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6. 작성
"긴 쨩, 긴 쨩, 긴 쨩, 긴 쨩, 긴 쨩!"
"쿠엑!"
선선한 가을날 아침. 긴토키는 오늘따라 유난히 일찍 일어난 카구라가 있는 힘껏 자기 배를 깔고 앉은 덕에 강제로 기상했다. 기상과 동시에 생명의 위험이라니, 스릴 넘치는 인생이다.
"뭐, 뭐야?!"
"긴 쨩! 생일이다 해! 생일 축하한다 해!"
"하?"
"오늘 긴 상 생일이라구요. 얼른 일어나세요."
장지문 밖에서 신파치가 말했다. 에이프런 차림이다. 어라, 오늘 아침(겸 점심) 당번은 나였을 텐데? 긴토키는 아직 잠이 덜 깬 머리로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들 지금 뭐래는 거야. 생일? 나?
"생일인데 아침부터 밥 지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제가 했어요. 얼른 씻고 오세요. 카구라 쨩, 밥 먹자."
"응! 마미- 얼른 와라 해!"
"어……."
카구라가 긴토키의 배 위에서 비키더니 신파치의 뒤를 따라 거실로 사라졌다. 폭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다. 긴토키는 아직도 제대로 각성하지 않은 머리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생일이라 이거지. 내가.
이 나이쯤 돼면 생일이 기쁜 날이 아닌데 말이야. 한 살 더 늙은 슬픈 날이라고. 카구라의 재촉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銀 : 은 은
①은 ②은빛 ③돈 ④날카롭다
"생일 파티?"
아침 겸 점심 식사 후의 후식 시간. 긴토키는 딸기 우유팩을 빨며 얼굴을 찌푸렸다. 무릎 위에는 초절임을 씹고있는 카구라. 반대편 소파에는 녹차를 마시는 신파치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신파치가 방금 긴토키의 생일 파티 얘기를 꺼낸 것이다.
"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들이 들러서 케이크 한 조각 먹고 축하 인사 하는 정도로요."
"말은 쉽게 하지만 말이지, 케이크 값도 얼마나 비싼데 그래? 한 조각씩 먹는다 그래도 10명만 오면 하나가 뚝딱이다."
"괜찮아요. 사지 않고 만들 거니까. 그리고 저번에 신센구미 의뢰로 들어온 돈이 꽤 많아서 그 정도 여유는 있어요. 또 뭐…… 좀 속물스럽긴 해도 생일 선물이 들어오면 이럭저럭 수지는 맞을 거라고 봐요."
생일 선물이라……. 긴토키는 여름의 끝자락에 친구들(인지 원수들인지)에게 받았던 결혼 선물을 떠올렸다. 선물이고 뭐고, 그걸 고르는 게 그의 지인들인 이상 멀쩡한 게 올 확률은 극히 낮은 것이다. 당장 그 처치 곤란 결혼 선물들도 긴토키가 버리겠다는 걸 소고가 압수해 가버렸다. 딴 건 몰라도 아기 용품과 피임약은 평생 쓸 일이 없을 텐데 뭐하러 그러는 건지. 긴토키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생일 파티라니, 이 나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몇 살이 되든 태어나 날은 기쁜 날이잖아요.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건 생일 정도라구요."
"뭐…… 그렇긴 한데……."
"이제와서 뭐라고 해봤자 늦었다 해. 벌써 부를 사람 다 불렀다 해."
"하?"
타이밍 좋게 현관벨이 울렸다. "네, 지금 나가요!"라며 신파치가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설마 벌써 누가 온 건가? 아까 케이크 어쩌구 했지만 아직 만든 것 같지도 않던데. 아니면 의뢰인인가. 긴토키는 카구라와 나란히 현관 쪽을 봤다. 조금 기다리자 신파치가 돌아왔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수려한 외모의 기계 메이드.
"안녕하십니까. 긴토키 님, 카구라 님."
"여어. 웬일이야? 집세 내는 날은 아닐 텐데."
"아니오. 오늘은 집세를 수령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 긴토키 님의 생신이라고 해서 왔습니다."
"에? 뭐야, 혹시 축하하러 온 거야?"
"네."
