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章
새파랗게 어린놈이 참 잘도 움직인다.
긴토키가 그 소년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은 대체로 위와 같았다. 약관 18세라는 나이를 신문에서 본 이후의 일이다. 그 전부터 어려 보인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센구미 대장직을 맡고 있는데 20살은 넘었을 거라고 선을 긋고 생각했던 것이다. 설마 미성년일 줄이야. 이제 열여덟이라면 양이전쟁 세대에 들어가지도 않을 텐데(그 기준으로 따져도 긴토키네가 끝물이다.), 별 무서운 10대가 다 있다고 한탄 비슷한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얘기를 들은 친구들 및 옛 전우들은 “18살 때의 네가 훨씬 더 무서웠다”고 입을 모아 반론했다. 아니 내가 뭘 했는데? 긴토키 본인으로서는 당연한 의문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돌아오지 않고 어째 다들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이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트라우마가! 트라우마가———!”라고 소리치며 도망쳤다. 전자는 그렇다 치고, 후자, 어이.
별로 트라우마 남을 짓까진 안 한 것 같은데…….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소년에게 초점을 맞춘 긴토키는 자기가 저거보다 더 심했다면 확실히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긴토키의 동체시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로 움직이면, 그야 다른 사람에게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했더니 자기의 뒤에 가있고, 그 때는 이미 칼날이 살을 베고 지나간 후이다. 이쯤 오면 괴기 현상이라든가 심령 현상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다고 긴토키는 감탄했다. 거기다 순수한 속도와 검기만으로 저렇게 압도적인 소년과 다르게 긴토키는 아류다보니, 지금도 그렇긴 했지만 그때는 꽤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전투를 했었다. 어라, 트라우마 유효 판정 인가?
이리저리 머리를 산만하게 굴리면서 내려다보고 있는 긴토키였지만 사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그렇게 딴 생각을 해도 될 만큼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부두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어둠보다 새카만 수 십 개의 그림자. 창고 몇 개와 2층 건물 높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이 쌓인 화물들 사이에 가려 항구 밖에선 아마 제대로 보이지 않을 그 그림자들은 하나 같이 칼이니 총이니 하는 무기들을 손에 들고 서로의 목숨을 끊어내려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은 지당(支黨) 소속인 낭인들과 그들과 밀매했다는 텐카이야에서 고용한 사병들, 다른 한쪽은 검은 대복의 무장경찰 신센구미. 굳이 손으로 셀 것도 없이 눈대중만으로도 몇 배나 차이나는 인원 수 중 한 명이 바로 그 소년이었다. 그래서 더욱, 저 압도적인 숫자를 상대로 잘도 저렇게 싸운다고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수를 상대로도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것은 그 소년만이 아니었다. 가장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귀신 부장이라 이름 높은 남자도, 나중에 합류한 국장을 비롯한 다른 신센구미 대원들도 수적인 열세에 굴하지 않고 선전하고 있었다. 지당 놈들, 계산 잘못했네. 긴토키는 낭인 한 명이 또 목숨을 잃는 것을 내리깐 눈으로 지켜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밀매한 무기들과 고용한 사병들만으로 신센구미를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긴토키가 보기에는 이건 텄다.
지당-아마 따로 이름이 있을 터지만 이미 두 자릿수가 된지 오래인 지당과 분당(分黨)의 이름을 전부 기억할 의욕이 긴토키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다-은 저번 당내 분쟁에서 약화되어버린 세력을 화력 강화로 되찾으려고 했고, 사실 그 목적은 반 정도 달성되었다. 본당 쪽으로도 귀병대를 중심으로 하여 그 화기들이 들어왔던 것이다. 오늘날 전체 양이 세력을 통틀어 타와의 비교를 불허할 만큼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본당에 그만큼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은 지당의 입장이나 발언권에 있어서도 큰 메리트다. 때문에 지당 쪽에서도 이참에 한 번 일찍 분당한 다른 지당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세력 확장을 하고 싶었을 터고, 그게 눈앞에 보였을 터다. 그래서 다소 무리를 했다. 그리고 그게 안 좋았다.
무기 밀매상 쪽에서 신센구미의 관계자와 혼인을 어쩌고 하는 소리를 긴토키도 얼핏 들은 기억은 있었지만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 방법이 통했으면 카츠라는 그렇다 치더라도 타카스기의 부하들 중에 아직도 미혼인 사람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반사이가 아직도 결혼 못 하고 기타나 치고 있는 시점에서 깨달으라고, 그걸. 긴토키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당에는 그 생각에 도달한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계약한 밀매상, 텐카이야에도. 장사꾼이라는 건 다들 머리 회전이 빠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라고 긴토키는 인식을 새로이 했다. 아니, 머리가 너무 빨리 돌아가서 한 바퀴 돌아 제자리인 건가? 싸우는 데 말고 머리를 그렇게 빨리 돌려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결국 결혼이니 뭐니 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관리가 소홀해진 틈에 신센구미 귀신 부장에게 꼬리가 잡혔다. 그나마도 결혼 예정이었던 그 신센구미 관계자가 병으로 오늘내일 한다는 모양이니, 한 번 운이 없으려면 참 이렇게도 철저하게 없을 수가 있다. 정확히 누구의 관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장의 혈연 쯤 되는 여자였더라면 하다못해 인질로라도 써먹어서 어떻게 목숨 부지라도 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본당 쪽에서 움직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본당 간부진 면면들이 있었더라면 이만큼 머릿수에서 차이가 나는데도 밀리는 일은 일단 없었다.
물론 긴토키가 여기에 이렇게 제대로 된 무늬 하나 없이 새카만 하카마 복장으로, 스스로도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검은 가발을 쓰고 서있는 시점에서 다 물 건너간 이야기다. 진검이 아니라 목도를 차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기듯이 서있는 그가 갖고 온 것은 품속에 넣어둔 약병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중요하다니까. 생각하며 긴토키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자신처럼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쿠라바 토우마. 텐카이야의 사장이자 오늘 긴토키가 접촉한 유일할 사람이었다. 지당도 지당이지만, 그가 무리하게 장사의 규모를 키우려고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혀를 찬 소리에는 아주 조금의 동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방에서 점프를 읽으며 굴러다니다 타카스기에 붙잡혀 이런 곳까지 오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 훨씬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 요즘은 다른 양이당과의 충돌도 거의 없고 신센구미와도 반 정전 상태라 특히나 긴토키는 한가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 하라고 쫓아낼 것까진 없지 않은가. 카츠라는 허구헛날 무슨 교섭을 한다고 나다니고 타카스기는 자금 조달이랍시고 무슨 상단이니 밀매니 하며 본부에 있기는 해도 늘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며 바빠 보이지만 별로 긴토키가 바쁘게 지내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좀 편하게, 느긋하게 지내면 될 텐데. 적당히 놀면서.
애초에, 양이 활동으로 바쁘게 지낸다는 것 자체가 자신과는 안 어울린다. 양이지사라는 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데에도 아직 위화감이 있는데. 그야 즈라나 타카스기 녀석이야 타도 막부라든가 타도 쇼군이란 말 엄청 좋아하지만 솔직히 막부야 타도되든 붕괴되든 하늘로 솟든 땅으로 꺼지든 난 그닥…….
“오키타 대장님!”
갑자기 귀에 확 꽂힌 목소리에 긴토키는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이긴 했지만 사실 그게 유난히 잘 들린 것은 그 목소리 자체보다는 불린 사람의 이름이었다. 신센구미 1번 대 대장, 오키타 소고. 방금까지 관찰하고 있던 소년의 이름이다. 처음 신센구미와 대치했을 때부터 괜히 눈이 가는 소년이었다. 가장 어린 것도 있고, 가장 검을 잘 쓰는 것도 있고, 또 왠지——누군가를 닮은 것도 같아서.
이름을 불린 소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남자-아마 밀정이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긴토키의 위치에서 보이는 그 옆모습은 아슬아슬하게 표정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긴토키가 동체 시력만이 아니라 그냥 시력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밤눈도 좋다는 것까지 감안해서.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국장이나 부장의 이름이 아니라 저 소년을 이름을 부른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그것도 소년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는 아주 절박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생각한 순간 아까 이름을 부른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
긴토키는 소년의 옆얼굴이, 소년이 천천히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18살이라고 들은 나이보다도 조금 더 어려보이는 얼굴에 절망이 서리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절망하는 모습은 보기에 썩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기보다 어리거나 약한 사람이라면 더욱. 때문에 긴토키는 검은 가발 아래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이 멀리까지 직접 쏘는 것처럼 전해지는 감정. 긴토키는 약간 찌푸린 얼굴 그대로, 소년이 자신의 대장에게 무슨 말인가를 듣고 달리기 시작하여 곧 차를 타고 항구를 떠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신센구미의 동향은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본당에서 최우선으로 파악하니까 어쩌면 나중에 듣게 될지도 모르지만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쩌면 소년 개인적인 일일지도 몰랐다. 조직 단위의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후퇴하거나, 설사 방금처럼 한 명만 보낸다 하더라도 국장인 콘도가 갔을 터다.
관계없는 일이다. 길게 숨을 뱉은 긴토키는 속으로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렇다, 관계없는 일이다. 물론 긴토키도 소년을, 소년도 긴토키를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였지만 서로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연이 없는 건지 긴토키는 콘도와도 히지카타와도 검을 맞대본 적이 있었지만 소년의 검을 받아친 적은 없었다. 그 목소리가 “카-츠라-!”라고 소리치며 바주카를 쏜 적은 있었지만 긴토키의 기억이 맞는다면 이름을 불린 적도 없다. 겨우 그 정도의, 무슨 사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런 사이다. 그러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그가 무엇에 절망했든 관계없는 일이다.
소년이 떠난 것으로 주요한 전력을 잃었을 터인 신센구미였지만 어째서인지 전투는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특히 히지카타는 귀신 부장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정말 귀신같은 형상을 하고, 방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열한 기세로 낭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기세가 세진만큼 쓸데없는 움직임이 늘어 틈이 많아졌다는 게 문제였지만. 무슨 불이 붙었는지는 몰라도 저거 잘못했다간 한 방에 훅 간다. 검을 들었을 때 흔들림이 있으면 바로 명줄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잠시 지켜보던 긴토키는 시야의 구석에서 남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쿠라바 토우마와 낭인 서넛. 어디론가 이동할 셈인 모양이었다. 그건 곤란하다. 긴토키의 일은 여기, 항구에서 끝내야 하니까. 새하얀 피부 빼고는 빠짐없이 어둠에 잠긴 남자는 소리 없이, 그러나 재빠르게 움직였다.
목표물이 화물에서 내려간 시점에서 따라잡은 긴토키는 자신의 목도 대신 반 발짝 앞에 있으면서도 자기 뒤에 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낭인의 검에 손을 뻗었다. 날붙이가 달빛에 빛나는 것을 남자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의 등을 사선으로 크게 가로지르며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짧은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보려는 다른 남자의 목이 떨어진다. 검을 뽑으려던 그 옆의 남자의 손목이 먼저 떨어진 후, 이번엔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그 목이 베인다. 마지막으로 남은 낭인은 지당 소속이었던 듯 긴토키의 얼굴을 보자마자 “시……!”라고 소리쳤다. 가발까지 썼는데 시로야샤인 걸 알아보다니, 눈썰미가 좋다. 물론 바로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으니 별로 의미는 없는 일이었지만.
“당신이 쿠라바 토우마야?”
