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그래서 오늘은 「戯」자를 썼습니다.
2009.07.22. 작성
"매달 14일에는 연인들의 기념일이 어쩌구 하면서 발렌타인 데이다 뭐다 소란스러우면서 과자가 뭐 어쩌고 어째? 질리지도 않나. 먹고 살려고 고생한다, 과자 회사. 알겠냐? 카구라. 넌 커서 절대 저런 거 열심히 챙기는 놈 만나면 안 된다. 실 없는 놈이야."
"사드는 그런 거 열심히 챙긴다 해."
"……그래서 긴 상이 이 고생을 하는 거다. 알겠지?"
"응."
잠깐 정적.
"……아니, 저기 있잖아. 카구라? 소고 군 별로 실 없는 놈은 아니거든?"
"긴 쨩 방금 한 얘기랑 말이 다르다 해."
"그러니까…… 그, 그런 걸 열심히 챙기는 건 실 없는 놈이 맞는데 소고 군은 예외랄까……."
"그렇게 금방 예외 만들 거면 애초에 그런 소리 안 하는 게 좋다 해."
"……미안."
긴토키는 무릎 위에 앉아있는 카구라에게 사과했다. 초절임을 씹으며 TV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아이는 시크하게도 "괜찮다 해. 마미-가 사드한테 그러는 거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해."라고 대꾸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긴토키는 입 다물고 얌전히 카구라와 함께 TV 시청을 하기로 했다.
"긴 상, 카구라 쨩. 다녀왔어요."
"어서와라 해."
"어서와."
장 보러 나간 신파치가 귀가했다. 한 손에는 수제 장바구니(비닐봉지값이 아깝다고 남는 천조가리로 직접 만들었다. 살림꾼이다.)를, 한 손에는 작은 박스를 들고 있었다.
"긴 상. 긴상 이름으로 소포 왔는데요."
"소포?"
"네. 그런데 발신자 주소도 없고, 수신자 주소도 없고……. 에, 수신자란에 '긴토키 님', 발신자란에 '사츠키'라고 돼있어요."
戯 : 희롱할 희
①희롱하다 ②놀이하다 ③놀다
④놀이 ⑤연극 ⑥탄식하다(호)
삐뚤빼뚤한 히라가나로 쓰인 '긴토키 님'과 '사츠키'. 거기에 주소는 양쪽 다 공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우체국이 이런 걸 배달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100% 사노가에서 사람을 시켜 직접 배달한 것이다. 물론 그 형제를 생각하면 사츠키가 긴토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을 때 편지 봉투 쓰는 법을 가르치기보단 이렇게 할 것 같긴 하다. 긴토키는 박스 겉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누구에요? 사츠키라는 사람. 글씨 보니까 어린애 같은데…… 혹시 다른 데 낳아둔 자식이에요?"
"팟쯔앙,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줄래? 긴상 그 칸시치로인지 칸파치로인지 하는 꼬맹이 때도 간 떨어질 뻔 했거든? 그리고 사츠키는 내 자식 아냐."
"맞다 해! 마미-의 자식은 나 하나뿐이다 해!"
"아니 뭐……"
거기에 다른 데 낳아둔 자식이 있었다간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 그 자식과 아이 어머니의 신변이 위험하다. 긴토키는 잠깐 독점욕 하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반려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상상하기도 싫다. 그는 있지도 않은 2세 생각을 접어버리고 조심스럽게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내용물은 편지 한 통과 포키 두 통이었다.
"포키다 해! 긴 쨩 나 이거 먹어도 되냐 해?"
"카구라 쨩. 긴 상한테 온 소포잖아? 최소한 편지는 읽고난 다음에……."
"한 통 정도는 먹어도 돼."
"끼얏호-!"
신나서 포키를 뜯는 카구라. 무자비한 그 손놀림을 질렸다는 눈으로 보고있는 신파치를 앞에 두고 긴토키는 편지를 뜯었다. 온통 히라가나 투성이에 아주 쉬운 한자만 겨우 제대로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긴토키님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사츠키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긴토키님이 가신 이후로 히츠야 님이 어른처럼 행동하게 되셔서 히츠야 님의 수발을 들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히츠야 님이 그림을 배우실 때 옆에서 같이 배우고, 텔레비전이라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굉장히 즐겁습니다. 별채에 책이 많이 생겨서 히츠야 님이 읽어주시기도 합니다만, 스스로 읽고 싶어서 요즘은 히츠야 님께 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편지도 공부를 겸해서 쓰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토우야 님도 잘 해주십니다. 예전에도 이따금 웃으셨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듭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히츠야 님한테 가끔 혼나기도 하고 맞기도 하는데 그래도 훨씬 즐거워 보이십니다. 신기합니다. 얼마 전에는 사츠키가 그림 그린 걸 칭찬해주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그만 사츠키가 울어버려서 히츠야 님께 혼났답니다. 그치만 이제 사츠키는 안 울 겁니다.