당연한 듯이 대답하는 타마. 멍하니 있는 긴토키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마는 옷속을 뒤적이더니 포장지에 쌓인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이것은 오토세 님의 선물, 이것은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오토세 님께서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응, 어어… 고맙다."
긴토키가 얼떨결에 선물을 받았다. 갈색 포장지의 오토세의 선물, 타마는 밝은 연두색이었다. 둘 다 꽤 무겁다. 무릎에 앉아있는 카구라가 오토세의 것을 뺏어들더니 "풀어도 되냐 해?"라며 타마에게 물었다.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 것도 아닌데 신나서 포장을 뜯는 카구라. 먹을 거라도 기대하는 걸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용물은 책이었다. 카구라가 큰 글씨로 쓰여있는 제목을 읽었다.
"초보 엄마도 쉽게 할 수 있는 아기 돌보기."
"……."
다들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걸까……. 긴토키는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눈으로 생각했다.
"타마 것도 봐도 되냐 해?"
"예. 괜찮습니다."
북북 찢기는 연두색 포장지. 아깝다. 연두색 포장지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붉은색 상자에 담긴 공구 세트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뭘……?
타마가 돌아가고, 신파치가 본격 케이크 만들기에 착수했다. 요리, 특히 단 것에 대해서 가장 훌륭한 실력을 가진 것은 긴토키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일날에 케이크를 직접 만들게 할 수는 없는지 신파치가 팔을 걷어붙였다. 빵 굽기, 생크림 바르기는 신파치가, 데코레이션은 카구라가 했다. 거의 완성된 케이크 위에 과일이나 초콜릿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긴토키는 아이가 케이크를 아작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다. 하지만 그의 염려와는 반대로 모양은 조금 이상할지언정 케이크는 무사히 완성되었다.
두번째 케이크빵을 굽기 시작한 신파치를 내버려둔 채 마치 자기 혼자 케이크를 다 만든 양 긴토키에게 자랑하는 카구라. 남자는 별말 않고 아이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자, 아가씨도 어서 들어와요."
"노, 놓으십쇼!"
"실례하지."
거실로 들어오는 세사람. 큐베, 타에, 그리고 타에에게 팔을 잡힌 마타코였다. 큐베와 타에까지라면 자주 볼 수 있는 조합이지만 마타코라니, 별 일이다. 마타코를 보고 화들짝 놀라 동시에 긴토키를 보는 신파치와 카구라. 긴토키는 둘에게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아마 타카스기가 보낸 거다. 부하를 직접 보냈으니, 설마 생일 선물로 폭탄을 보낸 것은 아닐 터. 폭탄이 아니라도 불안하긴 하지만.
"어머, 긴 상. 생일 축하해요."
"축하한다."
"어……."
말하는 와중에도 마타코가 타에에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총의 명인이라도 완력으로는 당해내지 못하는 듯 했다.
"왕언니, 큐베! 케이크다 해. 먹어라 해."
"귀여워라. 카구라 쨩이 만들었니?"
"그렇다 해!"
"반이상 신파치가 만들고 데코레이션만 했지만 뭐, 만들었다고 못할 것도 없지."
"마미- 쓸데없는 소리다 해."
하지만 저 말을 안 하면 신파치의 공적을 가로채는 것이 된다. 물론 상식적으로 카구라가 제대로된 요리, 그것도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 리 없으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타에가 케이크를 받아먹으려고 손을 뻗은 사이에 마타코가 그녀에게서 도망쳐 거실 구석으로 갔다. 하지만 정작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맛있네. 후후, 케이크도 먹어버렸으니 선물을 줘야겠네. 자요, 긴 상. 제가 특별히 골라왔어요. 돈은 큐 쨩이 냈지만."
"무엇을 선물해야할지 몰라서, 타에 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둘의 마음이 담긴 거라고 생각하고 받아다오."
"네가 골랐다고?"
"그래요.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
긴토키는 타에가 들고온 매우 큰 상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문제 있냐구? 아주 많다. 타에의 센스는 긴토키의 도움 안 되는 친구들에 비견될 정도로 상식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상황을 상정해도 하겐다스 정도다. 그리고 악화할 경우엔…… 상상하기도 싫다. 긴토키는 상자를 앞에 두고 타에와 큐베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타에는 속을 읽을 수 없는 스마일. 큐베는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나 빨리 보고 싶은지 약간 뺨이 붉었다. 타에야 어쨌든, 저런 큐베를 앞에 두고 수상한 물건 취급하며 안 열어볼 수도 없다. 긴토키는 속으로 기적이 일어나 내용물이 멀쩡한 것으로 바뀔 것을 기도하며 상자를 열었다.