순식간에 자신의 호위 네 명이 살해당하는 것을 본 쿠라바는 비명도 안 나오는 듯, 자기 앞에 선 남자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답은 없지만 어차피 확인 차 물었을 뿐이다. 귀병대의 낭인이 보여준 사진에서 본 얼굴과 똑같으니 이 남자가 오늘의 목표물이 확실하다. 그럼 망설일 것은 없다. 긴토키는 품속에 손을 넣어 낮에 타카스기에게서 건네받은 약병을 꺼냈다. 그냥 보면 눈약으로 착각할 것 같은 투명한 용기 속에 붉은 액체. 그도 장사꾼이 이상 그게 무엇인지는 아는지 안 그래도 공포에 질려있던 얼굴이 더 흉하게 일그러졌다. 물론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쿠라바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 손을 뻗은 긴토키는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고개를 위로 꺾었다. 공포에 조금 벌어져 있던 입이 닫힐 새도 없이 한 손으로도 쉽게 열리는 용기의 뚜껑을 열어, 바로 그 입 속으로. 꿀꺽하고 한 번 목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 것을 확인하고, 긴토키는 재빨리 민첩해 보이지 않는 몸을 바닥에 쓰러뜨려 구속했다. 머리통을 붙잡아 고개를 숙이지 못하도록 위로. 별로 이렇게까지 해서 보고 싶은 면상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다.
“아-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저항하고 그러지는 않는 게 좋아. 한 모금 마셨으면 이미 아웃인 거 알지? 괜히 토해내서 일 만들지 말고. 이거 뱉으면 내가 친절히 댁 손목을 그어줘야 되는데, 아픈 거 싫잖아? 그치?”
설득이라고도 권유라고도 말하기 힘든 말을 해 보지만 과연 이게 쿠라바 귀에 제대로 들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약을 토해내려고 하지만 않으면 긴토키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긴토키에게 깔려있는 남자가 저항해봤자 이 구속에서 빠져나오는 건 애초에 무리다. 이대로 죽어준다면 그게 최선이다. 사실 방금 쓴 칼로 베어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어디까지나 자살로 위장해야 한다고 하니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차선책으로는 손목을 긋는 것도 있지만 그거로는 죽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들은 적이 있다. 역시 자살 위장 어쩌고 하려면 목을 그어버리면 되지 않아? 자기 손으로도 목은 그을 수 있잖아? 아, 그러려면 단도로 자기 쪽에서 그은 것처럼 해야 하나? 뭐야,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해 본 적이 있어야지. 귀찮네. 역시 약으로 죽어주는 게 제일이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긴토키는 문득 쿠라바의 숨이 아주 가늘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도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는 벗어나려 버둥거리던 몸도 힘이 없는지 축 늘어져 있다. 이 정도면 굳이 구속할 필요도 없다. 긴토키는 몸을 일으켜서 쿠라바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유언 정도는 들어줄 생각이 없지도 않았는데. 근성이 없네. 그 생각을 한 다음부터 쿠라바가 절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 밑에 손을 갖다 대고, 맥도 짚어서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긴토키는 이제 시신이 된 남자의 몸을 뒤집었다. 되도록 부자연스럽지 않게, 약을 먹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것처럼. 그의 손에서 떨어진 약병이 굴러가다 멈춘 거라고 생각하기에 적당한 위치에 빈 병을 놓으면 완성이다. 호위 4명이 죽은 것에 대한 의문은 남겠지만 내버려 두면 저쪽에서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줄 것이다. 돈이라든가, 알력 싸움이라든가, 공포로 인한 착란이라든가 기타 등등. 누가 하는지는 몰라도 최대한 상층부는 아닐 테니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졸병들에게 짧은 동정을 했다.
이미 다른 곳에서 명이 끊어졌을 지당의 총수와 간부진, 그리고 방금 절명한 쿠라바 토우마까지. 이것으로 지당과 텐카이야의 밀매 무기가 긴토키의 본당까지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루트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간만에 한 일은 어땠냐?”
장지문을 열면서 들어온 타카스기가 한 말이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도 잠옷차림으로 누워서 신문을 보고 있던 긴토키는 벌써 20년 쯤 매일 같이 보고 있는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양 상태 문제로 타카스기보다 작았던 긴토키가 친구들 중에서 가장 커진 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보니 이렇게 그를 올려다보는 일은 거의 없다. 거기에 특별한 감흥도 없이, 긴토키는 주인 허락 없이 문을 여는 걸로도 모자라 방에 들어와 당연한 듯이 바닥에 앉는 타카스기를 피해 옆으로 굴렀다. 애초에 프라이버시 같은 건 없다시피 한 사이다.
“어차피 저번에 내가 돌아왔을 때 보고 들었을 거면서 뭘 굳이 물어 봐? 일 좀 하라고 빙 돌려서 까는 거냐? 앙?”
“잘 아네.”
툴툴거리는 긴토키의 말에 쿨하게 대답한 타카스기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자세 그대로 품을 뒤지더니 담뱃대를 꺼냈다.
“여기서 피우지 마, 안대 담뱃대.”
발로 차는 걸로 항의하자 “안대랑 무슨 상관이야.”라며 한 마디 하면서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발을 피해 이동했다.
“즈라 놈은 못 피우게 한단 말이다.”
“그렇다고 나한테 와서 피우는 건 무슨 경운데? 네 방 가서 피워, 네 방 가서.”
쫓아가서 또 발로 공격하는 긴토키와 빈손으로 그걸 막는 타카스기. 공방전은 잠시간 이어졌지만 결국 타카스기가 졌다. 이곳이 긴토키의 방인 시점에서 승률은 처음부터 별로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원래 긴토키는 담배 연기 같은 걸 신경 쓸 만큼 민감한 사람이 아니지만 얼마 전에 본 TV 프로그램에서 흡연이 미각을 둔하게 한다는 소리를 들은 후부터는 적극적으로 흡연을 저지하게 되었다. 이르기를, 담배 같은 걸로 당분의 즐거움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모양. 그건 직접 흡연이지 간접 흡연 얘기가 아닐 거라고 말해 봤자 들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게 30이 다 되어가는 남자, 그것도 이 섬나라 굴지의 실력파 양이지사 입에서 나온 소리라니. 소문이나 전장에서의 그밖에 모른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수 없이 담뱃대를 다시 품 안에 넣은 타카스기는 발 공격을 멈춘 긴토키에게 다시 한 번 처음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땠냐?”
“뭐가?”
“다.”
애매한 질문이었지만 긴토키는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잠시 붉은 눈동자를 옆으로 돌린 후 잎을 열었다.
“이제 지당 이름이니 간부 얼굴이니 하나도 못 외우겠어.”
“걱정 마라, 그건 나도 못 외우니까.”
카츠라 귀에 들어갔다간 “너희들은 이 나라에 새로운 빛을 가져올 양이지사로서의 자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라는 말로 시작되는 설교 3시간 코스짜리 발언이었지만 둘 다 카츠라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본당 내부 총괄 및 외교 전담이라는, 말 그대로 조직의 우두머리인 카츠라 본인은 오늘도 아침 일찍 나가 무슨 당과 조정 미팅 중이다.
“아- 그리고 네가 들여온 약 처음 써봤다.”
“어땠어?”
“내가 마신 거 아니니까 모르지.”
말하고 같이 낄낄거린다. “그야 그렇지! 나도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니까!”라며 클클거리는 타카스기, 그런 친구에게 “넌 들여온 놈이 그것도 안 마시고 뭐 했어?”라며 역시 클클거리며 또 발로 툭 치는 긴토키.
“그거 한 모금이라도 마셨다간 벌써 선생님이랑 사이좋게 손잡고 꽃밭을 걷고 있었을 거다.”
“오, 그거 좋네. 도와줄까?”
“앞으로 네놈이 주는 술은 안 먹어.”
여전히 웃으면서 하는 말에 이번엔 타카스기가 긴토키를 툭 쳤다. 말로만 오가는 험한 소리와 아프지 않은 발길질. 그것을 몇 번인가 더 반복한 후에 긴토키가 겨우 이야기를 원래의 궤도로 끌고 왔다.
“근데 진짜로 10분? 인가 있다 죽던데, 즈라가 뭐라 안 그랬어?”
“처음에는 좀 시끄러웠지만, 예상이 빗나가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타카스기.
“뭐가?”
“맛이 없거든, 그 약.”
당연하단 듯이 나온 대답에 긴토키는 잠시 말없이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약이라는 것은 물론 어젯밤에 긴토키가 쿠라바 토우마에게 먹인 미량의 액체를 말한다. 최근 다른 은하계에서 발견되어 지구에는 본당-귀병대를 중심으로 하여 밀수된 극약을 가리키는 것만은 확실했지만 앞뒤 문맥이…….
“원래는 암살용으로 들여온 거였다고, 그거. 그래서 일부러 타케치에 반사이까지 보내서 신중히 가져온 거고. 그런데 정작 가져와 보니 그게 지구인 감각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맛이 없어서 암살용으로 쓰는 건 도저히 무리더라.”
라며 타카스기는 “천인들한테는 그 맛이 안 느껴지는 건지 암살용으로도 잘 통했지만. 미각 괜찮은 거냐? 그 녀석들.”이라며 추가 설명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듣고 있던 긴토키는 설명을 이해한 후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어젖혔다.
“하, 히, 뭐야, 그거, 암살용인데, 히힉, 맛이 없어서, 못 쓴다고? 후, 후하, 히, 히히히히……!”
“숨넘어가겠다, 너.”
타카스기의 말에도 긴토키는 “그치만 이걸 어떻게 안 웃어”라며 여전히 대폭소 중. 아예 뒤로 넘어가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는 걸 잠시 지켜보다가 왠지 자기가 비웃음 당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부아가 치민 타카스기는 “그만 웃으라고, 천연 파마.”라며 그의 배를 밟아 버렸다. 개구리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바로 웃음이 멎었다. 음, 효과 만점이다.
“야!”
“웃다가 숨넘어가기 전에 구해준 거다. 감사한 줄 알아.”
“웃다 죽은 놈 얘긴 들은 적 없거든?!”
반격으로 발차기가 들어오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타카스기는 긴토키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공격하지 못할 곳까지 도망쳤다. 저 자타공인 귀차니스트는 절대 이런 일로 일어나서까지 쫓아오지 않는다.
“그래, 어째 네가 처음에 밀수 건으로 즈라랑 툭탁거리더니 그 다음부터 조용하더라.”
본디 본당의 3두령이라고 불리는 세 사람 중 성격적인 이유로 가장 발언권이 센 카츠라는 역시 그 성격 탓에 암살 등 본인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타카스기가 막부 타도와 조직을 위해서라고 설득하면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일도 있지만 그런 때에도 시종 굳은 표정이니 알만하다. 그런 그가 암살용 극약 밀수 같은 일에 대찬성했을 리는 없고, 늘 그렇듯이 처음에 좀 말이 많다 나중엔 조용해졌기에 결국은 납득했나 했더니 이런 이유였을 줄이야. 그것도 다른 간부가 아니라 타카스기가 진행한 일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즈라도 어이가 없는지 자긴 반대했으면서 나한테 ‘너는 이런 것도 제대로 조사 안 한 거냐.’라더라.”
“당연하지!”
“천인의 미각이랑 우리 미각이 이만큼 차이가 있는 줄 어떻게 아냐고.”
말하는 타카스기의 표정에도 불만이 가득했다. 아마 이 일을 직접 진행했을 부하들은 다들 한동안 잔소리 꽤나 들었을 터다. 금전적인 피해도 있었을 테고.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늘 그렇듯이 귀병대 쪽에서 물건을 다른 쪽으로 흘려 자금 회수 수준이 아니라 흑자까지 남겼을 테니 걱정 없지만.
“그런데 그렇게 맛이 없어? 냄새는 안 나던데.”
“없다더라. 냄새는 없는데, 아무리 맛이 진한 음식에 섞어도 숨길 수 없을 만큼 맛없대.”
