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30 작성.
2월이 코앞인 카부키쵸. 긴토키와 카구라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서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카구라의 옷 주머니엔 신파치가 건네준 사올 물건 리스트. 계란, 우유, 간장 등등. 그리고 거기 써있지는 않지만 긴토키의 딸기 우유라든가 카구의 초절임도 목록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눈은 오지 않을 것 같은데 하늘을 흐렸다. 긴토키의 파란만장했던 1월이 그렇게 끝나려 하고 있었다.
뭐가 파란만장 했냐면, 자칭 귀여운 애인이라는 오키타 때문이다. 12월 초에 사귀기 시작한 것이 1월에 들어서 첫키스에, 첫…… 뭐 어쨌든 그것까지 전부 치뤄버렸다. 너무 진도가 급하게 나간 감이 있다고 긴토키는 느끼고 있었지만 오키타와 처음 한 이불을 덮고 잔 것도 이제 슬슬 일주일이 되가고 있었다. 그 다음 날은 오키타가 비번이라 하루 종일 둘이서 해결사 사무소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식사도 같이, TV 시청도 같이, 별 거 아닌 얘기도 서로에게만. 그리고 이따금 오키타 안의 스위치가 온으로 바뀌면 이부자리라든가 소파로 끌려가고. 긴토키의 강력한 반대로 목욕은 같이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로에게 지극히 충실한 하루였다.
그러고보면 어제는 낮에 잠깐 만나서 같이 간식을 먹었지만, 저녁에 신센구미에서 연회가 있다고 그대로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은 벌써 슬슬 해가 질 시간. 만 하루하고 조금 더 얼굴 못 봤다. 보고 싶다.
"형수님――!"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긴토키가 무심코 "오키타 군 보고 싶다"라고 중얼거릴 뻔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姐 : 누이 저
①누이 ②여자 ③계집애
④아주머니 ⑤교만하다
"형수니이이이이이임!!"
누구 목소리지? 라든가 누굴 부르는 거지? 라는 의문을 가질 틈도 없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죽을동 살동 뛰어와서는 긴토키의 키나가시 소매를 간신히 붙잡았다. 긴토키는 반사적으로 뒤돌아봤다.
"……지미?"
신센구미 밀정이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형수님, 제 얘기 좀……."
"아니, 스톱. 엄청 뛰어온 걸 보면 네 사정 급한 것 같긴 한데, 일단 스톱."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올려다보는 야마자키. 옆에 있는 카구라는 초절임을 질겅이며 그런 야마자키를 한심하단 눈으로 보고 있었다.
"지미, 너 지금 나한테 뭐랬니?"
"제 얘기 좀 들어달라고…."
"그 전에."
"형수님……."
"그래, 그거."
긴토키는 일단 한 번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이었다.
"그 형수님, 혹시 긴 상? 아니, 혹시고 뭐고 나지?"
"네……."
"……왜?"
그제인지 그그제인지 확실하진 않아도 저번에 야마자키를 만났을 땐 그렇게 불리지 않았다.
"엣…… 저어……."
야마자키는 일단 일어섰다. 곤란한 듯 시선은 피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긴토키가 계속 빤히 보고있자 단념했는지 입을 열었다.
"어제, 신센구미에서 연회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입을 뗀 야마자키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어제 신센구미에선 꽤 늦게 내려온 신년 특별 수당을 갖고 연회를 벌였다. 콘도가 전라가 돼서 분위기를 띄우고, 히지카타가 뜯어 말리다가 포기하고 수수방관하고 오키타는 취한 척 하고선 그런 히지카타를 괴롭히고. 그것이 평소 연회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오키타가 진짜로 취한 것이다. 별일이었다. 그는 오니요메를 좋아하긴 해도 웬만해선 취하지 않는데다 취해도 가만히 술병 껴안고 자는 타입인데.
하지만 오키타가 취한 것 정도로 술자리에 크게 이변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어서, 늘 그렇듯이 연회는 야한 얘기 하기로 흘러갔다. 여름이면 하다못해 무서운 얘기를 하겠지만 남자밖에 없는 곳에서 하는 얘기가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그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야한 얘기를 하다가, 결국 오키타 차례가 왔다. 웬일로 술에 취한 상태, 그 때문인지 말도 안 되게 하이 텐션인 오키타는 지극-히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오키타씨가 한 얘기가…… 그…… 저기……."
"아니, 응. 됐어. 미안. 그 정도면 알아들었어. 이제 말하지 마."
