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4
"저…… 저기, 오키타 군……."
"오늘부터 당신도 '오키타 긴토키'에요."
……그랬지 참. 예복 차림으로 대기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소년, 오늘부로 긴토키의 남편이란 타이틀을 달게 된 오키타 소고는 아주 침착했다.
"저기, 그럼…… 소고, 군……."
"'군'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뭐 됐어요. 왜요?"
"이거 진짜 해야되니? 응? 별로 결혼한다는 건 다 알렸으니까 불러모을 것까지야……."
"이미 다 불러모았잖아요. 다들 홀에 앉아있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리에요?"
"아니…… 그치만……."
진정이 되지 않는 듯 자꾸 홀을 훔쳐봤다가 자리 자리로 돌아왔다가,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괜히 사방의 벽을 다 짚고 다녔다가 바쁜 긴토키였다.
"긴장 돼요?"
"하?! 무무무무슨 소리 하니, 얘. 긴장이라니, 긴 상이 그럴 리가 없잖아! 별로 결혼한다고 공표하는 것 정도…… 별로…… 별로……."
"정각이네요. 홀로 가죠."
"엣?! 자, 잠깐만! 조금만 있다 가자, 응? 정각 됐다고 당장 주인공 입장이라니, 기다리게 하는 맛이 없잖아! 운치가 없잖아! 여기서 10분 정도 더 있다가……."
"시끄러워요. 이따 맹세의 키스 때 헐떡이게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요?"
"……."
긴토키는 반쯤 울먹이며 소고 손에 잡혀 나갈 수 밖에 없었다.
婚 : 혼인할 혼
①혼인하다 ②사돈 ③처가 ④처가 살붙이
히지카타인지 야마자키인지가 썼다고 하는 원고에는 분명 '먼저 이곳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가을이 시작되는 오늘,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라는 아주 딱딱한 멘트로 시작되는 장문의 연설의 쓰여있었지만
"에- 오키타 소고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오키타 긴토키가 된 내 사람이고요. 내 거라고 이름 써놨으니까 건드리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갈기갈기 찢어놓을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아, 이 사실은 되도록이면 널리 퍼뜨려 주세요. 전우주가 다 알고 있는 게 제일 이상적이네요."
소고는 위의 터무니 없는 멘트로 스타트를 끊었다. 긴토키는 얼굴을 감쌌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하지만 초청한 하객이 하객인 만큼 반응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웃음소리와 휘파람 소리. 놀리냐.
"전우주라! 목표는 원대할수록 좋지! 토시! 우리도 소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신센구미 전 차량에 써붙이는 게……."
"기각."
한쪽에서는 국장의 의견이 부국장에게 기각당하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결혼은 물론 경사지만 남자끼리 서류 위조한 건 자랑이 아니므로 차마 경찰이 할 짓이 아니었다.
"신 쨩, 오츠우 쨩도 긴 상이랑 몇 번 본 적 있으니 말해보면 어떠니?"
"아니, 누님. 오츠우 쨩이 그걸 어디에서 말하면 좋은 건데요? 기껏해야 예능 프로에서 농담으로밖에 못 써먹어요."
진짜 말한다면 전국으로 방송될 테니 사태 수습이 안 된다. 이쪽도 물론 공인이 방송에서 할 소리가 아니다.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하는 사람들. 긴토키와 소고의 지인들을 상대로 집중력을 바란 건 아니었으므로 둘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면 긴토키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소고가 한 마디 했으니 자기도 한 마디 해야하는 것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사정을 다 아는 사람들이라지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낯뜨거운 소리 하기도 싫다. 그렇게 긴토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때, 갑자기 홀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 모든 시선이 문으로 몰린다.
"이 결혼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하 동문입니다."
체구는 작지만 늠름한 여검사와 아름답지만 무시무시한 기계 메이드가 긴토키와 소고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별로 이거 결혼식이라기보단 피로연에 가까운데요. 그리고 주례고 뭐고 없으니까 이의 제기할 타이밍이 없거든?"
"긴토키, 질문에 대답해라!"
"너야말로 내 얘기 좀 들어라……."
