은 여자’?”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었나요.”
“같은 아파트 사는 아줌마들.”
카가미 군의 교우(?) 관계에 미스테리가 부상했으나 일단 무시하고.
“반쯤은 맞습니다.”
“아, 그래.”
물어본 것 치고는 꽤 심심한 반응이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매번 이러는지 안 물어보시나요?”
“여자한테 너무 많은 걸 묻지 말고, 특히 과거는 캐는 거 아니라고 알렉스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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