어떤 의미로 대단한 극약이다. 효능만이 아니라 미각적으로도 극약. 그 극약이 지구에 들어온 것은 귀병대를 통해서가 처음이니 방금 타카스기가 말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희생이 있었을 터였으나 긴토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소한 일이다.
“흐-응. 그럼 차라리 손목 긋는 게 나을 뻔 했네, 어제 그…… 에…… 쿠로다? 쿠로이?”
“쿠라바. 왜 쿠로가 고정인데?”
“쿠랑 ㄹ까진 맞췄잖아.”
변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타카스기는 무시하고.
“아니, 약이 더 나았을 거다. 맛은 없지만 아픔도 없거든. 통각부터 전부 마비시키고 서서히 죽는다고 하니까, 처음에 좀 맛없는 것 빼고는 나쁘지 않은 자살 방법이야.”
“덕분에 비싸게 팔렸지.”라고 한 마디 더. 흐응-. 긴토키는 흥미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대꾸를 했다. 실제로 아무래도 좋다. 암살용으로 쓰지 않는다면 앞으로 자기가 누구에게 먹일 일도 거의 없을 테고, 자기가 먹을 예정은 더더욱 없다.
약 얘기는 그 이상 할 것도 없어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생각하던 긴토키는 문득 중간에 전선을 이탈한 소년을 떠올렸다. 특히, 그 옆모습.
“신센구미에 무슨 일 있대?”
“특별한 동향은 없는 것 같다만. 네가 돌아온 직후에 지당 소속 낭인들이고 용병이고 반쯤 튀고 반쯤은 녀석들이 잡아서 끌고 간 모양이다만, 살아남은 놈들은 죄다 위 사정까지는 모르는 말단들이니까 이쪽 루트까진 못 캘 거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뭐?”
뭐냐고 물어도, 긴토키로서는 대답하기가 궁하다. 결국은 그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최소한 짐작이라도 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소년의 이름을 꺼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알아야 하는 일이냐면, 물론 그것도 아니었다. 무난한 선을 찾자면…….
“누가 죽었다든가.”
“대장급 이상으로는 전혀. 평대원 서넛 죽었다고 하더라.”
그 날 밤 일이다. 그리고 역시 긴토키가 원하던 정보는 아니었다. 긴토키가 아는 것만 해도 적지 않은 부하를 전장에서 잃은 소년이 이제 와서 부하가 죽었다고 그렇게 절망할 리는 없다.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게 확실하지만, 굳이 파헤칠 필요는 없다. 긴토키는 이야기를 거기에서 끊었다.
“그래서 결국 뭐야, 일 좀 하라고?”
“알면 나가서 정세 조사라도 해라, 반 니트.”
“긴 상은 파칭코랑 당분 아니면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즈라한테 꼰지른다, 반 히키코모리.”
“너 날 말려죽일 셈이냐?”
카츠라가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한 번 설교를 하겠다고 나서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짜증스럽게 만드는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만은 둘 사이에 공통된 인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지식했던 사고방식은 커서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성장하며 흡수한 이론 덕에 괜히 한 마디 잘못 했다간 그 말꼬투리를 잡아서 사람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오래 같이 있다 보니 척하면 척이라 한 귀로 흘리면서 듣고 있으면 바로 알아채고, 그 어느 해충에 뒤지지 않을 만큼 끈질기기까지 해서 아무리 도망쳐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물론 카츠라는 기본적으로 정론을 좋아하기 때문에 긴토키고 타카스기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말을 들으면 애초에 그렇게 설교가 길어질 일도 없지만 그럴 위인들이 아니었기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그 증거로 부하들이 카츠라에게 설교를 듣기 시작해서 30분 이상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요약하다면, 둘 다 자업자득이다.
“아니, 요 며칠 화기 문제로 쪽잠만 자다보니 네가 팔자 좋은 게 배 아파서.”
“그거 나 전혀 상관없지 않아?! 내가 화풀이 당할 이유 없지 않아?! 그리고 평소엔 너도 그렇게 열심히 일 안 하잖아! 즈라한테 다 던져놓고 지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면서!”
“하고 싶은 일 골라하는 것조차 안 하는 놈이 어디서 생색이야? 너는 칼 안 들면 도움이 안 되잖아.”
“방해만 되니까 싸움 아니면 괜히 끼어들지 말라고 그래서 안 끼어드는 거 아냐!”
“자랑이냐.”
하며 타카스기가 다시 또 발로 툭 찬 것을 시작으로 잠시 말없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긴토키가 하겠다고 덤비면 웬만한 일은 평균 이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귀찮아해서 그렇지 검부터 시작해 별 하잘 것 없는 소일거리까지 쓸데없을 만큼 다재다능한 인간이다. “차라리 심부름센터 같은 거 하면 대성했을 것 같은데.”라고 본인이 툴툴거리던 소리에 킬킬거리고 한동안 “센터장님.”이라고 불러대며 놀렸지만 속으로는 긍정했었다. 조용히 지낸다고 지내도 그 성품 탓에 주변에 사람이 절로 모일 정도니, 정말 심부름센터라도 차렸다간 마을 전체랑 얼굴을 트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만약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목숨이 붙어있는 한 카츠라와 타카스기가 양이 활동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테고, 긴토키 역시 친구들이 살아있는 한 두 사람의 곁을 떠날 리가 없었다. 그 사람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타카스기도 카츠라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물은 적이 없었지만 그 사람과의 약속이라면, 긴토키가 어길 리가 없다.
물론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그가 양이 활동에 적극적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선봉에 서는 친구들의 곁에 서지만 그 외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생선 눈깔 같은 눈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따분하다는 태도를 숨기지도 않고 선대답만 해대니 그런 사람한테 다른 양이당과의 외교니 활동 자금 확보를 위한 거래니 하는 중요한 일은 맡길 수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카츠라도 타카스기도 충분히 유능했으므로 긴토키가 일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같이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어린 날 봤던 광경과 지금 보는 광경 사이에 빠진 사람은, 그런 구멍은 하나로 충분했다.
잠시간 이어졌던 공방전이 늘 그렇듯이 긴토키 우세의 무승부로 끝난 후에 타카스기는 억센 뒤꿈치에 공격당해 얼얼한 발등을 감싸며 아까의 공격으로 긴토키가 손에서 놓아버린 신문을 쥐었다.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는지 손으로 잡았던 부분이 흉하게 구겨져 있었다. 방에 들어왔을 때 긴토키가 보고 있던 부분이 아마…….
“부고란?”
“한 쪽밖에 없으면서 눈도 좋아.”
긴토키를 한 대 더 차주고.
“아는 사람 중에 여기 이름 올릴 예정인 사람이라도 있냐? 보통 노친네들이 병사했을 때 내는 거잖아.”
“그냥.”
어쩐지 시원찮은 대답에 침묵으로 추궁한다. 정말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본당의 3두령이 서로에게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게 없다시피 하다는 것은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거, 보고 있으면 왠지 편해지더라고.”
긴토키는 무엇이 어떻게 편해진다는 건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타카스기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는 사람의 이름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들의 이름, 나이, 사인, 장례식 일정 등이 쓰인 작은 칸들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안도하면서.
“악취미.”
“너보다 더할까.”
웃으면서 던진 비난을 역시 웃으며 긴토키가 받아친 것을 듣고 타카스기는 만족했다. 만약 긴토키보다 먼저 타카스기의 눈에 부고란이 들어왔더라면 자신도 그와 같은 행위를 했으리라. 자신과 그는 이런 부분이 닮았다.
갑자기 복도 쪽에서 들린 발소리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바닥을 콩콩 찍는 것처럼 걸어오는 작은 발. 애초에 극악한 남녀 비율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저런 발소리를 내며 걷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중2- 마타코가 부른다 해-.”
소리 내며 장지문을 연 것은 이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본당 본부에서 함께 생활하는 귀중한 여성 조직원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중국식으로 올려 묶어 장식을 단 붉은 머리, 거기에 역시 중국식 복장. 아직 어리지만 알 만한 사람은 한 번에 알아볼 그 모습, 야토.
막부의 개국에 반대해서 양이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그 양이 조직에 천인이 소속되어 있으니 참 묘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역시 같은 본당 소속인 엘리자베스처럼 양이 사상에 이해를 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똑같은 천인이라도 각자 주인을 닮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부른댄다. 얼른 가 봐, 중2.”
“긴토키…….”
어느 새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있던 긴토키가 씩 웃으면서 일부러 입에 담는 호칭에 타카스기는 자신의 목소리가 절로 낮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카구라가 저런 매우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원인이 긴토키였으니까.
그야 물론 전쟁이 끝날 때 쯤 하여 심신이 매우 피폐했던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타카스기의 정신 상태 역시 상당히 좋지 않았던 것도, 변명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년도 지난 남자가 “난 그저 부술 뿐이다.” 같은 소릴 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타카스기 본인 역시 가능하다면 그 때로 돌아가 평생 쪽팔리게 되는 소리를 하기 전에 한 대 쳐서 갱생시키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당시의 긴토키와 카츠라의 역할이었다. 당시에는 “어디 나사가 하나 풀려 있었다.”라고, 지금은 “중2병이 늦게 왔다.”라고 친구들이 말하는 타카스기의 증상은 친구들의 지나치게 애정 어린 주먹으로 강제 수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부끄러운 과거는 긴토키가 술만 들어가면 끄집어내어 실실 웃으며 툭툭 건드리는 좋은 놀림 재료가 되었다. 그야말로 카구라가 그걸 기억해 타카스기를 “중2”라고 부를 정도로. 실제로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는 타카스기가 아니라 카구라이건만. “중2병이었던 신스케 님도 멋있슴다!”라고 말해주는 소녀도 하나 있었으나 전혀 위로가 못 된다.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파는 기분이다. 젠장.
“무슨 약이 어쩌고 했었다 해.”
“알았다.”
사실 귀병대가 관련된 ‘약’은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어차피 이 소녀에게 물어 봤자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타카스기는 두 말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열심히 하고 오세요, 신스케 오빠-.”라며 높은 목소리로 실실거리는 친구를 마지막으로 한 대 더 차주고, 긴토키 흉내를 내서 “신스케 오빠-.”라고 부르는 카구라에게 탈력하며 장지문을 연 타카스기는 고개만 뒤로 돌려서.
“나랑 즈라 신경 그만 긁고 정말 마을에는 한 번 갔다 와라.”
“네- 네-.”
“담뱃잎도 사오고. 한 봉지밖에 안 남았어.”
“어이, 너 진짜 용건은 그거였지.”
긴토키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장지문을 닫아버렸다.
“아- 자기 부하 시키면 되지.”
“중2 부하들은 다 바빠 보인다 해. 여기서 한가해 보이는 건 긴 쨩밖에 없다 해.”
분명히 타카스기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14살 소녀가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예상외의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뭐야, 이거. 내가 굉장히 한심한 놈 같잖아. 니트 같잖아. 아니, 니트가 아니냐고 물으면 좀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가면 되잖아, 가면…….”
“간 김에 편의점에서 피자 호빵도 사와라 해.”
“네가 가!”
“무슨 소리냐 해, 나도 바쁘다 해. 신파치가 짐 옮기는 거 도와달라고 했었다 해. 금방 나갈 거다 해.”
그러니까 얌전히 호빵이나 사오라고 말을 매듭짓고 카구라는 그 자리에 앉았다. 이것들이 죄다 사람을 심부름꾼 취급하고 있어. 긴토키는 투덜거리면서, 방구석에 있는 책상 쪽으로 움직였다. 실은 옷을 먼저 갈아입어 버리는 것이 편하지만 카구라가 긴토키가 지금부터 하는 일을 말은 안 해도 실은 꽤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괄량이 우주 선수권이 열리면 메달 정도는 깔고 들어가면서 의외로 이런 부분은 그 나이 여자애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 요즘 14살 여자애들은 누구랑 사귀니 안 사귀니 하는 게 보통이라니까 한참 늦은 거긴 하겠지만.