엄청난 박력으로 외치는 큐베와, 그 옆에서 끄덕이는 타마. 비교적 앞자리에 신파치와 앉아있던 타에가 "어머, 큐 쨩 긴상 좋아했었니?" 같은 소릴 하고 있었다. 둔하다. 한편 가게의 기계 종업원이 결혼식을 파토 내려고 왔는데도 오토세는 쿨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이들 사랑 싸움엔 끼어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넌 대체, 저 자의 어디가 좋은 거냐!"
"참고로 전부 다, 혹은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혹은 좋아하니까 다 좋다 등 애매한 대답은 받지 않습니다."
부연 설명을 하면서 철컥하고 타마가 대걸레에 무언가를 장착했다. 포격을 가할 기세다. 집세를 받기 위해 무차별 포격을 가한 전과가 있다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질문을 듣고 히죽 웃는 소고.
"그것 참 나도 꼭 듣고 싶네요."
"태평한 소리 하지 말고 이 녀석들 말려!"
"이미 당신이 내 거라고 승부가 난 판에 뭐하러 패자들을 말려요?"
패자라는 말에 얼굴 근육이 꿈틀하는 두 사람. 대체가 이 녀석에게 공을 넘겨서 사태가 좋게 굴러가는 꼴을 못 본다. 긴토키는 방어 태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소, 소고 군이 왜 좋냐구? 그, 글쎄에 왜, 좋을, 까나……."
"애매한 대답으로 판단. 발포합니다."
"아니, 잠깐 좀 기다…… 히이이이이익!"
포격이 아니라 총격이었던 모양이다. 긴토키가 있던 곳을 수십개의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던 긴토키는 소고의 뒤로. 그의 어깨를 잡고 방패로 쓰고 있었다.
"아- 아-, 이거 수리비 물어줘야겠네요. 힘내요, 히지카타 씨."
"왜 나야?"
"히지카타 씨 카드로 긁을 거니까요. 지갑 열어봐요."
"하? 내 카드…… 잠깐, 야 임마 소고 너?!"
"잘 쓸게요."
"잘 쓸게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임마 당장……."
소고를 향해 달려가던 히지카타에게도 총격이 가해졌다. 순간 뒤로 후퇴하며 피하는 히지카타. 그 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곧장 타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 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위험하잖아!"
"긴토키 님의 대답을 방해하시는 분께도 발포합니다."
"쏘기 전에 말해라!"
근본적으로 인간이게 위해를 가해선 안 된다는 로봇의 기본 원칙은 날아간지 오래다.
"긴토키, 대답해라."
"아니 그렇게 갑자기……."
"결혼까지 하는 사이라면 그 정도 대답은 준비되어있을 터! 만족할 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싸워서 널 쟁취하겠다!"
"과격한 사랑이구만, 어이."
말하면서 검을 뽑아드는 큐베. 타마도 똑바로 들고있던 대걸레를 반대로 들었다. 그 쪽에선 대포라도 나오는 건가. 헤에, 하고 재밌다는 듯이 웃는 소고. 다들 호전적이다.
"야규 큐베라고 했던가요? 당신. 그 대답, 내가 대신 하죠."
"너의 의견은 들을 생각이 없다. 내가 듣고 싶은 건 긴토키의 대답이다."
"아뇨, 딴 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한 거라서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소고. 그의 뒤에 숨어있던 긴토키가 슬쩍 얼굴을 훔쳐봤다.
"당신들과 다르게 난 긴토키 씨를 손가락 하나로 천국에 보낼 수……."
소고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박혔다. 그 머리를 밟고 서는 긴토키. 저편에서 콘도가 "소고오오오오!"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다. 카구라가 "그대로 죽여버려라 해!"라며 응원(?)하고 있지만 그것도 무시. 긴토키는 소고의 머리를 힘줘 밟으면서 대답했다.
"얼굴. 그리고 경제력."
"기, 인토키…… 화 났으면, 말로……."
"시끄러."
겨우 들렸던 소고의 얼굴이 다시 바닥으로 쳐박혔다. 저쪽에서 신센구미가 탄성을 지르며 "그 오키타 대장님을!"라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냥 두면 긴토키를 연호라도 할 기세다.
"경제력이라면 내가 더 우위에 있다! 얼굴은…… 모르겠다만……."