열어보니, 거기엔 수술용 의자 같은 것이 있었다. SF 영화에 나오는 기계 장치 같기도 하다. 용도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의자를 보고 긴토키가 타에에게 눈짓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특수 의자에요. 앞으로 앉으면 다리가 M자로 완전히 벌어지고, 뒤로 앉으면 엉덩이를 쳐든 상태가 돼서 잘 보인다고 하네요. 유용하게 쓰세요."
"……."
설명을 듣고 돌이 되는 신파치와 긴토키. 하지만 순수한 영혼 약 두 사람은 설명을 들어도 이해 못하는 건지 각각 "굉장하다 해! 변신 의자다 해!", "타에가 분명히 기뻐할 거라고 해서 골라왔다. 어떠냐, 긴토키."라는 반응을 보였다. 차마 저 의자의 진짜 용도를 설명해줄 수 없었다. 거실 구석의 마타코는 일단 설명을 이해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멋있다 해! 긴 쨩, 나 앉아봐도 되냐 해?"
"안 돼! 절대로 안 돼! 카구라 쨩, 여자애가 이런 거에 앉으면 못 써요!"
"왜 그러냐 해? 변신 의자다 해."
"아니, 물론 어떤 의미로 변신하긴 하는데……!"
긴토키는 신파치에게 다급한 눈길로 SOS를 쳤다. 신파치는 그런 긴토키의 간절한 눈을 보더니, 입모양으로 "죄송해요"라고 말하곤 조용히 다시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신자놈.
"……맘에 안 드는 거냐……?"
뒤에서 들린 작은 목소리는 사태, 특히나 긴토키의 심리 상태를 악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랬다. 아무리 타에가 긴토키를 골려먹을 작정으로 고른 몹쓸 물건이라도 큐베가 돈을 댄 어엿한 생일 선물이었다. 긴토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사카타…… 아니지, 오키타 긴토키! 카구라의 호기심과 의자에 앉겠다는 욕구를 뿌리뽑고 큐베의 마음까지 다치지 않게 할 방법을!
"아아아아니야! 맘에 들어! 엄청 맘에 들어! 맘에 쏙 들어서 아무도 못 앉게 하고 나만 앉고 싶을 정도야! 고맙다, 큐베. 그리고 오타에."
"그거 다행이다."
"좋아할 줄 알았어요."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지는 큐베. 긴토키가 자기 이름을 부를 때 있는 힘껏 어금니를 깨물었는데도 개의치 않고 환하게 웃는 타에. 거물이다. 긴토키는 어차피 무서워서 타에에게 화낼 순 없으므로 얼른 의자를 상자에 다시 넣고 자기 방에 집어던진 후 세게 장지문을 닫았다. 맘 같아서는 잠가버리고 싶다.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조금 풀이 죽은 카구라가 있었다. 이젠 이쪽이다.
"있지, 카구라. 저건 긴상이 생일 선물로 받은 거니까…… 그, 다른 사람한테 막 쓰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거든? 말하자면…… 저어…… 내가 너한테 준 긴상 인형 있잖아? 그거 신파치가 가지고 다니면 싫지?"
"……싫다 해……."
"응. 나도 싫다. 그런 거니까 카구라가 이해해줘. 그럴 수 있지?"
"……응……."
"착하다."
여전히 표정이 조금 어두운 카구라였지만 긴토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금세 다시 웃었다. 의자에 앉겠다는 건 포기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긴토키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구석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마타코다.
"신스케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물건임다."
역시. 긴토키는 그녀가 내미는 것을 받았다. 얇다. 종이. 돈이면 제일 좋겠지만 타카스기가 그런 감사한 짓을 할 것 같진 않고, 대체……. 봉투 안에 있는 것을 꺼내자, 무언가 표 같은 것이 있는 종이 한 장이었다. 표 가장 위에는 '도구 사용 기록표'.
"아앗! 무슨 짓임까, 신스케님이 주신 선물에!"