히츠야 님과 함께 외출하는 연습도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100걸음도 넘게 멀리 있는 백화점에 다녀왔습니다. 사람이 엄청 많아서 놀랐습니다. 사람이 많아도 괜찮아지고 혼자서도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면 긴토키 님을 뵈러 갈 생각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11월 11일이 '포키데이'라고 해서 어제 산 포키를 긴토키 님께 보냅니다. 그 때 같이 오셨던 분들과 드세요.」
두서 없는 편지였다. 거기에 처음 보내는 편지치고는 꽤 장문이었다. 말은 할 줄 알지만 글을 쓸 줄 모르면 꽤 힘들었을 텐데, 어지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긴토키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편지를 뒤집었다. 거기에도 글이 있었다.
우아하고 조금 세로로 긴 글씨로 '히라가나 투성이라 읽기 힘듭니다. 한자 공부를 하세요.'라고 한 줄. 이름은 안 써있지만 글씨체와 말투만 봐도 알 수 있다. 토우야다. 확실히, 히라가나 투성이라 읽기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더 투박하고 난잡한 글씨. '토우야가 심술궂은 소리 하지만 신경 쓰지마. 잘 썼어.' 히츠야다. 과연. 긴토키가 떠난 후의 형제는 이런 관계가 성립한 모양이다. 사츠키가 보기는 적잖이 이상할 것이다. 긴토키는 그 광경을 생각해보고 조금 웃었다. 능구렁이 마냥 징그럽기만 한 동생놈이라고 생각했는데, 형한테는 귀여운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편진데 그렇게 재밌게 읽으세요?"
"아? 긴 상을 향한 격정을 담은 러브레터. 하루라도 빨리 날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네. 아아, 피곤하다니까 인기인은."
"네, 네. 그러세요. 그럼 이 포키, 긴 상한테 온 거죠?"
말하면서 신파치가 포키 한 통을 내밀었다. 카구라가 입을 헤 벌리고 이쪽을 본다. 긴토키는 포장을 뜯어 하나만 입에 물고는 나머지를 아이에게 건넸다. 과자가 딱하고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초코맛. 자기에게 보낼 것만 사진 않았을 테니 사츠키도 먹었을 것이다. 긴토키에게 줬는데 히츠야나 토우야에게 안 줬을 리도 없다. 아이는 아이대로, 여러가지 있었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 모양이다. 긴토키는 손가락 끝으로 포키를 입 속으로 밀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요?"
"갑자기 소고 군이 보고 싶어서. 포키 데이에 포키 게임 같이 할 상대도 없는 솔로는 집에 있도록. 카구라, 포키 많이 가져올 테니까 이따 놀자."
"응-. 다녀오세요다 해-."
"……커플은 커플이라도 상대가 남자인 사람은 별로 안 부러운데요, 저도. 뭐…… 다녀오세요."
포키를 받아서 기분이 좋은지 카구라는 긴토키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이렇게 깨끗하게 배웅 받는 건 또 처음이다. 긴토키는 해결사 사무소를 뒤로 하고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하늘이 새파랗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는 경쾌한 발소리가 선선한 가을 공기를 흔들었다.
"있다."
대로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 그대로 소녀떼에게 둘러싸여있는 것이다. 좋으시겠구만, 미소년. 발렌타인 데이 때도 이랬단 건가? 그리고 그 초콜릿을 다 거절했다구? 대단하구만. 그것도 능력이다. 긴토키는 꺅꺅거리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는 소녀들 사이를 가르며 그 중앙으로 들어갔다.
"여어, 인기남."
"긴토키 씨……. 아- 이거 말이죠, 거절하는데 안 들어서……."
"유부남이 돼도 인기는 변함 없다니, 능력 좋네-."
"아까부터 그 얘기 하는데 안 믿어요."
그야 안 믿겠지. 긴토키는 웃었다. 벌써 소고 품에는 어쩔 수 없이 떠안게 된 포키가 한 가득이다. 예상대로. 소녀들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라 그런지 상품 포장만 되어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다 형형색색의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정성스럽게 바구니나 박스에 들어있는 것도 있다.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불쌍하기도 하지만, 본인 만족이니 뭐 됐나. 긴토키는 바구니를 몇 개 집어 포키를 가득 채웠다.
"긴토키 씨?"
"소고군, 튄다."
한 손에 바구니를 두개 들고, 소고의 손에 바구니 하나를 억지로 들려준 긴토키는 빈 손으로 그의 빈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전력 질주. 얼빠진 소리를 내며 넘어질 뻔 하는 소고. 하지만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겨우 참사를 면한 그는 망설이면서도 긴토키의 뒤를 따랐다. 뒤에서 소녀들의 높은 목소리가 들린다. 단순한 비명인지 자신을 향한 매도인지 알 수가 없다. 몇 명인가 포기 못 한 소녀들이 뒤쫓아온다. 하지만 남자, 그것도 긴토키와 소고를 달리기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곧 뒤에 소고에게 줄 포키를 든 소녀의 모습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서서 숨을 고른다. 정신 없이 뛰어서 몰랐지만, 어느새 대로를 벗어나 파칭코 거리 뒷골목으로 와있었다.