"이미 한 번 지명 수배 당한 몸, 이제와서 죄가 더 커져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제 외견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에는 확신이 없습니다만."
은행이라도 털 것 같은 타마야 어쨌든, 확실히 경제력이라면 큐베가 더 우위에 있다. 뭐니뭐니 해도 대대로 막부 대신을 배출한 검의 명문, 야규가의 차대 당주니까. 큐베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긴토키는 손을 뻗어 두 사람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었다.
"둘 다 예뻐. 좋은 녀석들이고. 다만…… 뭐라고 해야하나…….
내가 이 바보한테 먼저 정이 들어버렸다."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고 웃는다.
"……."
"……."
말 없이 한동안 긴토키를 보는 두 사람.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웃어버리면 아무 말도 못 하는데. 물론 이미 늦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어, 어이……."
갑자기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둘을 보고 긴토키가 난감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긴토키의 발 밑에서 빠져나와 일어서는 소고. 긴토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곤 머리를 긁었다.
"남의 결혼식에서 울면 쓰나."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하란 게 아니라……."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던 타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큐베와 타마의 한쪽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정말, 둘 다 뭐하는 거니? 이런 반니트에 반무직에 남자한테 시집까지 가는 남자 때문에 울 거 없어."
"어이. 말 심하지 않냐?"
"어머, 제가 틀린 말 했나요? 일하기 귀찮아하고, 일도 별로 안 들어오고, 실제로 지금 오키타 씨랑 결혼하셨잖아요? 오키타 긴토키 씨."
"……."
굳이 바뀐 풀네임으로 부르는 타에. 아름다운 미소가 더 박력있다. 할 말이 없는 긴토키가 입을 다물자, 그녀는 양옆의 두 사람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자, 자. 울음 그쳐. 큐 쨩도 타마 쨩도. 술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하잖아!"
"누님, 그건 해결이 아닌데요."
"자, 여러분도! 이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사람들 앞에서 러브씬이나 찍는 게이 커플은 냅두고 우리 모두 마시도록 해요!"
"누니이이이임! 남의 결혼식 와서 할 소리가 아니에요!!"
여자랑도 할 수 있으니까 별로 게이는 아닌데 말이죠, 라는 소고의 중얼거림도 무시하고 타에는 다시 한 번 "마십시다!"라고 외쳤다.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찬동의 목소리. 이내 그것은 큰 환호성이 되어 홀에 울렸다.
"당신은 오늘 술 금지에요."
"왜?!"
"취하면 사람 안 가리고 달라붙으니까."
"내가 언제……!"
"전과라면 수도 없이 많지만, 일단 저번에 취한 당신이 나 덮친 거 찍어놨으니까 그거라도 보여줄까요?"
……기억에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확신을 갖고 부정할 수 없었던 긴토키는 결국 모든 테이블에서 술병을 기울이고 건배를 외치는 가운데 혼자 술잔을 들 수 없었다.
무조건 신센구미 통상 업무가 끝난 후에 식을 해야 한다고 히지카타가 우긴 덕에 저녁을 겸해 시작한 연회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새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저기 바닥에 뻗어버린 사람, 의자를 붙여서 거기에 누워 자는 사람, 테이블 위로 엎어진 사람 등등 기권자가 속출한 가운데 알콜을 한 모금도 못 마신 긴토키만 맨정신이었다. 물론 취해도 취한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오토세.
"설마 네가 남자랑 결혼하게 될 줄이야.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나지만, 인생 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아- 뭐…… 그렇게 되더라구."
"오래 사니까 참 재밌는 일도 생긴다."
오토세가 웃었다. 긴토키는 대꾸하지 않고 자기 무릎을 베고 의자 두개를 붙여 잠든 카구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시간 전에 새빨갛게 된 얼굴로 긴토키에게 와선 기분 좋은지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잠든 것이다. 술을 몇 모금 얻어먹은 것 같은데, 십중팔구 타에 짓이다. 참고로 신파치도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오츠우 노래를 부르며 음치를 과시하고 있었지만, 지쳤는지 조용히 있다가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술이 돌아 멍한 친구와 절대 취하지 않는 기계 아가씨를 양 옆에 끼고 기분 좋게 마시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간데다 여기까지 들리는 "오늘 밤은 불 태우는 거야!"란 함성의 발음을 볼 때 얼마 못 갈 것 같지만.
