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獄道(샘플)
그리고 긴토키는, 발산할 곳 없는 스트레스에 뇌신경이 타들어가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걸걸한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이따금 섞이는 노이즈도, 삐익 하고 고막을 찌르는 소리도. 소리도 소리지만 내용도 내용이다. 하늘의 뜻이 어쩌고 막부가 어쩌고 대의가 어쩌고. 마치 이 땅 위에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웃기지 마라 인마. 어차피 너도 그거잖아? 집에서 바가지 긁어 줄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는 그런 타입이잖아. 아니면 그거냐? 시간 나면 집 대신 핑크색에 네온이 번뜩번뜩한 가게에 들어가는 그런 타입이냐? 어느 쪽이 됐든 얼굴 보고 둘이 그럴 마음만 있으면 쪽쪽거릴 수 있잖아. 물고 빨고 핥을 수 있잖아. 내키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박고 박힐 수 있잖아. 도구든 방치든 SM이든 뭐든 맘에 드는 걸로 피버 나이트 할 수 있잖아. 꿈과 희망과 모험의 세계가 기다리잖아. 그런데 대의가 뭐 어쩌고 어째?
“저 배가 부른 놈의 새끼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사사키와 콘도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긴토키. 앞머리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어이, 긴토키?”하고 콘도가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해서 혹시라도 안 들렸나 싶어 그가 다시 입을 여는데, 긴토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대의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하고 싶은 놈이랑 붙어 있어도 아무 짓도 못 하는데 대의는 무슨 얼어 죽을…….”
“기, 긴토키……?”
뺨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걸 자각하면서도 콘도가 다시 한 번 긴토키를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무반응. 급기야 차안의 이토와 이야기를 하던 히지카타까지 뒤돌아보았다. “콘도 씨, 무슨 일이야?”라고 묻지만 콘도에게는 대답할 말이 없다. 하다못해 긴토키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전하려고 했을 때.
“닥치라고————!”
긴토키가 발을 내딛은 순간, 콘도의 시야에서 하얀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확성기 소리를 가르고 부지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 지른 그는 놀랍게도 벽을 달려 올라갔다. 물리 법칙이 봤다간 통탄할 것 같은 광경에 신센구미와 미마와리구미는 물론 맥수회의 면면들까지 넋을 잃고 지켜보는 가운데 벽을 달려 올라가 옥상에 도착한 긴토키는 거기서 확성기를 들고 있던 남자에게
“밤일 문제 하나도 해결 못 하는 주제에 대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회전 발차기를 선사했다. 비상식적인 돌발 행동에 비상식적인 대사. 너무 놀라 벙찐 것은 갑작스런 습격을 받은 맥수회 쪽도 마찬가지인 듯, 그들은 한동안 이어지는 긴토키의 한탄 같은 고함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주로 하반신과 잠자리 사정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치 ‘상태 이상 : 마비’였던 신센구미와 미마와리구미 수뇌부가 겨우 주박에서 풀려나고, 동시에 히지카타와 이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히지카타는 요 며칠 관찰로, 이토는 오늘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소고와 긴토키의 스트레스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고가 아니라 긴토키 쪽이 먼저 폭발할 줄은 몰랐지만. 둔소에 있는 동안은 더 대놓고 짜증을 부리는 소고를 어르고 달래는 것이 긴토키이니 이런 상황에 더 약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우려해서 그렇게 참견했던 건데 결국…….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군요, 사카타 씨.”
“……그러네요.”
사사키의 코멘트에 콘도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눈치를 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콘도도 요즘 두 사람 사이가 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무슨 소리를 하리요. 그 원인이 자기 뒤쪽에 서있을 소년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폭탄 2개 중 남은 한 쪽을 건드리는 건 신센구미로서 자폭 행위다. 그런데.
“왜 저래? 저 사람.”
그 녀석한테 묻지 마————! 콘도와 히지카타는 동시에 마음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노부메에게 들릴 리는 만무했다. 감이 좋은 노부메는 거의 본능적으로 긴토키와 가장 가까운 인간이 소고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고, 때문에 그의 이상 행동에 대해 가장 잘 알 것 같은 사람-소고에게 묻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지금 긴토키가 왜 저러는지 아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속이 새까맣게 탈 질문이다. 지금 괜히 이 녀석을 건드렸다간 도미노처럼……!
그런 국장, 부장, 참모의 걱정에 모두 등을 돌리고 소고는 한 마디 했다.
“그 날이다.”
그리고 그대로 긴토키를 따라 적진으로. 아무리 사사키라도 저 대답은 예상 외였는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작아져가는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콘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노랗다. 아니, 거의 어두워졌지만. 히지카타에 이르러서는 아예 자동차에 얼굴을 묻고 뭐라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토만이 시시각각 들어오는 보고에 지시를 내리며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체감으로는 십 수 분, 하지만 실제로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이 흐른 후에 “……그래.”라고 작게 중얼거린 노부메가.
“생리 중에 격한 운동은 삼가는 게 좋아. 이사부로, 가세하겠어.”
라며 긴토키, 소고의 뒤를 따라 역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엔 신센구미 세 사람이 멍해질 차례다. 콘도 옆의 사사키는 한쪽뿐인 안경을 벗어서 슥슥 닦더니 “어차피 저 세 사람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니 조금 예정이 앞당겨진 것이라고 하도록 하죠.”라고 한 마디 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이. 댁 부장 아가씨, 성교육을 다시 하는 게 좋지 않겠냐……?”
가능하다면 근본적인 부분부터. 히지카타의 말에 사사키는 점차 피 바다가 되어가고 있는 부지 안에 한 번 시선을 던졌다. 인외마경 3인조의 피의 대축제 현장이다.
“그렇군요. 보건체육 교과서를 조달해 보도록 하죠.”
보건체육 교과서에도 남자는 생리를 안 한다는 말은 안 쓰여 있을 것 같지만 소고를 보고 있으면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히지카타는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