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그래서 오늘은 「友」자를 썼습니다.
2009.07.02. 작성
긴토키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오키타와의 통신이 있은지 사흘만에 그가 돌아온 것이다. 말하기를 "당신이 보고 싶어서 얼른 다 해치워버리고 왔어요"란다. 반란군 진압이니 치안 유지니 하는 임무가 '해치워버릴' 수 있는 성격인지는 의문이지만, 긴토키에게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랄까,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오키타가 눈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으니까.
아침 비행기로 오키타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바람처럼 신센구미 둔소로 달려가 재회의 기쁨과 감동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보니 벌써 조금 있으면 자정이다. 못한 것(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도 할만큼 했고, 하루종일 카구라 상대를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려, 늦었지만 그는 해결사 사무소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카구라는 램수면을 넘어 깊이 잠들어 있겠지만 긴토키가 없을 땐 졸린 눈을 비비면서 기다리고 있는 일이 잦으니 오늘도 그럴지도 모른다.
지나친 노동으로 피곤하기도 하니 카구라 안아주고, 안녕히 주무세요 츄-하고 자야지. 적절한 피로와 오키타를 만났다는 기쁨이 계속되고 있어 아주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긴토키는 퀵스텝이라도 밟을 듯이 들떠서 해결사 사무소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렇다.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긴토키.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어린 자식을 둔 어미가 이렇게 늦게 다니면 쓰냐."
"여어, 긴토키. 랑데뷰는 잘 즐기고 왔냐?"
"아하하하하하하! 킨~토키! 오랜만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해결사 사무소 거실 소파에 모여앉아있는 세 사람을 보기 전까진.
友 : 벗 우
①벗 ②우애가 있다 ③벗하다
"……왜, 너희가 여기 있냐?"
거실의 참상(단순히 세 사람이 앉아있는 것 뿐이지만)을 보고 잠시 굳어있던 긴토키가 겨우 꺼낸 말이었다.
"사카모토 녀석의 연락을 받고 왔다."
"나도."
"아하하! 간만에 지구에 와서 오료 쨩한테 가니까, 오타에 쨩이 킨토키가 결혼을 한다고 하잖아! 그래서 내가 다 불러모았지. 아하, 아하하하하하하!"
오타에, 쓸데없는 소릴……! 긴토키는 머리를 감싸고 싶었다. 신파치에 말에 따르면 그녀가 오키타와 긴토키가 사귄지 얼마 안 됐을 때 고민하던 카구라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하지만, 동시에 긴토키와 오키타의 연애를 재밌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사귀기 시작한 후에 타에를 볼 때마다 놀림 받았다. 그런 타에니까, 사카모토에게 '긴토키가 결혼을 한다'라는 사실만을 알렸을 리가 없다. 분명히 상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귀게 됐는지, 연애를 어떻게 했는지, 주위의 평가가 어떤지, 그들에 대한 소문이 어떤지 등등 온갖 쓸데없는 소릴 했을 게 분명하다.
아니, 그건 그렇다고 쳐도.
"왜 너까지 여기 있는 거야? 타카스기."
"아?"
얼굴을 보는 건 베니자쿠라 사건 때 이후 처음이다. 그 때 분명히 즈라와 함께 녀석을 상대로 꽤나 살벌한 소릴 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거야? 즈라도 즈라다. 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옆에 앉아있는 건데?
"아하하! 킨토키의 경사를 축하하러 온 거니까 절대 싸우면 안 된다고 내가 약속을 받았거든!"
"뭐, 그렇게 된 거다."
"나도 처음부터 싸울 생각은 없었다. 이 녀석 일은 이 녀석 일이고, 오늘은 네 일로 모인 거니까. 남의 잔칫집에 가서 싸움판을 벌일 순 없지."
……그래. 배려심에 눈물이 다 나는구나.
"킨토키도 그만 서있고 앉지 그래?"
"음. 맞는 말이다. 오늘은 널 축하하기 위해 모였으니까 네가 앉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
"주인공님이시니까 말이야."
평소대로 머리가 빈 것 같은 사카모토와, 진지한 표정의 카츠라, 그리고 긴토키를 놀리러 온 게 확실해 보이는 타카스기.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타츠마, 네가 집주인이냐? 왜 네가 나한테 자리를 권하는 건데? 할말은 많지만 일단 참고, 긴토키는 사카모토 옆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카츠라.