표제목을 읽자마자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는 긴토키에게 마타코가 외쳤다. 하지만 긴토키도 그럴만 했다. 그 '도구'라는 것은 신스케가 결혼 선물로 줬던 '도구'로, 표의 가로줄에 도구 이름이 빽빽하게 쓰여있었다. 참고로 세로줄은 날짜와 횟수다. 생일 축하는 커녕, 긴토키를 놀리겠다는 의도밖에 없다. 이런 걸 줄 바에야 차라리 무소식인 카츠라나 사카모토 쪽이 100배는 낫다.
"신스케님께서 직접 만드신 표를 찢어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슴다!"
"이걸 직접 만들었냐! 혹시 너희 보스 한가하니? 응? 시간이 남아서 주체를 못 하니?"
"키이이이이! 신스케님의 선물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도 모자라 모욕까지! 더이상은 참을 수 없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에 찬 권총을 양손에 들고 긴토키를 향해 쏘는 마타코. 하지만 그 총알이 긴토키에게 맞는 일은 없었다. 연기를 내며 총알 두 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앞에는 보라색 우산. 당장 여기서 총알을 막을 수 있는 우산은 하나 뿐이다.
"긴 쨩이 괜찮다고 해서 가만히 냅뒀더니, 아까부터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 마미-한테 무슨 짓이냐 해. 더러운 팬티 여자."
"더더더더럽……! 신스케 님은 안 계시지만, 그 발언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슴다!"
"나도 긴 쨩한테 총 쏘는 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해. 저번에 못 낸 결판, 오늘 여기서 낸다 해!"
"바라던 바임다!"
실로 호전적인 소녀들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울리는 수발의 총성. 그것을 모두 우산으로 막아내고 마타코에게 달려드는 카구라. 몇 번인가 공방이 이어지다가 마타코가 창문 밖으로 후퇴했다. 카구라가 바로 그녀를 뒤쫓았다. 이어서 지붕이 소란스럽더니, 그 소란이 점점 멀어져서 들리지 않게 됐다.
"기운 좋은 아이들이네요."
"음. 아이들은 뛰노는 것이 제일이다."
"……."
상식인이 절박했다.
큐베와 타에가 돌아가고도 많은 사람들이 해결사 사무소를 찾았다. 주로 여태껏 해결사네에게, 혹은 해결사네가 신세를 진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찾아올 때마다 축하를 받고, 케이크를 주고, 가끔 선물을 받는다. 지인들이 워낙 다들 개성이 넘치는 덕에 일반적인 의미에서 '선물'은 별로 없었지만, 용도가 어찌됐건 선물은 선물. 긴토키도 몇 번 미묘한 선물을 받은 후에는 포기하고 모든 선물을 겸허히 받았다. 카구라가 나가서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케이크 데코레이션도 긴토키 자신이 해야했지만 크게 불평하지도 않았다.
세자릿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다녀가고 카구라가 저녁 늦게 돌아오고 나서야 해결사 식구 셋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만든 케이크 중에 가장 커다란 케이크에 긴토키와 카구라가 데코레이션을 하고 초를 꽂았다. 그리고 신파치와 카구라가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 둘 다 노래를 못해서 듣기는 매우 괴로웠지만 긴토키는 웃었다. 저녁 먹고 목욕한 후에 카구라는 마타코와의 전투로 지쳤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긴토키와 뺨과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아이가 벽장으로 들어가자, 어질러진 부엌을 치우던 신파치가 말을 걸었다.
"저어, 오늘 신센구미 전대원이 출진하는 대규모 작전이 있대요. 콘도 씨가."
"흐응."
"그러니까 저어…… 그래서, 못 오신 거라고 생각해요……."
'누가' 못 왔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신파치는 자기가 변명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과 카구라는 확실히 느꼈으니까. 손님이 한 명 한 명 올 때마다 그 사람이 황갈색 머리칼의 미소년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가라앉는 긴토키를. 그야, 축하를 받는 것은 기쁘다. 그의 고맙다는 말과 웃음은 거짓이 아니다. 아니지만, 물론 모두 소중하지만, 진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왜 네가 그 녀석 변명을 하는 거야? 난 신경 안 써."
"……."