생각하며 긴토키는 서랍에서 세울 수 있는 거울과 남자 혼자 쓰는 방에 존재할 거라 생각하기 힘든 물건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며 천천히 흰색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색조 밸런스에 붉은 색을 더해간다.
멀지 않은 곳에 앉아 긴토키의 얼굴을 관찰하던 카구라는 거울 속의 자신과 눈싸움하는 것을 끝낸 그와 오랜만에 눈을 맞췄다.
“긴 쨩은 정말 쓸데없는 것만 잘 한다 해.”
“어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이 거슬렸는지 목소리를 낮게 한 긴토키였지만 카구라는 그의 책상 위로 올라왔던 것들을 다시 서랍에 넣는 것을 보며 덧붙였다.
“그치만 보통 남자가 그런 거 잘 해도 쓸모없다 해.”
카구라가 ‘그런 거’라고 칭한 것은 방금 긴토키가 한 행위———본격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눈가를 붉은 색으로 장식하는 화장을 말한다. 카구라도 그 방면에 밝은 것은 아니기에 잘은 모르지만 원래는 훨씬 더 많은 화장품을 여러 단계에 걸쳐 사용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맨얼굴에 눈 화장을 했을 뿐인 긴토키의 ‘화장’은 지극히 간소한 것이었지만 카구라가 보는 한 단 한 번도 손이 미끄러져서 지우거나 실패한 일이 없었으니 이쪽으로 손재주가 좋은 것만은 확실했다.
“쓸모 있잖아. 즈라라든가. 저번엔 신파치도 했었고. 또…….”
눈을 돌리며 긴토키가 손가락으로 꼽는 사람들은 전부 연회의 벌칙이나 잠복 임무 때문에 내키지 않는 여장-여기서 카츠라는 제외한다. 어째서인지 그는 여장을 하면 하이해진다. 그쪽 취미라도 있나?-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긴토키의 손을 거쳐 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본인은 옛날 애인이 하던 걸 대충 따라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여장한 카츠라를 본 마타코가 “어떻게 나보다 잘 할 수 있씀까…….”라며 여자로서 패배감을 맛봤다고 하니 재주란 무섭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던 긴토키는 곧 기억력의 한계를 맞이했는지 접고 있던 두 개의 손가락을 펴고서 “뭐,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건 나지만.”이라며 내던졌다.
이르기를, 연회 벌칙으로 여장한 카츠라를 부하들도 못 알아보는 것을 보고 타카스기가 써먹을 수 있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일반 조직원들은 문제가 없지만 본당의 간부급 정도 되면 행동에 제약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장을 해 버리면 남자인 것까진 알아보더라도 그것이 양이지사인 누구라고까지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카츠라처럼 입만 열지 않으면 그냥 키가 큰 여자라고 생각할 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하는 귀병대 두령 타카스기 신스케가 볼 때 여장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타카스기 본인은 강력히 거부했다. 카츠라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타카스기!”라며 소리를 쳐도 “너랑 긴토키는 별로 안 싫으니까 됐잖아. 난 싫다.”라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덕분에 자기 연지를 타카스기의 입술에 발라 줄 생각을 하고 있던 마타코가 조용히 저기압이 되기도 했지만 물론 타카스기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이제는 카츠라가 이동할 때 여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여자 옷을 입는 것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긴토키가 눈에 확 띌 만큼 화려한 옷을 입고서 화장을 하고 나가는 것도 꽤 흔한 일이 되었다. 일전에 한 번 그렇게 눈에 띄는 꼴로 돌아다녀도 괜찮겠냐고 신파치가 걱정했을 때 “오히려 그쪽에만 눈이 가서 나인지 몰라.”라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었다. 지금까지 안 들키고 잘만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센구미랑 스쳐지나갔는데도 못 알아봤다고 깔깔거리며 비웃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긴 상은 연지 하나도 제대로 못 바르는 애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요-. 뭐야, 질투야?”
“누가 그런 걸 질투 하냐 해! 연습하면 할 수 있다 해! 아마!”
“그렇게 당당하게 ‘아마’라고 해봤자…….”
긴토키의 도발에 파르르 타올라 소리를 질러대는 카구라였지만 그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화장하는 긴토키를 빤히 보고 있다가 “왜, 너도 할래?”라는 말에 손을 댄 것까지는 좋았는데 파멸적일 정도로 이런 쪽에는 재주가 없었던 것이다. 왜 내 손인데 내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거냐고 손과 눈싸움을 했을 정도다. 그 후로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카구라 얼굴에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연지가 덧칠해진 것은 긴토키가 해줬을 때 외에는 없었다.
“하면 된다 해!”
“아, 그래, 그래. 돼, 돼.”
“후캬——————!”
건성건성 대답하는 긴토키에게 폭발해서 덤벼드는 카구라. 긴토키는 “우오오?!”라는 소리와 함께 자기 코앞까지 왔던 손날을 피했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야토의 손날을 정통으로 맞았다간 본당의 3두령이 양두령으로 재편된다.
“스톱! 이 이상 하면 긴 상의 머리통이 가여운 꼴이 되니까 스톱! 알았어! 미안! 잘못했어! 놀려서 죄송합니다 카구라 님!”
“키이이이———!”
“야생동물이냐! 미안하다니까! 아니, 못해도 괜찮아! 연지 좀 못 바르면 어때! 내가 해줄게!”
그 말에 정신없이 공중을 가르던 카구라의 손이 멈췄다. 긴토키의 머리 바로 위에서. 우와, 지금 건 진짜 골로 갈 뻔 했다……. 아슬아슬하게 참극을 면한 긴토키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움직임을 정지한 소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내버려 둬도 쉴 새 없이 변하는 표정이 웬일로 복잡 미묘 상태로 굳어있다.
“카구라……?”
“진짜냐 해?”
“하?”
“긴 쨩이 해주는 거.”
무슨 얘긴가 하고 잠시 생각하는 긴토키는 곧 깨달았다. 화장 얘기다. 고개를 끄덕인다.
“계속?”
“아니, 언젠가는 네 손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이번엔 괴성과 폭력 대신 무언의 압박이 가해졌다. 카구라 쨩, 눈이 무서운데요. 눈이 야토적인 썸씽으로 번뜩이는데요. 나 너 이런 눈 전투 외에서 보는 거 처음인데요. 신변에 위협이 느껴지고 막 그러는데요. 생각하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린 긴토키는 결국 “아뇨, 기쁜 마음으로 언제까지든 해드리겠습니다…….”라며 항복 선언을 했다. 대답이 마음에 드신 모양인지 카구라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자 호빵 잊지 마라 해-.”
아까 괴성을 지르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고서 카구라는 발걸음도 가볍게 긴토키의 방을 나갔다. 그녀가 발로 장지문을 닫은 후(매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인지라 눈에 띌 때마다 카츠라가 주의하고는 있지만 본인에게 고칠 의사는 없어 보였다.), 긴토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위협이 사라졌다.
카구라가 여기 있는 이유가 긴토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니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따라주면 물론 기쁘기도 하지만 뭐랄까……. 긴토키는 본부에서의 평상복으로 걸치고 있는 하얀 바탕의 하늘색 물결무늬 키모노-키나가시로 입는 나가기(長着)-를 벗으며 생각했다. 역시 그 때 고향 별로 돌아가라고 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도 아무도 없다고 해서 남아도 된다고 해 버리긴 했지만,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차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역시, 스스로 서야한다. 이렇게, 약속에만 매달려서 살아가는 인간처럼 되지 말고. 자신의 다리로 서서 똑같이 서있는 사람과 손을 맞잡는 사람으로. 물론 그녀가 어리다는 것을 알기에 아직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언젠가.
뭐, 신파치도 안 그래 보이면서 실은 심이 확실하게 서있는 걸 보면 카구라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지만. 희미하게 웃으며 긴토키는 마지막으로 오비의 매듭을 지었다. 자기와는 다르다. 손을 잡아오기에 피하지 않았지만 실은 자기보다 훨씬 강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긴토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긴토키는 어째서인지 이불장 안쪽에 달려있는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깐 보았다. 어렸을 때는 시체 같다느니 귀신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새하얀 피부와 붉은 눈, 시로야샤라는 이명의 이유가 된 하나로 묶어 올린 백발. 그리고 그것을 감추듯이 눈가를 장식한 붉은 화장과 흑색과 적색이 섞인 키나가시 차림. 긴토키 본인이나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 보기에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사카타 긴토키였으나 수배 전단의 그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사카타 긴토키가 아닌 모양이었다. 시각이라는 건 생각보다 별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긴토키는 이불장의 문을 닫았다.
카부키쵸는 언제 와도 활기가 가득한 점을 긴토키는 내심 매우 높이 평가했다. 얼굴이 팔린 것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외출 자체를 거의 안 하다시피 하는 긴토키였지만 카부키쵸만은 언제 와도 변치 않는 것이다. 유흥가답게 적당히 활기차고,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속물적이고, 적당히 인정이 있다. 신파치나 카구라를 만난 곳도 전부 이곳이었고, 술 생각이 나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스낵 오토세도 이곳에 있었다. 긴토키가 터를 정할 일이 있다면 두말없이 카부키쵸를 택했으리라.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었지만.
지나가는 사람 중 몇 명인가가 알아보고 “여어!”라며 손을 들어 인사하는 것을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물론 그들이 아는 체를 한 것은 시로야샤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라 사천왕 사이고 보호 아래에 있는 가게 중 하나-놀랍게도 하나가 아닌 것이다, ‘그런 가게’가-의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긴 상’이지만.
그들보다 먼저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사이고가 본당이나 다른 양이당의 부탁을 이것저것 들어주는 것은 맞지만 한참 전에 은퇴한 사람이고, 긴토키와 사이고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애초에 긴토키는 누구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게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대선배라고 해도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여장남자 거한 따윈 애초에 대상외다. 물론 그렇다고 굳이 부정해서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도 없기에 필요할 때 이름은 써먹지만. 못된 후배구만. 스스로에게 꽤 정확한 평가를 내리며 긴토키는 “또 농땡이야? 마드모아젤한테 걸릴 때 되지 않았어?”라며 아는 체를 하는 샌드위치맨에게 “이르면 안 돼?”라며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갖다 댔다. 한참 전부터 대체 어느 가게에서 언제부터 일하는지 끈질기게 물어보는 남자다. 슬슬 포기 좀 하지.
남자가 눈으로 자신을 쫓는 시선을 뒤통수에 느끼며 긴토키는 바로 다음 골목을 눈으로 확인했다. 계속 저렇게 물고 늘어지면 곤란하다. 적당히 둘러대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얼른 남자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긴토키는 재빨리 골목을 꺾었다.
“아.”
꺾은 순간 골목에서 튀어나와 방금 긴토키가 온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남자. 거의 부딪칠 뻔한 것을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한 긴토키는 두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서로 고개에서 꺾다가 부딪칠 뻔 했으니 쌍방 과실이지만 별 일 없었다고 해도 넘어질 뻔한 것은 긴토키 쪽이다. 그러나 남자는 긴토키와 부딪칠 뻔했다는 사실조차 마치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이런 거 일일이 엄청 사과 받고 싶은 그런 타입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린 긴토키는 남자를 불러 세우려다가 곧, 그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센구미 꼬맹이다.
대복이 아니라 붉은 하카마를 입은 사복 차림이었지만 황토색 머리카락에 호스트바에 데려다 놓아도 손색없는 미소년이 아무리 그래도 에도에 둘이나 있을 리는 없다. 있어도 곤란하고. 공급과 수요적인 의미에서.
