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전엔 감사했습니다.”

   카가미의 생각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가까운 거리에서 들린 목소리에 의해 강제로 중단되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비명을 직전에 어떻게든 억누르고서, 카가미는 고개를 홱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봤다.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년. 남에게 별 관심이 없는 카가미가 이 형무소에 오면서 처음으로 얼굴을 외운, 입소 수속 때 성희롱을 당하던 그가 무표정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시에도 생각했지만 조금 인간 같지 않을 정도로는 존재감이 없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일본어로……?!

   “……저기, 일본인 맞죠? 순전히 감이라 확신은 없습니다만.”

   감사 인사를 일본어로 해놓고 이제 와서 물어볼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기억력에는 별로 자신이 없지만, 동양인이긴 해도 절대 일본어가 이렇게 술술 나올 이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너야말로 프랑스계 어쩌고 아니었냐……? 쟝…… 에…….”

   “미들 네임부터 하나도 기억 못 하면서 어떻게 퍼스트 네임은 기억하고 계시네요.”

   잘 모르겠지만 터무니없이 실례되는 녀석이다. 생각하며 카가미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충분히 위협적인 눈길로)내려다보고 있자 본인도 자각은 있는지 가볍게 손을 들며 “실례.”라고 한 마디 보태고서.

   “입소 수속 때 불린 이름은 그게 맞습니다만, 제 이름은 쿠로코입니다. 쿠로코 테츠야.”

   무슨 짓을 해도 일본인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입소 수속 때 불린 이름이랑 자기 이름이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애초에 입소 수속이라는 건 이름이랑 사진이랑 대조하면서 본인 맞는지 확인하는 거…….

   “존.J.스미스 씨, 맞죠?”

   ……아아, 나도 입소 수속 때 이름이 내 이름 아니었지 참. 하고 카가미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린 것이었다. 본인 신고에 따르면 ‘쿠로코’라는 이름인 모양의 그에게 뭐라 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빨간 머리 남자 쪽에서 알아서 처리했다고 하는 신분 증명은 사진까지 완벽하게 위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가미 본인만 ‘자기 이름’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는 한 아무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스스로도 조금 불안했으나 우려와는 다르게 카가미는 일단 지금까지는 잘 해왔고, 앞으로 3년도 그럴 예정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본명을 밝힌다는 건 언어도단이지만, 이미 그는 ‘쿠로코 테츠야’라는 그의 본명을 들어버린 뒤였다. 상대가 먼저 본명을 밝혔는데 이쪽이 가명만 대고 넘어간다는 것은 카가미가 생각하기에 매우 불공평한 일이었다.

   “……카가미. 카가미 타이가. 존 아냐.”

'쿠로코의 농구 > 개미지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미지옥 2.(19금샘플)  (0) 2014.01.20
개미지옥 2.(전연령공개샘플)  (0) 2014.01.19
개미지옥 1.(19금샘플)  (0) 2014.01.18
개미지옥 0.  (0) 2014.01.18
개미지옥  (2) 2014.01.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