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아소211 완매 감사 엽편.
오키긴이 잘 되면 오키타가 긴상이랑 노느라 히지카타 괴롭히는 시간은 줄어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히지카타 명은 더 줄 것 같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말을 합창하고서 두 사람은 하얗게 입김을 뱉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통행인 몇몇이 흐름에 섞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그들을 방해된다는 듯이 흘겨보았지만 두 쌍의 붉는 눈에는 서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 별로 소용은 없는 일이었다.
한 반짝만 내딛으면,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 뛰어서인지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하얀 얼굴이 뺨과 코만 붉게 물들어서 괜히 더 사랑스러웠다.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으면서 날씨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스하게 웃고 있는 눈가와 입가. 황토색 머리카락 위에 살짝 눈이 쌓여서 빛났다. 그것을 털어주려고 긴토키가 손을 뻗는데, 뜻밖에도 오키타의 몸이 먼저 긴토키에게로 다가왔다.
“나, 리…….”
오키타의 이마가 긴토키의 어깨에 닿는다.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체온에 절로 몸이 굳었다. 하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는 건지 이마만이 아니라 양손까지 긴토키의 등과 허리에 둘러서, 그가 집에서 나올 때 대충 걸친 하오리를 꼭 쥐었다. 그렇게 세게 안 잡아도 이제 도망 안 간다니까 그러네. 긴토키는 어찌할 도리 없이 허공에 머물러 있던 손으로 자기도 소년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 손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때 소년이 다시 한 번 “나리…….”라고 긴토키를 불렀고, 긴토키가 거기에 대답하려는 찰나.
“어지러워요…….”
……응?
“엣, 잠깐, 오키타 군?!”
그냥 기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온몸의 힘을 빼고 자기 쪽으로 쓰러지는 소년을 긴토키는 반사적으로 받아냈다. 눈을 씻고 봐도 군살이 없다고는 해도 작지 않은 키에 또래 소년보다 확실하게 많은 근육양을 보유하고 있는 오키타의 몸은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키타가 쓰러지지 않게 확실하게 지탱한 긴토키는 기합 소리를 한 번 내며 그의 상반신을 자기의 몸에서 떼어냈다.
“새빨게!”
소년의 얼굴은 그렇게 소리치지 않을 수 없는 경고색이었다. 아니, 아까까지 얘 얼굴 하얗지 않았어?! 뺨이랑 코는 빨갰지만! 그러고 보면 어깨에 이마가 닿았을 때도 둘 다 나름 껴입었는데 체온이…….
“뜨거!”
한 손으로 오키타의 이마를 짚은 긴토키는 불에 달군 철판이라도 건드린 양, 엄청난 속도로 손을 거뒀다. 어지럽다는 말과 새빨간 얼굴, 데일 것 같은 체온.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오키타의 현재 몸 상태는, 인간이 평생을 통틀어 200번 쯤 걸린다는 매우 일반적인 그 질병밖에 없었다.
“오키타 군 있지…… 고백하자마자 감기로 쓰러지는 건 좀 너무 폼이 안 살지 않냐……?”
긴토키의 말에 대답해야할 소년은 이미 의식이 열에 지배당한 듯, 뜨거운 숨을 몰아쉴 뿐 대꾸가 없었다. 결국 청년은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무슨 일인가 자신들을 주시하는 통행인들의 시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자기보다 조금 작을 뿐인 소년을 업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천장이 아니라 흐릿한 둥근 윤곽이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인다. 하얀 윤곽은 천천히 그 선이 명료해지더니, 곧 요즘 내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 떴는데……?”하고 아직 제대로 부상하지 않은 의식 속에서 중얼거리자,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열이 아직 안 떨어졌나……. 아니, 이제 슬슬 떨어져야 되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마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시원한 게 닿아서 기분이 좋아 반사적으로 다시 눈을 감았던 오키타는 그것이 긴토키의 손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른 도로 눈을 떴다.
“덜 먹였나? 그치만 15세부터 18세까지 세 숟갈이라고…….”
자기보다 체온이 몇 도는 낮을 것 같은 손이 이마에서 떠나려는 것을 오키타는 반사적으로 이불 속에 있던 자기 손을 뻗어 잡았다. 해열제를 찾으려는 듯이 소년을 떠났던 긴토키의 시선도 함께 돌아왔다.
“오키타 군-. 제정신 씨 계십니까-?”
“당신이 내 환각이 아니면, 아마 계실 걸요…….”
“거 다행이네.”
그가 조금 웃기에, 오키타도 따라 웃었다.
“꿈 아니네요.”
“응?”
“아니, 머리가 멍해서…… 오늘 있었던 일이라든가, 당신이 지금 여기 있는 거라든가 전부 다 꿈인 것 같았는데…….”