솔직히 아무리 변장(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을 했다고 하더라도 신센구미와 접촉하는 것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사태가 아니다. 특히나 대장 클래스 쯤 되면 전투에서 한두 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알아챌 가능성도 더 높다. 때문에 사실 이대로 멀어져가는 뒷모습에 긴토키 역시 등을 돌리고 소년과 다시 마주치지 않을 길을 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현명한 판단, 이지만…….
방금 스쳐지나간 소년의 옆모습은, 그 날 밤 긴토키가 느낀 것이 아마 정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분명, 혼이 빠져나가서 육신밖에 안 나간 인간이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일 거다.
긴토키는 인상을 찌푸리고 조금씩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주시했다.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의 뒷모습은 수없이 보아왔다.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그 날부터 수도 없이. 하지만 작은 등은 긴토키의 눈에 익숙한 그것이 아니었다. 절망보다 더 안 좋은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더 헤어 나오기 힘든 것. 그야말로 아득히 오랜 시간 동안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 것.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저번처럼 척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절망에 짓눌려있는 게 나았다. 그러면 역시 그 때처럼 제 알 바가 아니라고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저렇게 귀찮고 한심한 것에 발목이 잡힌 인간은 나 하나로 족하다.
아- 진짜로 들킬 생각은 없지만, 정체를 안 들켜도 즈라가 알면 되게 뭐라 그러겠지. 속으로 카츠라에게 이 일을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긴토키는 거리를 두고 천천히 황토색 뒤통수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소년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이동을 해야 하기에 발을 옮기고 있을 뿐. 그러면서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카부키쵸에서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그를 피해서 걷고 있기 때문이다. 대복 차림이 아니라 못 알아보는 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소년이라면 무의식중에서라도 피해 걷게 될 것이다. 몸이 있는 유령 같은 것과 굳이 부딪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실제로 아까 그의 팔을 잠시 붙잡았던 여자 종업원은 금세 그것을 놓아 버렸다. 잠시 후 긴토키가 정면을 지날 때 그녀는 호객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찜찜한 표정으로 아까 소년이 지나간 방향을 보고 있었다. 운이 없었다고 속으로 동정하면서 긴토키는 소년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계속했다.
갑자기 멈춰 서기에 긴토키도 같이 발을 멈췄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미행하고 있는 걸 들켰을 리는 없다고 자신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시라도 돌아보지는 않을까, 물론 돌아본다고 자신의 정체를 간파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지만 긴토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소년은 그 자리에서 서서 잠시 고개를 위로 하여 가만히 있더니 곧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 섰던 거야? 생각해 봤자 긴토키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자 사람이 적어져서 혹시 이번에야말로 들킬까 또 긴장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지금의 저 신센구미 대장은 누가 자기를 미행하지는 않는지 사람 기척을 신경 쓸 여유도 없는 모양이었다. 돌아볼 기색은 더더욱 없다. 어이, 어이. 그래도 되냐? 적도 많으면서. 거기다 오늘은 칼도 안 차서 진짜로 양이지사가 기습이라도 했다간 훅 갈 텐데? 평소라면 또 몰라도 지금 정신 상태로 제대로 반격이나…… 아니 왜 내가 신센구미 녀석 걱정까지 하고 있는 거야. 인상을 찌푸린 긴토키였지만 지금 자신이 소년의 뒤를 쫓고 있는 시점에서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제 집 마당 같은 카부키쵸의 골목길을 요리조리 꺾으며 걸어가는 소년은 미행하기에 쉬운 대상은 아니었다.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기에 특히 더. 지리감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소년은 몇 번이나 긴토키가 모르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역시 매일 같이 에도를 누비는 신센구미를 히키코모리랑 비교하면 안 되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토키가 정체를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서까지 굳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고 싶냐면 그것은 절대 아니었기에 별로 의미 없는 반성이었다.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깨달은 것은 긴토키도 딱 한 번 들린 적이 잇는 장소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언제였던가 오랜만에 카부키쵸에 와 스낵 오토세에 갔지만 가게가 닫혀 있었다. 굳이 다른 데서 술잔을 들 기분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돌아다니다 오토세 본인을 우연히 발견한 게 바로 이곳이었다. 거침없이 들어가 옆에 서자 남편의 기일이라고 했었다. 공물은 만쥬.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오토세에게 꽤 센 힘으로 손등을 맞은 건 씁쓸한 기억이다.
그 날 밤에 소년이 혼자 전장에서 사라졌을 때부터 안 좋은 소식일 거라고 생각은 했었으나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불행 중 최고 레벨이 닥쳤던 모양이었다. 긴토키는 먼저 계단을 올라 묘지로 사라지는 소년을 바로 쫓지 않고 인기척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길에 멈춰 서서 조금 멀리 보이는 묘비들을 바라봤다. 칼도 안 차고 나왔으면서 손에 뭘 들고 있기에 뭔가 했었는데, 공물이었나 보다.
사실 묘지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긴토키의 생각이 맞는다면 자신과 같은 소년도 망설임 없이 묘지로 향했다. 어쩔 수 없지. 긴토키는 다시 발을 뗐다.
한산함을 넘어서 적막한 묘지에서 지금까지 죽 쫓아온 소년을 찾는 것은 금방이었다. 발소리도 기척도 최대한 죽이며 다가간다. 벌써 묘비 앞 작은 제단에 공물을 올려놓은 소년은 어째서인지 묘비에 한 손을 대고서 가만히 서있었다. 큰 소리로 말을 걸지 않아도 들릴 거리까지 와도 반응은 없다. 아 글쎄, 위험하다니까 이 꼬맹이. 실제로 지금 양이지사에게 이만큼 접근을 허용했다. 긴토키가 그럴 생각만 있었으면 벌써 목이 날아갔다. 만약 그 날 이후로 죽 이 상태였다면 그것 참 상사들 속이 속이 아니었겠다고 저도 모르게 신센구미 수뇌부를 동정했다. 만약 긴토키라면 일단 밖에 안 내보낸다. 내보냈다간 목이 붙어서 돌아올 것 같지가 않다.
대체 어디까지 가야 눈치를 채나 싶어 조금씩 더 가봤지만 결국 소년은 긴토키가 바로 옆 묘지까지 가도 묘비를 보고 있던 시선을 하늘로 옮겼을 뿐 옆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큰일이다, 너. 속으로 한숨을 쉬며 긴토키는 제단에 등을 대고 바닥에 앉았다. 땅바닥은 찬데다 옷도 더러워지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만큼 세심한 신경으로 구성된 인간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라고 해봤자 차가운 돌들이 줄줄이 늘어선 것밖에 없는 묘지에서 딱히 할 일도 없는 긴토키가 소년을 관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미행하는 내내 뒷모습만 봐서 그런지 옆모습은 조금 신선했다. 그러고 보면 사복 차림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대복을 입었을 때보다 조금 더 어려 보이는 건 역시 대복을 입으면 ‘신센구미’라는 틀에 묶여서일까. 만약 이 차림으로 처음 만났다면 나중에 18살이라는 나이를 들었어도 전혀 놀라지 않았으리라. 오히려 잘 뜯어보면 눈 자체도 크고 동공이 높은 비율을 차지해서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열여섯인 신파치와 동갑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키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길어 보이는 하반신이나 옷 위로도 알 수 있는 단련된 몸. 저 얼굴만 해도 엄청난 이득인데 체형까지 좋은 건 대체 무슨 차별이란 말인가. 거기다 만지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갈 황토색 생머리까지. 이래서 신이라는 놈은 옛날부터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조금 입을 비죽 내밀고 있던 긴토키는 곧 하늘을 보고 있던 소년이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을 보았다. 제단 위에 올려놓은 과자 봉지의 주인을 눈꺼풀 아래서 보는 걸지도 몰랐다. 그것밖에 없을 터다. 망자를 만나는 방법은.
묘, 하늘, 지하.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망자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긴토키는 한 번도 그런 곳에서 망자를 본 적이 없었다. 시신에도, 묘에도 없었다. 하늘은 너무 넓어서 다 찾을 수 없고, 지하는 그리 깊게 들어갈 수 없었다. 아니, 하늘이나 지하 어딘가에 있지만 다들 찾을 수 없기에 묘에 있다고 믿는 걸지도 몰랐다. 때문에 장례도 매장도 전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믿기 위한 것. 실제로 그것은 꽤 유효했다. 먼저 간 동료에게 향을 올리는 일은 본당에서 아주 흔한 풍경이고, 카츠라나 타카스기가 때때로 각자 혹은 같이 그 사람의 묘를 찾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울며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분명 큰 위안이리라.
자신도, 이 소년도 그럴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묘비를 본다. ‘오키타 가의 묘’라고 새겨진 비석 아래에는 소년의 가족 중 누군가의 시신이 하얀 가루가 되어 묻혀 있을 터다. 하지만 그뿐이다. 목 위로만 남아있던 ‘그’가 ‘그 사람’이 아니었듯이, 분명 묘비 아래의 하얀 가루도 지금 소년의 눈꺼풀 속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실이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 긴토키 자신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눈을 감은 소년이 어떤 기분인지도.
“어이.”
말은 저절로 입에서 흘러 떨어졌다. 눈을 뜬 소년이 자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긴토키의 눈에 비쳤다. 크게 뜨인 붉은 색 눈동자가 똑바로 긴토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말을 걸어버린 건 이제 어쩔 수 없으니까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 다음 행동에 대한 계획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쩐다. 그러나 긴토키가 생각한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당연한 일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똑바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벌써 한참 전에 끊어졌을 목숨이다. 그는 곧장.
“그거, 공물이냐?”
턱으로 가리킨 것은 제단 위의 과자봉지였다. 자세히 보니 봉지에는 큰 글씨로 ‘매운 센베’라고 쓰여 있었다. 아, 헤? 매운 센베? 공물로? 하는데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냐. 아니, 맵다고 붙어 있기야 해도 거의 과자 이름 앞에 붙어 있는 ~~맛이라는 건 그냥 좀 그 맛이 나다 마는 것뿐이니까 별로 맵진 않겠지만……. 응-. 공물이냐고 물어 봐놓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먹어도 돼?”
묻자 소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더니 그대로 묵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한 것 같진 않은데……. 긴토키는 열심히 고민 중인 붉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대체 뭘 고민하고 있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긴토키가 돌아가야 할 시간까지 입을 안 열 것 같은 분위기에 긴토키는 코로만 크게 숨을 뱉고 손을 뻗었다.
소년이 무슨 소리를 한 것도 같지만 무시하고 봉지를 뜯는다. 센베가 빨간색인 건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지 않아? 식욕적인 의미에서. 하고 긴토키는 가벼운 마음으로 센베를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혀에 닿는 순간 온 감각 기관을 지배하는 매운 맛에 눈앞에 별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뱉어버릴 뻔한 것을 긴토키는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이성으로 참아냈다. 저도 모르게 조금 비명 비스무리한 소리를 낸 것도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뭐야, 이거. 잠깐, 뭐야, 이거, 에, 센베? 이게? 말도 안 돼, 뭐야, 벌칙이야? 공물이라며? 하?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휘젓는 수많은 사고들. 하지만 무엇 하나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혼란의 극을 달리던 생각들은 결국 ‘달라고 했으니 끝까지 먹는 수밖에는 없다’라는 결론으로 취합되었다.
한숨을 쉬는 것으로 복잡한 마음을 내뱉고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긴토키는 자신의 잇자국이 남은 센베의 나머지 부분을 전부 입 안에 넣고서 우적우적 씹어 목으로 넘길 수 있을 만큼 잘아지자마자 삼켜버렸다. 당분의 대표적인 음식인 과자를 긴토키가 먹는 방법으로서 있을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혀가 얼얼한 당분은 세상에 없으니까. 긴토키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심호흡을 몇 번 크게 하고서, 세차게 고개를 쳐들었다.