긴토키의 안색이 매우 안 좋았다.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긴토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에 큰 눈을 깜빡이며 올려다보는 카구라. 아이의 순수한 눈동자를 긴토키는 애써 외면했다.
그러니까 저건 긴토키가 추측컨데, 오키타가 한 얘기는…… 자기 얘기다. 한 거다, 그 얘기를. 주로 첫날밤이라든가 첫날밤이라든가 첫날밤이라든가.
"아…… 그 뭐냐. 지미. 미안하게 됐다, 그…… 안 좋은 얘기 듣게 해서."
"아아뇨, 아뇨. 형수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나름 재밌었어요."
"……."
그건 그것대로 난감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지미, 아무리 그래도 굳이 그렇게 형수님이라고 부를 것까진 없지 않아?"
"아- 이건 어쩔 수 없어요. 국중 법도라."
"에――?!"
신센구미 갈 데까지 갔다. 그리고 카구라의 인내심도 갈 데까지 갔다. 적당히 끝날 줄 알고 얌전히 기다려주고 있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국중 법도라니, 어이……. 왜?!"
"그 얘기, 뒤가 있거든요. 오키타씨가 얘기 시작하자마자 부장님이 뜯어말렸는데, 갑자기 '게임을 해서 이기는 쪽에 전부 몰아주기' 뭐 그런 분위기로 가서요."
"뭐야 그게."
"그러니까, 부장님이 이기면 오키타씨는 당장 그 얘기를 그만하고 내일부터 성실하게 일할 것. 오키타씨가 이기면 그 얘기 전부 듣고 신센구미 전원 나으리에게 형수님, 국장님과 부장님은 제수씨라고 부르라고 국중 법도에 조항 만들기."
"……."
오키타, 취하면 승부사 기질 나오는 타입이구나. 긴토키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서있자, "어이, 야마자키. 거기서 뭐 하냐"라며 또 다른 한 사람이 등장했다.
"……여어, 제수씨."
패자다.
"아, 부장님……. 지금 막 나으리……가 아니라 형수님께 어제 일 얘기하던 참이었어요."
"히-지-카-타-군-. 보통 그런 거에서 지니? 응? 신센구미 귀신 부장이잖아?! 보통 그런 내기에서 지니-?!"
"어쩔 수 없잖아! 소고 녀석이 평소엔 늘 가위 내면서 어제만 보자기 냈으니까!!"
아무래도 그 '게임'이란 것의 내용은 가위바위보였나보다.
"그리고 따지자면 네 잘못이잖아?! 누가 소고랑 저지르래?!"
"다아아아아아!! 조용히 해애애애애애애!!! 우리 애 듣는다 마요라아아아아아!!!"
황급히 카구라의 양 귀를 막는 긴토키. 이미 늦은 것 같지만.
"애까지 딸려있으면 좀 더 정숙히 살란 말이다-!"
"부장님, 논점이 흐려졌는데요. 그리고 따지자면 차이나 아가씨는 형수님 애 아니에요."
"우와- 그래 넌 실수 안 한다 이거냐?! 미남이라 여자 많이 꼬이지만 절대, 실수로라도 생길 짓은 안 한다 이거야?!"
"형수니이임!! 방금 애 듣는다고 뭐라 한 사람이 할 말이 아니잖아요-!!"
"애초에 야마자키, 네 놈이 그 때 소고한테만 얘기 안 돌렸어도 일이 이렇게……."
히지카타는 열과 성의를 다 해 야마자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중간에 뚝 끊어졌다.
호쾌하게 날아온 바주카. 야마자키, 히지카타, 긴토키와 카구라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는 규모는 작지만 순간 폐허로 변했다.
"좀 조용히 하지 그래요? 히지카타 씨. 안 그래도 이 쪽은 아주 간만의 숙취 때문에 머리 아픈데……."
웬일로 기분이 별로 안 좋아보이는 오키타가 한쪽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나타났다. 한쪽 눈을 감다시피 찡그리고 있던 그는 연기가 걷히자 한창 하얀 그림자를 발견하고 눈을 번쩍 떴다.
"나리!"
회생했다. 파앗-하고 마치 뒤에 꽃이라도 피듯이 밝아지는 얼굴. 그는 그대로 긴토키를 향해 달려가려다가,
"오-키-타-군-."
일단 동작을 정지했다. 뭔가… 화내고 있지 않나……?
"거기 정좌."
오키타는 얌전히 그 자리에 바로 정좌했다. 그 광경을 입을 헤 벌리고 보고 있는 야마자키. 히지카타는 그런 부하를 질질 끌고 거리 한쪽에 있는 경단 가게로 향했다. 이윽고 영 불만스러운지 볼을 부풀리고 있는 카구라도 우산을 접고 그 옆에 앉았다. 아무래도 긴토키 옆에 계속 있고 싶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닌 듯 했다.