“내가 너 여기까지 데려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게 꿈이냐고? 때린다?”
“환자한테 폭력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리.”
입과 목이 마른다. 목소리에서인지 아니면 표정에서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듯한 긴토키가 얼른 옆에 있던 쟁반에서 물 컵을 건네주었다.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휘청하는 것을 그의 부축을 받아 고정시키고 물을 마신 후, 오키타는 얼른 다시 요 위로 돌아갔다. 쟁반에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나리가 입으로 먹여주면 일어날 필요 없었는데.”
“네 정신적 회복 능력에 긴 상은 존경심이 다 생길 것 같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죽을 상 하고 있었다는 놈이.”라며 긴토키가 중얼거렸다.
“나리도 참. 아침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리가 없잖아요. 타이틀이 다른데.”
“……그러셔.”
씩 웃으며 말하는 소년에게 긴토키는 무슨 타이틀이 다른 건지 굳이 묻지 않고서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새하얀 뺨이 아주 조금 붉어서 오키타는 또 희미하게 웃었다. 그야 열이 있는 지금의 자신과는 댈 것도 없겠지만 평열 자체가 꽤 낮은 저 사람이 저렇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나리.”
부르면, 지금 자기 얼굴을 보이기 싫은 건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면서도 오키타 쪽을 본다. 소년은 그것을 확인하고서 머리를 조금 들고 몸을 긴토키 쪽으로 튼 후, 손으로 방금까지 자기 머리가 있던 곳을 툭툭 쳤다.
“무릎, 여기.”
그 뜻을 바로 이해한 긴토키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너, 여기 둔소 네 방인 거 아냐……?”
“자기 방 정도는 알아요, 나도.”
“고릴라나 마요라는 몰라도 야마자키라든가 다른 녀석들 몇 명은 지금 여기 있거든……?”
“그래서요?”
다시 침묵. 하지만 곧 한숨과 함께 긴토키가 몸을 일으켰다. 오키타는 그가 해열제와 물, 젖은 수건이 담긴 대야가 올라있는 쟁반을 끌고 자기 머리 쪽으로 이동해 다시 앉는 것을 지켜본 후 긴토키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그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고 긴토키는 다시 한숨을 쉬고서 땀에 젖은 소년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바보는 감기 안 걸린다는데 왜 넌 걸리는 거야? 뭐야, 바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냐? 응?”
“나리도 전에 걸린 적 있잖아요. 나리가 걸리는데 내가 안 걸리겠어요?”
긴토키의 하얀 손이 열이 올라 조금 붉은 소년의 뺨을 꼭 집었다. 무언의 응징에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잘못했어요.”라고 사과하자 그 손은 곧 떨어져서 다시 머리카락을 쓰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야, 나리, 일주일 쯤 히키코모리 생활한 후에 날도 추운데 비 맞으면서 그 난리를 치고 한 잠도 못 자면 몸에 이상이 오는 게 인간으로서 예의잖아요.”
“직전까지 쌩쌩했잖아, 너.”
“당신한테 좋아한단 소리 듣고 몸이 비상경계 태세 해제한 게 아닐까요.”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긴토키로서는 할 말이 없다. 긴토키는 잠시 말없이 오키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소년이 다시 눈을 감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무릎으로 전해지는 그의 체온은 아까보다는 낮을지언정 아직 열이 내렸다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역시 물약을 먹인 게 안 좋았나. 하지만 아까는 알약을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저녁 약은 설명서 다시 읽고…….
“전에도 생각했는데, 나리 다리는 하나도 안 부드럽네요.”
“그럼 내려와, 인마. 네 머리도 꽤 무겁거든?”
“나리 생각이 잔뜩 들어 있어서 그래요.”
“…….”
“그리고 안 부드럽다고는 했지만 싫다고 한 적은 없어요?”
“…….”
“어-라-?”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는 않을까 싶을 만큼 긴 속눈썹이 들리고 붉은 눈이 나타나서 긴토키를 비추었다. 입가가 자연스럽게 호를 그린다.
“나리, 나한테 감기 옮았어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긴토키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지만, 자기보다 한참 아래서 올려다보는 오키타의 눈에서는 도망칠 수 없었다.
“나리.”
시계의 구석에서 오키타의 손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긴토키는 보고만 있었다. 뜨거운 손끝이 뺨에 닿는다. 고개가 다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간다.
“어차피 감기 옮았으면, 옮아도 상관없는 일 할까요?”