"전에, 죽을 땐 손자들에게 둘러싸여 죽는다고 하지 않았냐?"
"……뭐, 친손자는 단념하고 카구라한테 기대해야지."
"아서라. 이 초대형 위와 식욕 유전자를 지구에 남기겠다니, 망조다."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 오토세. 긴토키가 거기에 항의하려는데, 뒤쪽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부부부부장님! 진정하세요! 취하셨…… 끼야아아아아악!"
"토시! 정신 차려!"
"이거 놔! 난 제정신이야!"
히지카타가 한 팔은 야마자키에게, 한 팔은 콘도에게 잡혀 발버둥치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검. 아직 쓰러지지 않은 다른 신센구미 대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태를 우려하듯이 한 마디씩 던지고 있었다. 개중에 소고는 혼자 "잘 한다, 히지카타!"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웬일로 얼굴이 빨간 걸 보니 녀석도 취했다. 물론 지금 날뛰고 있는 히지카타도. 그나마 제일 멀쩡한 콘도와 야마자키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할복해서 사무라이답게 죽어 미츠바에게 사죄할 거라고!"
할복하는 것과 사무라이다운 것과 미츠바에게 사죄하는 것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문을 요구하고 싶어지는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별로 제수씨랑 결혼하는 게 꼭 소고의 인생을 망친다는 건……."
"망치는 거지 뭐야! 세상의 어느 누나가 동생놈이 남자랑 결혼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싶겠어?!"
"아니, 일반론적으로는 맞는 의견인데요 부장님! 좌우간 대장님은 행복하시다니까 그만 하세요!"
"그러고 행복하다는 소리가 나오게 키운 내 죄니까 죽겠다잖아! 놔!"
긴토키는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상황을 구경했다. 일단, 뭐…… 소고를 아끼긴 하다보다. 취해서 나사가 서너개 나간 것 같지만.
"네 잘못이 아니라니까, 토시! 그렇게 치자면 나도 연대 책임이다!"
"콘도 씨는 신경쓸 거 없어. 나 하나만 죽으면 되니까."
"그러니까 죽으면 안 된다니까요!"
"내 목숨 내가 끊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놔!"
"그래요. 놔버리세요, 콘도 씨. 히지카타 씨가 나 결혼 선물로 본인 목을 따주겠다는데 감사히 받아야죠."
상황이 더 꼬이고 있다. 벌써 몇 시간 째인데 아직도 저렇게…… 기운들도 좋아. 긴토키는 복숭아 주스를 새로 뜯으며 생각했다. 그 후로 한참이나 신센구미 쪽에서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다가, 술기운에 정신줄이 끊어져가는데다 체력도 바닥난 히지카타가 날뛰는 걸 그만 두면서 어느 정도 정리됐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서 미츠바, 미츠바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건 그닥 좋은 풍경이 아니다. 남의 결혼식에서 죽은 애인 이름을 연호해도 곤란하다.
"젊은이들은 기운도 좋네. 난 슬슬 들어가봐야겠다."
"그래, 그래. 집에 가 자, 할멈. 그 나이에 무리하면 하룻밤 사이에 황천 간다."
오토세의 주먹이 긴토키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아프다.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오토세 뒤에 "설마 그런 넋빠진 놈은 없겠지만 강도 조심해라, 할멈"이라고 인사하는 긴토키. 오토세는 한 번 손을 흔들 뿐이었다. 다시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려 복숭아 주스를 홀짝이고 있자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소고가 다가왔다. 아까까지 오토세가 있던 자리에 앉는데 그 움직임이 매우 불안스러웠다.
"긴-토-키-."
끝에 하트라도 붙일 기세다. 얼굴은 빨갛고, 거기에 안면 근육이 다 못쓰게 된 것처럼 실실 웃고 있다. 이만큼 취한 건 처음 본다.
"헤에- 너도 많이 마시면 취하는구나."
"당신이랑 마시면 안 취해요. 당신이 나보다 훨씬 빨리 취하니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상태 안 좋네, 이 녀석…….