"너 대체 무슨 소릴 하고 다니는 거야―――!!"
본격적으로 긴토키가 화내기 시작했다. 히지카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카구라는 새 초절임을 꺼내 입에 물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멍하니 있는 야마자키.
"부장님…… 국장님 외에 오키타씨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군요……."
"뭐, S 왕자도 자기 애인한텐 약하단 거지."
"하아……."
"그러고보니 야마자키, 너 왜 소고랑 순찰 돌다 튄 거야?"
"오키타씨가 숙취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계속 갈구잖아요…… 그래서 일단 살아보려고 튀었는데 형수님이 보여서……."
여전히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있는 긴토키. 중간중간 오키타가 뭐라 대꾸했지만 아무래도 그게 더 화를 돋구고 있는 듯 했다. 결국 긴토키의 춉이 오키타의 머리에 작렬한 순간 카구라는 옆에 앉아있는 히지카타에게 말을 걸었다.
"마요-."
"아?"
"요전에 나 신파치네 집에 자러 갔었다 해."
맥락이고 뭐고 없었다.
"그 때 왕언니가 그랬다 해."
"……형수님 얘기냐?"
"왕언니 그 얘기 듣고 고릴라한테 헥토파스칼 킥 날렸다 해."
"아- 과연."
요전에 반쯤 죽어서 돌아온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왕언니가 그랬다 해. 긴쨩 나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 만큼 저 자식도 좋아한다고."
"……."
"긴쨩 나랑 있는 거 엄청 행복하지만, 저 자식이랑 있는 건 또 다르게 행복하다고."
삿대질까지 해가며 온힘을 다해 소리지르던 긴토키의 기세가 한 풀 꺾였다.
"그러니까 저 자식이 긴쨩한테 꼭 붙어있어도 봐주고, 저 자식 오면 자리 피해주는 게 좋다고."
"……."
"신파치한테 물어보니까 좀 망설이긴 했지만 그게 맞다고 했다 해."
"그야……."
이때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키타. 반사적으로 긴토키가 한 걸음 물러섰다.
"마요도 그렇게 생각하냐 해?"
"…뭐, 원칙적으로는."
"마요도 저 자식이 긴쨩이랑 같이 있으면 딴 데로 가냐 해?"
"남의 연애사 봐서 좋을 거 없으니까."
오키타가 웃으면서 긴토키의 손을 잡았다. 형세역전.
"……엄마 뺏겨서 쓸쓸한 건 알겠는데, 좀 봐줘라."
"애 취급 하지마, 이 동공이."
"어이, 표준어다."
"이 구라씨를 애취급 해도 되는 건 마미- 뿐이다 해."
"아 그러셔."
갑자기 긴토키와의 거리를 좁히는 오키타. 그가 무슨 말을 하자 긴토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뭐, 구라씨는 저 자식이랑 다르게 어른이니까."
"……."
"그러니까 마미-가 행복해 보이면 못 봐줄 것도 없다 해."
"그러냐. 우리 애물단지놈 봐줘서 고맙구나."
"흥."
카구라는 탓 하고 일어섰다. 이제 슬슬 끼어들어도 될 것 같다. 소녀는 발걸음을 떼면서 한 번 돌아보고는,
"니코칭코, 저 자식이 마미- 울리면 그날부로 아작 낼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해."
"네 맘대로 해라. 아니, 협력하마."
"나 하나로 충분하다 해."
그렇게 한 마디. 기 센 꼬맹이. 히지카타는 담배를 문 채 그렇게 말을 뱉어버리고 그 뒷모습을 지켜봤다.
갑자기 속력을 내더니 오키타를 향해서 날아차기. 간발의 차로 피하는 오키타. 소년이 뭐라 아이에게 소리지르고, 아이도 지지 않고 받아치고. 중간에 선 청년이 둘을 중재하지만 역부족인지 둘 다 무기를 손에 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청년이 택한 방법은 줄행랑. 그는 냉큼 아이를 품안에 안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청년을 애타게 부르며 뒤쫓아가는 소년.
"저기, 부장님…… 형수님이랑 차이나 아가씨에 오키타씨까지 가버렸는데요……."
"냅둬. 어차피 일 시켰어도 머리 아프다고 툴툴거리면서 안 할 놈이야. 야마자키, 네 담당 구역은 오늘 나랑 돈다."
"에에에에에?!"
―――1월 막바지, 오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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