감기 아닌 거 알면서 잘도 이런 소리가 나온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저녁 먹고 약 먹고 자.”라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정작 밖으로 나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한 번 정도로는 안 옮아.’라든가 ‘나 때문에 아프다니까.’하는, 오키타를 변호하는 말들만 끊임없이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혀서 긴토키는 어느 새 자신의 뒤통수로 올라가 상반신을 아래로 누르는 소년의 손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뜨거운 숨이 얼굴에 닿는다. 열은 없을 텐데 괜히 자기 숨도 뜨거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
“어이, 소고 녀석 몸 상태는…….”
……응. 왠지 조금은, 이렇게 될 것도 같았지만…….
“……쓸데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양이구나.”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긴토키를 대신해 거하게 한숨을 쉰 오키타가 짜증을 감추지 않는 표정으로 장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짜증과 멋쩍음이 7:3 비율로 섞인 표정의 히지카타가 장지문을 연 상태로 굳어 있었다. 아직 복도에 있는 건지 조금 멀리서 “토시! 소고는?!”이라는 콘도의 목소리도 들렸다.
“내가 네놈 사고 친 거 뒤처리 하느라 톳 쯔앙부터 시작해서 막부의 온갖 고관들이랑 쇼군 일가의 면면들에게 그렇게 서신을 쓰고 고개 숙이고 사정하고 있는 동안, 네놈은 해결사랑 붙어먹느라 바쁘셨다 이거지……?”
“그거 큰일이었겠네요, 히지카타 씨. 수고했어요. 그리고 우리 아직 안 붙어먹었어요.”
“누가 그런 거 물었냐———?! 내가 너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그래도 아프다는 놈 멱살 잡을 수 없어서 군말 없이 겨우 수습하고 왔더니 이게 아주……!”
“마요라, 스톱! 그렇게 안 보일지는 몰라도 아직 열 안 내려서 얘 아직 환자거든?!”
발도할 기세의 히지카타를 긴토키가 말렸지만, 오히려 그게 역효과인 모양인 듯, 아까부터 한계를 시험하던 히지카타의 혈관이 툭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애를 아주 아작 냈던 놈이 지금 뭐가 어쩌고 어째?! 애초에 네놈이 이 깡통한테 넘어가지만 않았으면 이 사단이 났을 것 같냐?! 아앙?!”
“히지카타 씨, 그건 나리 책임이 아니라 나랑 공동 책임…….”
“넌 닥치라고!”
“나리, 히지카타 씨가 괴롭혀요.”
으르렁거리는 히지카타를 피하는 듯이 오키타가 긴토키의 허리를 양손으로 안으며 매달렸다. 아마 네가 평소에 100배 쯤 더 괴롭힐 테니까 이건 괴롭히는 축에 안 들어가지 않아? 긴토키는 생각하지만 굳이 말로 하진 않고 자기 배에 얼굴을 묻고 있는 오키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화내고 있는데 붙어먹지 마————!”
아 글쎄 아직 안 붙어먹었다니까 그러네.
“소고! 몸은 괜찮냐?!”
“콘도 씨, 당신도 이놈들한테 뭐라 한 마디…….”
“아프다길래 네가 좋아하는 죽 사왔다! 해결사도!”
“역시 콘도 씨. 누구랑은 다르게 배려심이 넘치네요.”
방금까지 긴토키에게 찰싹 붙어있던 오키타가 얼른 일어나 콘도가 갖고 온 종이 봉지를 받았다. 유명한 죽 프랜차이즈 로고가 박힌 종이 봉지 안을 확인한 오키타는 고개를 들고서 긴토키에게 “나리, 전복죽이랑 단팥죽 중에 어느 게 좋아요?”라고 물었고 단 것을 좋아하는 남자의 대답은 굳이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곧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콘도가 긴토키에게 오키타의 용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열이 아직 좀 남아있는 것 빼고는 괜찮은 모양이라는 대답을 들으며 히지카타는 터덜터덜 걸어 다시 장지문 밖으로 나가 뒤뜰과 마주한 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리, 나 팔에 힘 하나도 없으니까 먹여주세요.”
“방금까지 나한테 찰싹 붙어있던 놈이 무슨 소리야?”
“지금 막 힘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아-.”
“…….”
“핫하하! 사이좋구나, 니들!”
어쩌면 이 신센구미에서 자기편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고, 태우기가 무섭게 방에서 “어이, 거기 니코틴 중독. 피우려면 다른 데 가서 피워. 여기 환자 있거든?”이란 긴토키의 목소리에 사람 하나 그대로 찔러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돌아봤지만 이어진 “맞는 말이다, 토시! 소고가 아직 아픈데 담배 연기 같은 거 마시면 안 되지!”라는 콘도의 말에 어깨를 툭 떨어뜨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그러지 마세요, 콘도 씨. 원래 히지카타 씨가 마요네즈 중독 부작용으로 이런 눈치가 하나도 없잖아요.”라는 오키타의 말에 힘없이 일어나 오키타의 방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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