“엄청 맵잖아!”
“맵다고 써 있잖아.”
소년은 뭘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이게 오늘 처음으로 들은 그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18살이면 긴토키보다 족히 10살은 어릴 텐데도 반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소한 일이다.
“아니, 보통 맵다고 써 있어도 이 정도로 맵지는……! 누가 공물로 이런 걸 올리냐?! 나 매운 거 별로거든?!”
물론 긴토키가 매운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소고가 알 리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의 긴토키는 일단 무작정 이 혀가 마비될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싶은 기분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긴토키의 말이 단순한 화풀이라는 걸 올바르게 이해한 듯, 이제까지 무표정이었던 소년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구겨진 얼굴까지 잘 생겼다는 게 더 화를 돋운다. 그러고 보면 매운 음식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소릴 들은 것도 같고 안 들은 것도 같고. 아니, 지금은 스트레스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당신이 맘대로 먹었잖아. 애초에, 누구 허락 받고 먹고 있는 건데? 그거.”
“주인 없는 걸 누구 허락 받고 먹어?”
대충 대꾸하며 긴토키는 두 번째 센베를 입에 물었다. 두 번째가 되니 좀 덜 매운 것도 같다. 아니, 그게 그건가?
허락이 어쩌고 했으면서 아무런 말이 없기에 슬쩍 봤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주인 없는 거’라는 게 걸리는 모양이었다. 뭘 새삼스럽게. 긴토키는 바로 그 주인 없는 과자 봉지의 성분표를 확인해 뭘 넣었기에 이런 혀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같은 맛이 된 건지 살피며 입을 열었다.
“물어 봤는데 바로 대답 안 하는 거 보면 최소한 네 건 아니잖아.”
대꾸는 없지만 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말을 잇는다. 아, 뭐야 이거. 타바스코? 우와-. 누구야, 이런 쓸데없는 발상의 전환을 한 놈. 클레임 넣어서 잘라버릴까 보다.
“그럼 그 ‘오키타 가의 묘’ 공물이라는 건데, 이거 주인 없잖아, 여기.”
긴토키는 본래 주인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다음 센베를 입으로 가져갔다. 여전히 맵다. 이런 걸 공물로 가져올 정도면 정말 좋아했던 모양인데, 대체 미각이 어떻게 돼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걸 먹을 시간이 있으면 단 걸 먹는 게 좋지 않아? 무슨 악취미야? 온 세상의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격노할 생각을 하면서도 긴토키는 혀의 아픔을 견디며 센베를 씹어 삼켰다. 그나마 처음의 비명 지를 뻔했던 매운맛에 비하면 마비됐는지 좀 낫긴 하지만 희미하게 눈물이 맺힐 정도라는 점에서는 역시 고통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매운 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지. 어디에선가 주어들은 지식을 반추하며 긴토키는 쉼 없이 손과 턱을 움직였다.
겨우 봉지를 다 비웠을 때에는 절로 죽을 뻔했다는 불평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원체 단 걸 좋아해서 매운 건 입에도 잘 안 대는 긴토키다. 그런데 이렇게 혀가 얼얼한 센베를 한 조각도 아니고 한 봉지나 먹다니. 3년 쯤 먹을 매운 음식을 다 먹은 기분이다. 그리고 이게 다
“너, 책임 져라.”
이 녀석 때문이다.
“사복인 거 보니 오늘 비번인 모양이고, 어차피 할 일 없지?”
오히려 할 일이 있으면 그게 더 놀랄 노자다. 국장인 콘도 이사오는 인정이 두텁기로 소문난 인간이다. 그 인덕으로 신센구미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런 사람이 가족을 잃은 부하를, 그것도 조직 내 최연소의 소년에게 일을 줬을 리는 없다. 뭐, 설사 일이 있다고 해도 그건 긴토키 알 바가 아니지만.
아까까지 반말로 잘만 쏘아붙였으면서 도로 입을 다문 소년은 대답이 없다. 이 녀석 즈라 쫓아다닐 때는 꽤 어그레시브하던데, 쓸데없을 정도로. 어디 갔어, 어그레시브. 뭐야, 내가 어그레시브 해야 되는 거야? 그래? 귀찮게. 그야 뭐 평소엔 방에만 있으니까 이럴 때 어그레시브를 좀 발휘하지 않으면 국 끓여먹을 때밖엔 못 쓰겠지만. 하고 긴토키는 몸을 일으켰다. 해보자, 어그레시브.
“가자, 경단집.”
여전히 말이 없는 소년은 음성 언어 대신 몸짓 언어로 “뭐래는 거야, 이 사람.”이라고 웅변하고 있었으나 긴토키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좀 신경 쓰여서 쫓아온 건 맞지만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잘 먹지도 않는 매운 음식을 입에 대게 한 죄는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가 안 맞는다. 그렇다면.
“미래의 당분왕인 나에게 매운 센베를 먹인 책임은 경단집에서 한 턱 쏘는 걸로 쿨하게 면제해 줄 테니까 가자고.”
실은 경단집만이 아니라, 파르페, 케이크, 마카롱, 도너츠, 화과자 등등 요구하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굳이 다 입에 담지는 않았다. 원래 사기라는 건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속여야 하는 거다. 이게 사기라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망설이고 있는 소년에게 손을 뻗는다. 긴토키가 전력으로 덤비면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소년도 여유롭게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안 피하겠지. 확신 같은 예감으로 뻗은 손에는 귀여운 얼굴 생김새치고 별로 가늘지는 않은 손목이 닿았다. 잡아끌면 그대로 발 한 쪽이 자신을 향해 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닿은 것도 생각해 보면 처음 있는 일이다. 제 말을 따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 참고로 나 매운 건 몰라도 단 건 엄청 많이 들어가니까 각오해라, 대장님.”
말 걸어도 무시하던 고양이가 처음 말을 들은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좋았다고 하면 아무리 20년 친구들이라도 어이가 없어 할 것이다.
경단이 오자마자 “제일 맛있는 메뉴니까 음미하면서 먹어, 음미하면서.”라며 쥐어주자 “내가 돈 내는 건데 왜 당신이 생색이야?”라며 뚱한 표정으로 받아들었다. 아까부터 좀 느껴지긴 했지만 말이 길어지니까 정말 말 하는 싸가지를 어머니 뱃속에 고이 모셔두고 나온 놈이다. 뭐라 할까도 했지만 한 입 먹은 소년의 표정이 뚱한 것에서 무표정으로 변했기에 긴토키는 자신의 경단을 먹는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맛있으면 좀 더 맛있다는 티를 내면 좋을 텐데. 귀여운 건지, 안 귀여운 건지. “맛있어?”라고 물으면 “좀 덜 단 게 좋아.”란다. 역시 안 귀여워, 이 꼬맹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파칭코 가게로 향하자 아직 해도 밝은데 벌써 중년의 남자 몇 명이 담배를 물고서 앉아 있었다. 몇 번인가 파칭코도 술자리도 함께 했던 선글라스(본체)를 찾아 봤지만 이 안엔 없다. 뭐, 못 만나는 날도 있다. 볼 때마다 일자리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겨우 직장을 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 긴토키가 제일 좋은 기계에 가서 앉자 뒤에 소년이 없었다. 돌아보니 입구에 가만히 서있다. 뭐 하는 거야? 손짓으로 부르자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일단 떨떠름하다는 것만은 확실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어왔다.
“당신 참…….”
“왜?”
“마다오의 표본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예의라는 게 없는 꼬맹이다. 사실은 사실 그대로 말 하면 안 되는 거야. 상처 받으니까. 훈계하자, “알아.”라며 이쪽을 보지도 않고 옆 기계 앞에 앉으며 대답했다. 어이, 알고서 그 코멘트냐? 야, 인마.
파칭코의 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그나마 소년은 몇 번 슬롯을 당기다가 지기만 하자 재미없는지 그만 둬 버렸는데 긴토키는 그렇지 못했다. 늘 다음엔 될 것 같은 것이다, 이게. 다음번에 안 되면 그만 둬야지 해도 2개가 맞아 버리면 다음엔 될 것 같고, 다음에 안 되면 방금 전엔 됐으니까 몇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고, 이만큼 했으면 한 번 쯤은 걸릴 때가 된 것도 같고…….
“…….”
“누가 보면 모든 걸 새하얗게 불태운 사람인 줄 알겠어.”
“새하얗게 불태웠어…….”
“당신 말고 돈이.”
심장이 아프다.
“우으…… 대장님…….”
“콧소리 내지 마, 오카마. 소름 돋아, 오카마. 붙지 마, 오카마. 징징거리지 마, 오카마. 그리고 당신 대장 아냐, 오카마.”
“그렇게 까대면서 말끝마다 오카마까지 붙이는 건 너무하지 않아?! 위자료로 파르페를 청구한다?!”
먼저 일어서서 나가려는 소년을 쫓아가며 소리치자 시끄럽다고 한 쪽 귀를 막으면서도 의외로 승낙이 떨어졌다.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절망하는 얼굴이 재밌었다고 한다. 이 S가. 긴토키는 작게 내뱉고, 하지만 파르페를 마다할 이유는 무엇 하나 없었기에 재빨리 앞장서서 그가 파르페를 높이 평가하는 가게로 향했다.
소년은 놀랍게도 만화 카페에 온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18살이잖아, 너.”라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도 않고 묻자 일 때문에 바쁜데다 쉬는 날에도 둔소 밖으로는 잘 안 나간다는 모양. 설사 나간다고 해도 묘한 의미의 교우 관계를 넓히거나 저주 도구를 사러 가거나 SM…… 어이.
“삭막한 청춘이라고 해야 할지, 썩어빠진 청춘이라고 해야 할지…….”
만화 카페면서 놀라울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파르페를 먹으며 긴토키가 평하자 당연히 한 마디도 안 지는 소년 역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그 손 안에는 모 배달부인 마녀 업무에 종사하시는 키키 양 애니메이션 코믹스. 언밸런스하기 짝이 없는 초이스지만 아까 이유를 물었을 때 “조교할 때 제일 재밌을 것 같잖아, 키키.”라는 대답을 들었다. 잘못한 건 얜데 내가 감독님께 괜히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일 땡땡이 치고 남의 돈으로 파칭코 갔다가 단 거 순회하다가 점프나 보고 있는 오카마는 조용히 하지?”
여전히 쓸데없이 진실돼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놈이다. 오카마는 아니지만. 아니, 눈 화장은 아웃인가……? 인 아냐? 긴토키는 고민했으나 물어볼 사람은 앞에 앉아 아메리카노-저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자기 입에 쓴 걸 들이 붓는 거지? 약이냐?-를 쓸데없이 우아하게 마시며 만화책을 보고 있는 소년뿐이었고, 그에게 오카마가 아니라는 걸 말하는 것이야말로 아웃이다. 카츠라나 타카스기에게 물어봤자 전자는 이유도 없이 우주의 신비가 느껴지는, 후자는 악의가 99%인 대답밖에 못 들을 테니 마타코나 반사이에게 물어봐야겠다고 긴토키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도 먼저 다 읽은 모양인 소년이 책을 덮는 소리가 났지만 긴토키는 점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마, 머리카락, 귀, 어깨, 팔, 꼬고 있는 다리, 가슴께, 목, 입술, 코———눈. 타겠다, 인마.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에 속으로만 말을 뱉는다. 눈에 다다른 뒤 이동을 멈춰버린 시선. 할 말이, 또 묻고 싶은 말이 있을 터다. 틈을 주지 않은 건 긴토키다.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끝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긴토키 스스로도 입에 담은 적 없고 담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긴토키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소년이 스스로 생각해서 어딘가에서 해답을 찾아 가 준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물론 이 뜨거운 시선을 보면 그른 모양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긴토키가 저 나이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렇게 쉽게 나올 해답이었으면 그도 이런 마음으로 약 10년의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면 바로 답이 나오냐면 그건 아니지만 슬슬 각오를 굳힐 때가 됐다.