"내일…… 아니, 오늘 아침부터 당장 통상 업무라면서 너랑 신센구미 녀석들 이렇게 마셔도 돼? 조금 있으면 동 트는데."
"괜찮아요. 다들 장점이라곤 싸움질이랑 몸 튼튼한 거 밖에 없으니까. 두들겨 패면 깨겠죠."
무장 경찰 신센구미, 장점이 싸움질이란다. 어쩌면 좋냐, 에도. 긴토키가 에도의 앞날을 걱정하며 복숭아 주스를 새로 따르는데, 소고가 "아아!"라며 큰 소리를 질렀다.
"차이나, 또 이게……!"
긴토키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카구라를 이제야 본 모양이다. 이 상태로 있은 지 꽤 됐는데……. 이글거리는 눈으로 카구라를 보는 소고. 긴토키는 복숭아 주스를 마시며 생각했다. 조금은 어른이 됐나 했더니, 알콜 때문에 유아 퇴행한 모양이다.
"……뭐,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용서해주죠."
"웬일이야?"
"무릎 베고 자는 거 정도 어때요, 오늘 당신이 내 거라고 선언했는데."
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긴토키의 목에 매달리는 소고. 취하면 깜찍한 짓도 하는구나. 그는 주스를 엎지르지 않게 조심하면서 소고의 등에 팔을 올렸다.
"기인토키~ 긴토~ 키~ 긴토키~ 오키타 긴~ 토~ 키~."
"무슨 노래야, 그게."
긴토키가 웃었다. 그의 이름에 묘한 가락을 붙여서 흥얼거리는 소고. 조금 있다가 잠꼬대라도 하는 듯이 "세레나데?"란 대답이 돌아왔다. 뺨에 닿는 뺨이 뜨겁다.
"그러고보니, 오늘 우리 첫날밤인데."
"첫날밤이고 뭐고 없잖아, 할 짓 다한 게 언젠데."
"그래도요. 아까우니까 지금부터라도 할래요?"
"주스 머리에 붓는다, 너."
하면 더 술 빨리 깰 텐데. 중얼거리긴 했지만 일단 진심은 아니었는지 소고는 그 이상 조르지 않았다. 가끔 의미없는 콧소리를 내면서 다시 세레나데(자칭)의 가락을 흥얼거린다. 졸린가.
"졸리면 자."
"아까우니까 싫어요. 잠은 이따…… 하암…… 근무 시간에 자면 되고……."
"땡땡이 대마왕."
"흐흥."
"칭찬 아냐."
긴토키의 뺨에 뺨을 비빈다. 그리고는 조금 얼굴을 돌려서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고, 이번엔 입술에. 닿았을 뿐, 금세 다시 떨어졌다. 이번엔 손을 든다. 손등. 손가락. 손가락 끝. 뒤집어서, 손바닥. 손목. 키스의 세례는 다 끝났는지 그 손을 이끌어선 자기 얼굴로 가져갔다. 뺨에 댄다.
"내 거."
아주 기분이 좋아보인다. 긴토키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아직 부드러운 뺨을 가볍게 쓰다듬다가, 뒷통수로 손을 가져가 자기 쪽으로 끌었다. 순순히 쫓아오는 소고. 그 뺨에 입술을 잠깐 댔다가, 떨어지고. 입을 맞췄다가, 다시 떨어진다.
"내 거."
속삭이는 소리. 소고가 웃었다. 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하고, 소년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해서. 그것은 앞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사람의 얼굴이라. 그런 그를 자기 것으로 한 게 죄책감도 들고, 기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해서 괜히 두근거렸다.
"아무리 멋진 남자로 커도 나 버리고 가는 거 아니다. 발목 잡고 늘어져 줄 테니까 각오해."
"아라라. 그럼 당신이 아까워서 절대 나 못 떠나도록 잘 커야겠네요."
입술이 맞닿는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은혼 > 그래서 오늘은 「 」자를 썼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그래서 오늘은 「蜜」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3 |
---|---|
27. 그래서 오늘은 「甘」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3 |
25. 그래서 오늘은 「友」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2 |
24 附. 그래서 오늘은 「惑」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2 |
24. 그래서 오늘은 「離」자를 썼습니다. (0) | 2013.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