거짓말. 긴토키를 보는 신파치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긴토키는 속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 속마음을 말할 생각이 없다. 긴토키가 저렇게 나오면 신파치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 없다. 여기서 긴토키 속마음을 끄집어내봤자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을 테니 신파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부엌 청소를 대충 끝내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긴토키가 말했다.
"그만 가라. 동생 늦게 보냈다고 너희 누나한테 까이기 싫어."
"네……."
그렇게 신파치를 보내고 거실에 긴토키 혼자 남은 현재 시각 10시 14분. 그는 시계를 봤다. 눈을 감는다. 졸리지는 않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벽장 속의 카구라와 거실 구석 사다하루의 숨소리. 그리고 자신의 것.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 아랫층 스낵 오토세에서 올라오는 말소리. 잔과 잔이 부딪치는 소리. 웃음 소리. 그는 한참이나 온갖 소리를 듣고 있다가, 가만히 눈을 뜨고는 TV를 켰다. 모든 작은 소리들이 TV 소리로 지워졌다. 버라이어티쇼. 출연자들의 농담과 방청객들의 웃음 소리. 효과음. 긴토키는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표정으로 화면을 봤다. 눈동자에 총천연색의 TV 화면이 비쳤다. 하지만, 무의미. 결국 그는 약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버라이어티 쇼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버라이어티 쇼가 끝나고 CM를 두 개 조금 더 본 후 그는 TV 전원을 껐다. 시계를 본다. 오후 11시 52분. 오늘이 끝나기까지 앞으로 8분 남았다.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눈은 계속 시계에 고정된 상태. 초침이 돌아간다. 1초. 2초. 3초. 4초. 10초. 15초. 30초. 분침이 앞으로 나아간다. 1분. 2분. 4분. 5분. 6분. 7분. 8분. 10월 11일 자정.
"……나쁜 놈."
툭 던진 매도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만 씻고 자자. 긴토키는 묘하게 힘이 없는 발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목욕을 끝낸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다. 이불이 차다. 뒤척인다. 눈을 감고 한참이나 가만히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게 다 이름 뿐인 남편놈 때문…….
긴토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발소리. 1층이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어지간히 급한지 쿵쿵 울렸다. 그리고, 현관. 바로 이 벽 앞. 거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긴토키."
왔다.
"자요?"
불이 꺼져있어서겠지. 하지만 긴토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지 잠시간 말이 없는 소고.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없자,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돌아가는 건가? 역시 대답을 하는 게…….
"들어가요."
짧은 통보. 그리고 긴토키방 창문이 밖에서 열렸다. 현관문은 잠그지만 창문까진 안 잠근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창문틀에 소고의 손이 보이더니, 기합 소리 하나도 없이 그가 휙 창문으로 들어왔다.
"……경찰이 남의 집 창문 넘으면 되냐?"
"왜 여기가 남의 집이에요? '오키타' 긴토키의 집인데."
말은 잘 해요. 불이 꺼져있어서 잘은 안 보이지만 소고가 온통 땀투성이란 게 느껴졌다. 당장 들리는 숨소리가 가쁘다. 이제 날도 완전히 선선해졌는데 원래 더위도 잘 안 타는 그가 이 정도가 될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달려온 걸까. 소고가 가까이 온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그 얼굴이 확실히 보였다.
"12시…… 지났죠?"
"한참 전에."
"…………미안해요."
소고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 표정은 긴토키가 지금까지 본 소고의 표정 중에 가장 풀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평소에 계산하고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일이 잦은 그지만, 이것은 그런 게 아니라고 알았다.
실은 할 말이 많았는데. 있는 욕 없는 욕 다 해줄 생각이었는데. 그걸로도 분이 안 풀리면 때려주기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이 녀석이, 변명 한 마디 안 하니까. 얼마나 힘든 작전이었는지, 여기에 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겨우 끝내고 얼마나 뛰어왔는지 한 마디도…… 안 하니까. 그러니까 이쪽도 그를 책하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이 전부 사라져서. 그걸 따라서 쓸데없는 마음도 전부 사라져서.
"……물 건너 서쪽 나라는 아직 10월 10일이다. 그것도 오전."
"에……."
"아직 생일 안 지났다고."
원망이라든가 섭섭함이라든가 그런 걸 다 벗겨서 없애버리니, 그가 지금이라도 여기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만이 남았다. 이제 구제할 도리가 없다, 정말.