점프를 덮고 고개를 들자 곧장 눈이 맞았다. 그야 그렇게 계속 보고 있는데 긴토키도 소년 쪽을 봐 버리면 눈이 맞을 수밖에 없다. 피곤한 기색은 역력하지만 붉은 눈 한 쌍은 곧게 긴토키를 보고 있었다. 작은 입술은 여전히 굳게 다문 채. 그럼 긴토키가 먼저 입을 뗄 수밖에.
“배고프다. 밥. 술.”
“점프 좋아하면 얼굴 가죽도 점프 두께가 되는 줄은 몰랐는데.”
“점프력 20년 쯤 되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지.”
두 눈이 “칭찬 아니거든?”이라고 말없이 소리치고 있었으나 긴토키는 무시하고 먼저 일어섰다.
좌식으로 된 테이블들을 칸막이로 가려놓은 술집은 사실 타카스기의 취향이다. 본인은 풍류라고 주장하는 허세가 덜 빠져서 가끔 의미도 없이 샤미센을 켜곤 하기 때문이다. 그 장단에 맞춰서 술이 많이 오른 긴토키가 춤을 추거나 아주 가끔 카츠라가 노래-의외로 잘 하면서 평소엔 절대 하지 않는다-를 하기도 하니 보는 눈은 적을수록 좋은 것이 사실이었다. 반대로 긴토키는 쉽게 움직일 수 있고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는 시끌벅적한 입식이 더 취향이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입구에서 여주인이 소년을 알아본 것을 “아스카 쨩, 왜 그래? 내가 완전 사랑하는 거 알지?”라고 실실 웃으며 몸을 밀착시켜 무마시킨 긴토키는 그렇게 싫지는 않은 표정으로 괜히 피곤한 일 만들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 역시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하고선 소년의 어깨를 밀며 가장 안쪽 테이블로 향했다. 입구에서 가장 멀고 부엌과도 반대편에 있어 있는지 없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자리. 술은 대원들이 밖에서 사온 것을 둔소에서 마신다는 소년이 “이런 방법이 있었네.”라며 쓸데없는 지식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시사했으나 긴토키는 거기에 아무 말도 않았다.
술과 안주라는 이름의 식사가 나오고 서로 잔을 채워준 것까진 좋았지만 두 사람의 잔은 맞부딪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건배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아무 말이나 해도 소년이 잔을 맞대줄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센구미 대장님에게 본당의 두령이랑 저도 모르게 잔을 나누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부딪치지 않은 작은 잔들은 그러나 동시에 각자 주인의 입술에 닿았다.
술이 약하면 다음 날은 고생이지만 빨리 취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 긴토키의 생각이다. 가장 주량이 센 타카스기에 의하면 지극히 자신의 형편에 좋은 생각이고 주사의 가장 큰 피해자인 카츠라는 민폐니까 취하지 않을 노력이라도 하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취했을 때 특유의 이유도 없이 고양된 기분이 좋은 거니까.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억지로 술을 먹인다든가 해서 다들 긴토키가 술을 마시면 도망 다니지만 그에게 고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히지카타 씨만큼 술 약한 사람이 또 있었을 줄이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소년 앞에 앉은 긴토키의 얼굴은 뺨과 귀, 목이 빨갛게 달아올라 완전히 취기가 오른 사람의 그것이었다. 참고로 긴토키가 비운 잔은 딱 세 잔. 같은 양을 섭취한 소년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소년은 술이 센 축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별로 부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귀신 부장이라 악명 높은 히지카타가 긴토키만큼 술이 약하다는 건 재미있는 정보였다. 타카스기가 들으면 기뻐하지 않을까.
“피, 피, 피자 호빵~ 피자피자피자~ 호빵~.”
생각하며 긴토키는 아까부터 작지 않은 소리로 흥얼거리던 노래를 계속했다. 참고로 3절 째다. 한 잔 입에 대고 식사를 시작한 시점에서 꽤 좋아진 긴토키의 기분은 두 잔째가 들어갔을 때 손가락 장단에 맞추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으며, 세 잔이 들어간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가사가 붙은 노래가 되었다. 물론 그는 자신이 노래-특히나 음정을 맞추는 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듣는 사람이 한없이 괴롭거나 웃기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노래는 하는 사람이 즐거우면 된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이니까 기분이 좋아지면 노래도 좀 할 수 있는 거지. 나오는 걸 어떡하라고. 음치가 조용히 좀 하라는 의견은 자동 기각이다.
“피자 호빵은~ 맛있어~ 피자~ 호~ 빵~.”
알코올이 돌아 이유도 없이 머릿속이 붕붕 뜨는 기분은 역시 절로 노래가 나올 만큼은 좋은 것이었다. 온몸에서 적당히 열이 나고 촉각을 비롯한 감각들이 전체적으로 둔해지고, 괜히 다른 사람을 붙잡고 술을 먹여서 이것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물론 지금 긴토키가 술을 권할 사람은 바로 앞에서 별로 변화가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소년뿐이었지만. 이미 긴토키 안에 그가 미성년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노래가 끝나면 얼른 잔 비우라고 해야지. 노래에 대한 미묘한 집착을 보이는 긴토키는 아까부터 조금씩 몸을 앞뒤로 흔들던 것을 좌우로 바꾸며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피~ 자~ 호~ 빵~.”
코러스가 붙는다면 아마 장엄할지도 모를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서 긴토키는 “박수~.”하고 벌써 약간 부정확해진 발음과 함께 손뼉을 쳤다. 바로 앞에서 의욕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박수가 서너 번 이어지더니 바로 그쳤다.
“대장님~ 그걸 지금 박수라고 친 거야~?”
“쳐준 것만으로도 감사해.”
얄짤없다. 이렇게 언동에 자비가 없으니까 신문에도 S라고 나는 거다.
네 번째 잔을 들이키고 내려놓자 눈이 맞았다. 아니, 오늘 점심때부터 계속 함게 있었으니 눈은 벌써 양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맞았지만.
“당신, 일은? 취한 상태로 가는 거야?”
“아- 나는 취했을 때가 더 접객 태도 좋다고 해서.”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하는 똑같은 대답. “이거 다 먹으면 지각 들키기 전에 갈 거야.”라고 한 마디 더해둔다. 대답은 그 사실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흐-응.”이었다.
“무슨 접객? 노래는 절대 아닌 것 같고.”
“나보다 더 못하는 애도 있거든?!”
신파치는 타고난 평범함 덕에 밖에 나갈 때 여장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건 없지만 일단 주장해 본다. 하지만 소년은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음치니까 악기도 안 될 테고.”라고 실례되는 의견을 연이어 피력하고 있었다. 누가 음치야, 인마. 그냥 좀 머릿속에서 음정이란 게 아메바 같은 썸씽이 되어 흩어질 뿐이야. 어린이가 된지 년 단위로 지났는데 아직도 초딩인 모 고등학생 천재 탐정도 절대 음감이지만 음치잖아. 그런 거라고.
“춤?”
잔을 들이킨 후 어깨와 가슴을 왔다 갔다 하던 시선이 묻기에 긴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이상으로 근육이 붙은 것도 아니고 군살도 없는 긴토키의 몸은 많이 움직이는 사람의 몸이다. 사이고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보디가드가 아니라면 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긴토키는 고칠 생각은커녕 오히려 고정시킬 생각밖에 없었다. 품 안에 넣어두고 다니는 손부채 역시 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왜, 보여줄까~?”라며 조금 웃어 보이자 “남자가 춤추는 걸 뭐 하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저 나이에 벌써부터 그런 취향은 없나. 생각하면서도 긴토키는 “읏차”하고 소리를 내며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당신 정말 사람 얘기 안 듣는다…….”라고 소년이 중얼거렸지만 무시. 노래를 했으면 이번엔 춤이다. 긴토키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취한 타카스기가 혈색 좋은 얼굴로 샤미센을 꺼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곡 제목을 대고 부를 수 있냐고 묻자 소년은 별로 내키지 않은 표정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충분하다. 기분이 좋아서 얼굴이 절로 웃는다. 긴토키는 손바닥으로 손목을 때려서 박수를 치고, 그것이 세 번째 소리를 냈을 때 한숨처럼 소년이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금방이다.
부채를 펼치는 동작. 부드럽게 회전하는 손목. 바닥을 가볍게 미끄러지는 발끝. 시선을 유도하며 살짝 펄럭이는 옷자락. 뒤로 돌면 흔들려서 존재를 주장하는 머리카락. 흑과 백, 적과 백의 선명한 대비. 짧은 곡임에도 수도 없이 마주치는 눈. 소년의 눈길, 호흡, 열기까지. 그것을 온몸으로 받은 후에 자리에 앉았을 때는 술 때문인지 춤을 춰서인지 더 몸이 뜨거워져 있었다. 움직인 탓에 술이 더 돈 걸지도 몰랐다.
“어때?”라고 물으면 “잘리진 않겠네.”라고, 여전히 퉁명스럽기만 한 대답. 하지만 술병을 들어서 잔을 채워주겠다는 제스처를 하는 걸 보면 마음에 안 든 건 아닌 모양이었다. 긴토키의 춤이 끝나자마자 소년이 비운 잔을 다시 채워주고 몇 번 만에 겹친 잔을 드는 타이밍에 둘은 잠시 멈칫했다. 속을 들여다볼 요량으로 본 앳된 얼굴은 아까 전에 비하면 조금 붉어져 있었다.
“할까?”
건배.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는 목적어에 소년이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뭐에.”라고 낮게 물었다. 술은 아까보다 더 돌았는데 기분은 어째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느낌 속에서, 억지로라도 그것을 띄우는 것처럼 긴토키가 조심스레 자신의 잔을 소년의 잔에 갖다 댔다. 귀에 겨우 닿을 만큼 작은 소리가 났다.
“어딘가에 있을 그 사람들에게.”
그 말에 소년이 눈을 크게 뜨고 긴토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무시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단번에 또 잔을 비운다. 6잔? 7잔인가? 벌써 허용량은 오버한지 오래다. 긴토키가 잔을 내려놨을 때가 돼서야 소년은 겨우 자신의 잔을 비우고 있었다. 조금 위로 젖힌 목에 선명한 목젖. 얼굴이 앳돼서인지 가늘다는 인상을 주지만 옷 위로도 보이는 몸은 전혀 가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직 이렇게 새파란 꼬맹이한테 질 거라곤 생각 안 하지만, 싸워 보면 꽤 괜찮은 선까지 가지 않을까. 산만한 사고에 몸을 맡기고 긴토키는 벽에 기댔다. 곧 소년도 잔을 내려놓았다. 벽에 기댄 채 한 손으로 따라주자 시선이 멍하니 움직이는 그 손을 쫓았다.
“누님이,”
갑자기 앞에서 들려온 갈라진 목소리에 긴토키는 술잔에서 눈만 들어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긴토키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매운 걸 좋아하셔서,”
잔을 채우고, 술병을 세운다.
“그래서, 콘도 씨가,”
뚝뚝 끊어지는 말과 말은 도무지 정돈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숨을, 토하는 소리. 이산화탄소 말고 다른 것이 함께 터져 나온 것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갈 곳을 잃은 그것들이 테이블 위에 산란한다. 소년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입을 작게 벌린 채 자신의 술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얇고 작은 입이 곧 한 일자 모양이 된다. 이를 악문 것이라는 걸 알고 손을 뻗었다.