"대체, 뭐에요?"
"응? 뭐냐니…… 포키랑 소고 군 수거."
수거라니……. 소고는 아직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찌푸렸다. 갑자기 나타났다 싶었더니 포키를 챙겨서 도주. 해적도 아니고. 물론 그 소녀떼에게서 구해준 건 고맙지만.
"소고 군, 이거 전부 나 주라."
"이거 전부…… 포키요?"
"응."
"뭐, 난 별로 안 먹으니까 상관 없지만요…."
진짜? 땡큐. 그렇게 간단히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바닥에 둔 바구니를 뒤적이기 시작하는 긴토키. 소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봤다. 아까부터 행동이 안 읽힌다. 뭘 하고 싶은 거야? 바구니 두 개를 뒤적뒤적하던 긴토키가 그 중 한 통을 꺼내들었다. 포장지로 한 번 싸고 리본을 붙였을 뿐인, 심플한 포장이었다. 긴토키가 그것을 뜯기 시작했다.
"이제 내 거니까 먹어도 되지?"
"맘대로 하세요."
포장을 뜯고 포키를 꺼낸다. 그것을 하나 들고 긴토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고의 손을 잡는다.
"포키 게임 하자."
"……네?"
"포키 데이니까, 포키 게임 하자."
"당신이 먼저 그런 소릴 다 하고, 별 일이네요. 발렌타인 데이 때도 안 그랬으면서…… 포키 엄청 좋아해요?"
"응- 그렇다기보다는 포키 게임을 할 기분이랄까."
어떤 기분이에요. 소고가 피식 웃었다. 그것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긴토키가 포키를 입에 물었다. 소고가 다가온다. 그 끝을 물었다. 게임 시작. 양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과자를 입에 넣어버린 덕에 포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췄다. 입술이 맞닿는다.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은 계속된다. 제대로 씹히지도 않고 입 속에 있는 포키가 혀에 닿는다. 둘 다 마찬가지. 소고의 손이 긴토키의 허리를 감싸고, 긴토키가 그의 어깨를 안았다. 혀의 움직임과 타액으로 포키가 입 안에서 흐물흐물하게 변한다. 결국 처음에 누구 입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포키를 목구멍으로 다 넘기고 나서야 입술이 떨어졌다. 게임 끝.
"무슨 맛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그럼 더 할까?"
"……진짜 웬일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음- 있다면 있지."
긴토키가 그대로 소고를 끌어안았다. 놀라서 잠깐 굳었다가, 이내 소고가 긴토키의 등에 팔을 둘렀다.
"소고."
"왜요?"
"사랑해."
지금 여기 있는 너와, 지금의 네가 내게 주는 행복과, 그걸로 행복한 나를.
"……뭐에요, 그게."
소고가 웃는 게 몸의 떨림으로 전해졌다. 긴토키는 가만히 소고를 안는 팔에 힘을 줬다. 그만큼 소고의 팔에도 힘이 들어간다. 아, 실패했다. 어디 앉을 수 있는 데로 갈 걸. 서있으면 오래 이러고 있지 못하는데.
"오늘은 긴 상이 지금 행복하다는 걸 증명하고 또 증명하고 또 증명하는 날이란 거다."
"뭔진 모르겠지만, 당신 좋을대로 해요.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는데요?"
"일단…… 포키 한 통 정도만 긴상이랑 포키 게임."
"중간에 내가 발정 안 한다는 보장은 못 해요."
"그건 안 돼. 넌 H 하면 인정사정 없이 S라 행복한지 어떤지 실감이 안 된단 말이야."
에-라며 소고가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 이거 한 통 다 먹을 동안 키스만 하라구요? 그건 돼요?"
"돼."
"신종 고문이에요……?"
"평소에 너랑 할 때 내 기분이 그러니까 좀 참아. 그리고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카구라랑 놀아야 돼. 포키 잔뜩 갖고 와서 놀아주기로 약속했어."
요는, 소고와 적당히 러브러브 하고 카구라랑 놀 수 있으면 행복하다는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이 남자는. 단세포 생물도 아니고.
"……너 지금 나한테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 하지 않았냐?"
"기분 탓이에요."
"아냐. 했어. 확실해. 벌로 포키 게임."
"이미 벌이에요……?"
소고에게서 떨어져 아까 뜯은 봉지를 손에 쥐는 긴토키. 본격적으로 할 심산이다. 아- 이거 진짜 고문이네. 소고는 새 포키를 입에 물고 자기 쪽을 보는 긴토키를 보며 생각했다.
게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