"생일 축하해요."
저렇게 한 번 웃으면, 다 용서해줄 마음이 들어버리니까. 정말 구제할 도리가 없다. 사실 사내 자식이 프로포즈한 걸 받아준 시점에서 구원의 길은 저멀리로 날아간지 오래지만. 긴토키는 손을 뻗어 소고를 끌어안았다. 소고의 팔이 등을 감싼다.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응."
"오늘까지 살아있어준 것도, 고마워요."
"……응."
"내가 이런 소리 할 수 있도록 나한테 와준 것도, 정말 고마워요."
"……."
긴토키는 말 없이 소고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품 안의 그가 작게 웃었다. 귓가에서 속삭이는 소리. 짧고 간결하게 사랑을 전하는 한 마디. 긴토키는 한참 있다가 그의 귓가에 그와 같은 말을 속삭였다.
"나 긴토키에게 사랑한단 소리 들은 거 이게 처음이에요."
"……했었어."
"언제요?"
"모르면 됐어. 엄밀히 말하자면, 뭐…… 말 안 한 축에 들지도 모르니까."
"기억에 없는데… 아깝네요. 그냥 오늘 처음 들은 걸로 치죠. 어째 당신 생일인데 선물은 내가 받네요."
아, 선물 하니까 말인데 하고 소고가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유명 제과점에 특대 케이크 예약해놨었는데 벌써 문 닫았더라구요. 그거 먹고 선물은 당신이랑 같이 사러 나갈 생각이었는데."
"……너 왔으니까 됐어."
소고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곧 배시시 웃었다. 정말, 선물은 온통 자기가 받는다. 그는 긴토키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아- 걱정하던 게 싹 사라지니까 졸리네요. 나 자도 돼요?"
"내일 근무는?"
"비번이에요. 오늘 양이당 대장급 셋을 혼자 잡아서 그걸로 히지카타 씨랑 협상했어요."
그럼 내일은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구나……. 긴토키 입이 가만히 웃었다. 으응- 하고 소고가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신센구미 전원 출진 정도의 작전이라면 대기 시간까지 생각해서 새벽부터 깨있었을 터. 거기에 전투도 거하게 하고 온 모양이니 피곤할만도 하다. 긴토키는 소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서 자기에게서 떼어냈다.
"겉옷이랑 베스트 정도는 벗고 자."
"벗겨줘요."
"유아 퇴행했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소고의 신센구미 대복 재킷을 벗기기 시작하는 긴토키였다. 순순히 협조하는 덕에 수월하게 재킷을 벗겨 적당히 구석으로 던지고, 베스트도 벗겨서 같은 곳으로 던진다. 셔츠 차림이 되자마자 소고가 다시 긴토키 위로 쓰러졌다.
"너 신발은?"
"창문 넘을 때 벗어놨어요."
"누가 훔쳐가도 난 모른다. 아, 양말 벗어."
대답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애매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 소고가 눈을 감은 채로 양말을 벗어 던져버렸다. 이미 반쯤 자고 있다. 긴토키는 그런 소고를 보고 피식 웃더니 자리에 누웠다. 그에게 몸을 기대고 있던 소고도 같이 눕는다.
"잘 자."
"……잘 자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겨우 대답을 한 소고는 금세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너무 어려 보여서, 긴토키는 살짝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을 감자 즉시 수마가 덮쳐왔다. 졸음도 전염되는 건가. 긴토키는 천천히 어둠으로 떨어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꿈에 소고가 나왔다. 근방에서 가장 큰 제과점에 둘이 앉아 특대 초코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어지간히 생일을 이 녀석이랑 같이 보내고 싶었구나. 해결사 사무소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긴토키는 생각했다. 옆에선 아직도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하루 늦었지만, 오늘은 꿈을 정몽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결심을 하며 긴토키는 소고가 눈을 뜰 때까지 그 잠든 얼굴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은혼 > 그래서 오늘은 「 」자를 썼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 그래서 오늘은 「楽」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7 |
---|---|
32. 그래서 오늘은 「霊」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7 |
30. 그래서 오늘은 「抑」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3 |
29. 그래서 오늘은 「糖」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3 |
28. 그래서 오늘은 「蜜」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