“거기 없는데 어떻게 갖다 주라는 거야.”
힘이 들어갔을 턱을 가볍게 손가락 등으로 쓸고 “그치?”라고 더한다. 술잔을 보던 눈이 긴토키의 눈으로 그 시선을 돌린다. 턱에서 힘이 빠진 것을 확인하고도 긴토키는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부드러워서 기분 좋다. 18살 남아 피부라고 생각하면 우스웠지만.
“그렇게 쉽게 뭘 주고, 보고, 말할 수 있으면 누가 이 고생을 한다고.”
이를 테면, 카츠라가 그 사람의 무덤에 가서 큰 작전이 성공했다며 당신이 바라던 세상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이야기할 때. 이를 테면, 타카스기가 쓸데없을 정도로 좋은 술을 구해서 그 앞에 공양하고 하염없이 담배만 피우고 앉아 있을 때. 무엇이 보이는지, 들리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 않은 것은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믿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때 이미 10년을 함께한 친구들이었고, 함께 싸워온 동료였고, 같은 사람 아래서 자란 형제였다. 서로 다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함께 있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보이는데 자신에겐 이 세상 어디에도 그 사람이 없다는 것만은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소외감과 질투와 공포와 불안과 방황과 초조. 쏟아지지 않도록 그걸 전부 눌러 담고서, 기약 없는 약속을 지키면서 다시 10년.
이 아이에게는 그런 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뭘 어떻게 주고 말 하라고.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지.”
그런 건 나 혼자로 족하다.
“나도,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산더미라고…….”
선생님, 나 어떻게 해야 해? 여기 있어도 돼? 계속 이 녀석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지키면 돼? 하지만 선생님, ‘모두’라고 했잖아. 선생님이 있어야 ‘모두’잖아. 그럼 나 벌써 약속 어긴 거잖아. 어떻게 해야 해? 나 약속 어겼는데, 여기 있어도 돼? 소중한 사람 하나 못 지켜놓고 여기 있어도 돼? 아니면 선생님을 빼고 ‘모두’야? 그냥 계속 여기에 이렇게 있으면 돼? 하지만 선생님, 그러면, 누구 하나라도 잃을까 무서워서, 또 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될까 무서워서, 소중한 사람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데, 어떻게 해야 해?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뺨에 대고 있던 손에 무엇이 묻어서 생각이 현실로 돌아온다. 묻은 것. 액체. 투명하고 뜨거운 것. 아아. 다행이다. 네가, 나보다 낫다. 한 번도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나보다, 훨씬.
“나도,”
“응.”
대답하면서 뺨에 대고 있던 손가락을 그대로 올리며 눈물을 닦는다.
“누님한테, 미안, 하다고…….”
“응.”
반대편 뺨에도 손을 댄다. 알코올 때문에 한참 전부터 체온이 상승한 자신의 손도, 소년의 뺨도 뜨겁기만 하다.
“누님이 날 원망해도,”
“응.”
“그래도, 나는, 누님 동생이라, 행복했다고…….”
딸꾹질이 섞인다. 원래도 붉은 눈이 주변까지 붉게 물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테이블을 넘어가고 싶었다.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사카타 긴토키가 잘 알고 있었기에. 대신 이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해야 하는 의무도 없었다. 소년이 이름 한 번 듣지 못한 이 백발의 남자는 양이지사도 아니고, 신센구미는 더더욱 아닌 카부키쵸에 사는 남자 종업원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될 터다.
“응. 나도,”
손바닥으로 뺨을 쓸어 올려 눈물을 닦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눈물이 줄기를 만들기에 별로 의미는 없는 행위였다. 손가락 끝이 황토색 머리카락에 닿았다. 곧게 뻗은 생머리. 손가락을 벌려 머리카락이 그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걸 느끼며 머리를 쓸어주었다.
“미안하다고,”
초저녁부터 여기저기서 큰 소리가 나는 술집이다. 설사 우는 사람이 있어도 술주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 구석진 자리가 보일지조차 의문이지만.
“고맙다고…….”
그러니까 울고 싶은 만큼 울어도 된다고. 언외로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계속 쓸어주었다. 큰 눈에서 그 만큼이나 큰 눈물방울이 쉼 없이 떨어지는 걸 계속 보고 있었다. 이만큼 울 수 있다면, 됐다. 자신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눈은 눈물방울 하나 떨구지 못하더라도 충분했다. 이렇게 머리를 쓰는 것만으로도 긴토키는 오늘 이 소년의 뒤를 쫓아온 의미가 있다.
한참이나 울고, 겨우 그게 잦아들 때 쯤 됐을 땐 소년의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다. 신센구미 대장님이 이러고 둔소에 돌아가도 되는 건지.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소년이 자신의 상황을 모를 리는 없었지만 지금 그 사실을 건드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긴토키는 다른 말을 꺼냈다.
“정말, 어디로 갔는지 몰라. 땅은 팔 재간이 없고, 하늘은 너무 넓고. 한 번 쯤은 나타나 줘도 될 걸 그러지도 않고. 허구헛날 애들한테 둘러싸여있던 사람이니까 혼자 있으면 쓸쓸할 텐데.”
어차피 대꾸를 바라고 하는 말이기에 긴토키는 소년이 모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멋대로 떠들었다. 이 정도 정보로 그의 스승의 이름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이 차이가 꽤 있으니 아예 이름조차 모를 수도 있다. 그렇게 전제하고 이어지던 긴토키의 혼잣말은 “혼자 아냐.”라는 말에 뚝 잘렸다. 울기 시작한 후로 처음 들은 목소리에 놀라 눈을 마주친다. 아직 눈물막 속에 잠긴 눈이 긴토키를 본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면 혼자 아냐. 누님하고 같은 곳에 있을 테니까.”
아직 조금 코 막힌 소리. 내용도 내용이다. 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 대해 뭘 안다고. 그 스승에 대해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것보다 훨씬 압도적인 것이 가슴에서부터 목으로 치고 올라와서 긴토키는 입을 다물었다. 겨우 “그래.”라고 짜내고, 아직 머리카락을 쓸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10년 동안 제대로 한 번 울지도 못했는데 그 말에 조금 울 뻔했다니, 카운터펀치라는 건 무섭다.
울음을 그친 후에는 흥분이 가라앉아 쑥스러워졌는지 꽁해있던 소년을 데리고 긴토키는 가게를 나왔다. 시간은…… 카부키쵸가 본격적으로 활력에 찰 시간이다. 슬슬 타임아웃이다. 긴토키는 뒤쪽에 서있던 소년을 흘끗 보았다. 훔쳐 볼 생각이었는데 눈이 맞는다.
“당신, 일?”
“어. 대장님도 슬슬 집에 가지? 청소년이 밖에 나다니면 경찰 아저씨가 집에 안 가고 뭐 하냐고 물을 시간이니까 얼른 집에 가.”
“그거 내 일이거든. 내가 경찰이라고.”
바로 받아친 소년이었지만 곧 “의외로 심약한 고릴라 하나가 쓸데없이 걱정할 테니까 가긴 가지만.”이라고 덧붙였다. 그럼 됐다. 긴토키의 뇌 내 지도가 맞는다면 여기서 신센구미 둔소까지는 별로 멀지도 않고, 무엇보다 낮이랑은 소년의 눈이 다르니 설사 칼을 안 차고 있다고 해도 이젠 혼자 보내도 될 것이다. 그럼 적당히 보내고……. “가게 어디야? 카맛코 구락부?”
……어라.
“거기 아냐. 비슷하지만.”
“어디냐고.”
“꼬꼬마는 못 들어오는 곳이에요~. 아, 여기처럼 꼼수로 들어오려고 해도 안 된다? 법을 준수하라고, 경찰.”
“어느 주둥아리가 준법정신 같은 소릴…….”
지당한 의견이었지만 긴토키는 무시했다. 것보다, 이런 걸 묻는다는 것은.
“왜-? 나 보러 오게?”
“…….”
침묵은 긍정. 긴토키는 속으로 신음했다. 큰일 났다. 필요 이상으로 친해진 모양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누가 호감을 가져주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 상대가 신센구미 대장인 건 곤란하다. 애초에 긴토키로서는 오늘 소년의 모습을 보고 도저히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말을 건 것이지 굳이 또 만날 생각은 없었다. 너무 친해지는 것도, 정체를 들키는 것도 본의가 아니다. 거절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다만 어떻게 말해야 이 배배 꼬인 꼬맹이 납득을…….
“안 돼?”
……왜 그런 식으로 날 볼까나, 이 꼬맹이…….
긴토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신음과 비명과 별 맥락 없는 카츠라에 대한 매도를 적당히 늘어놓는다.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이다. 즉 막부 소속의 인간으로, 적이다. 원수다. 언젠가 서로 죽고 죽이게 될 텐데 친해져서 어쩌겠다는 건가. 한 순간의 동정으로 목숨이라도 버릴 셈이냐, 사카타 긴토키.
아무리 많은 ‘만나서는 안 될 이유’를 나열해 봐도 그것이 전부 ‘자신도 만나고 싶다’라는 감정 하나를 못 이겼다. 그치만 이 애가, 지난날의 자신과 똑같은 소리를 하니까.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소릴 하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말이 와서 가슴에, 심장에 스민 것을.
“그럼,”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기할까?”
소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보며 잇는다.
“내일 4시, 오늘 갔던 데 중 한 곳에 있을게. 그래서 만나면, 가르쳐줄게.”
확률은 1/5. 불가능할 만큼 낮지는 않지만 절대로 높지도 않다.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이.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최대 양보선이었다. 못 만난다면 그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소년은 눈에 띄는 편이니 다음부터 피해다닐 뿐이다. 만난다면———운명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는 수밖에.
“그냥 가르쳐 주면 안 돼? 뭘 그렇게 비싸게 굴어?”
“야.”
가볍게 이마를 한 대 치면 평탄한 목소리가 “아야.”하고 소리를 냈다. 분명히 뜻은 아픔을 호소하는 것인데 목소리가 전혀 아프게 들리지 않는다. 아까 통곡을 하긴 했지만 표정도 기본적으로 별로 안 변하고, 성격도 나쁘고. 잘은 생겼는데 여러 가지로 참 안타까운 녀석일세. 생각하며 “할 거야, 말 거야?”하고 묻자 살짝 찌푸렸던 미간에서 다시 주름을 없애고 똑바로 올려다본다.
“해. 나 이런 운은 좋거든.”
“일하는 중에 찾아가서 쪽 팔린 꼴 봐줄 테니까 각오해, 당신.”이라며 씩 웃는다.
……이 표정은 좀, 좋을지도 몰랐다.
“네가 아무리 내 쪽 팔린 꼴을 봐도 내가 오늘 본 거에 비하면 안 쪽팔리거든요~.”
“당신 오늘 유치장에서 잘래?”
“죄송합니다.”
잽싸게 사과하고 긴토키는 먼저 걸어 나갔다. 몇 걸음 떨어진다. 어두워서인지 몇 발짝만 떨어져도 소년의 눈가가 붉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뭐, 대장님 체면 구기는 일은 없겠다.
“너무 늦으면 마드모아젤한테 거꾸로 매달릴 것 같으니까 먼저 간다.”
“어.”
“차 조심하고~.”
“내가 애냐?”
웃고서 돌아섰다. 손을 흔들고.
“안녕, 오키타 군.”
내일 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쓸모 있는 오감은 소년이 그 자리에 계속 서있다는 사실을 전해왔기에 돌아보지 않고, 긴토키는 똑바로 걸어갔다.
일단 피자 호빵을 사고, 담배는…… 내일 나가는 구실로 써먹어도 괜찮겠지. 타카스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긴토키는 서서히 카부키쵸의 인파 속에 휩쓸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