"설마 킨토키가 우리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할 줄이야! 아하하하하하!"
"동감이다. 연애에선 실패만 하고 근래에는 도통 여자도 생기지 않아 결혼은 한참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만."
"여자가 안 되니까 남자로 내달릴 줄은 몰랐지."
히죽히죽 웃고 있는 타카스기. 역시 놀리러 온 거다. 그야 상식적으로 남자(그것도 미성년)랑 결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하지만 설마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을 고를 줄이야……. 긴토키, 아무리 반려라고 해도 전우를 팔아넘겨서는 안 된다."
"넌 굳이 내가 안 팔아넘겨도 금방 잡힐 것 같다만."
"긴토키, 조만간 오가사와라를 쓸어버릴 건데 그 때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결혼 축하하러 와서 살인 예고냐?! 그리고 오키타군은 그런 걸로 안 죽어, 멍청아."
잠시 침묵. 앗차…… 무심코 속마음이…….
"큭…… 크큭, 후, 후하하하하하! 그래, 애인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시구만."
"아하하하하! 뜨겁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음. 부부간 금슬이 좋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녀석들 역시 그냥 쫓아낼 걸 그랬어…….
"어이. 지명 수배 테러리스트가 둘에 유니버설 무역 회사 사장님이 이렇게 다 모여 있어도 되냐? 빨리빨리 집에들 가."
"아하하! 오늘은 중요한 거래니까 괜히 같이 가서 방해하지 말고 지구에 박혀있으라고 무츠가 버리고 갔어! 아하하하하하하!"
웃으면서 얘기할 일인가.
"그럴 줄 알고 손을 써뒀다."
"아니, 뭘……?"
"타케치에게 명령해놨으니까 지금쯤 오오에도 유원지에서 방화와 인질극이……."
"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긴토키는 황급히 리모콘으로 TV를 켰다. 하나노 아나운서가 긴급 취재를 나와있었다. 불바다가 된 오오에도 유원지. 비명 소리로 아나운서의 말조차 잘 안 들린다. 그리고 뉴스 헤드라인은 '오오에도 유원지, 한방중의 인질극! 배후 세력은 양이단체 귀병대?!'.
"즐거워 보이지?"
"타카스기. 긴말 안 할 테니까 안과, 내지는 정신과에 가라."
"옳은 말이다. 타카스기, 넌 늘 너무 과격한 것이 문제다. 자고로 급격한 변화는 혼란만을 초래하는 법. 혁명이라 함은 그것이 일어나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쯤 에도 은행을 털고 있을 엘리자베스처럼……."
"그냥 은행 강도잖아! 니들 테러리스트면서 막부에 테러는 안 하고 뭐하고 싸돌아다니는 건데?!"
"여흥."
"얼마나 막대한 인명 피해를 수반한 여흥이냐!"
"즐거워 보이지?"
……선생님, 우리의 시작은 다 같았을 텐데 어디서부터 틀어져버린 걸까요. 긴토키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친다. 정말 지친다. 즈라 녀석 하나만 있어도 피곤한데 거기에 타츠마, 급기야는 타카스기까지. 보케가 셋에 츳코미가 하나라니, 뭐야 이 밸런스는. 운영진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밸런스 조정 패치를 내라.
갑자기 드륵 하고 벽장문이 열렸다. 한곳으로 집중되는 시선. 벽장문을 열고 눈도 제대로 안 뜬 카구라가 나오고 있었다.
"리더?"
"으응……."
"카, 카구라……. 미안, 깨웠어?"
"응…… 긴 쨩이다 해……."
한쪽 눈을 비비면서 긴토키를 보고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카구라. 그에게 다다른 아이가 팔을 뻗었다. 그 뜻을 알고 긴토키가 허리를 숙여 아이를 안았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다 해……."
"응, 다녀왔어. 늦어서 미안해."
"흐흥……."
희미하게 웃는다. 아이는 입을 크게 벌리면서 하품을 하고는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봤다. 카츠라. 사카모토. 타카스기. 응……?
"……이상한 꿈이다 해."
사카모토와 카츠라야 어쨌든 타카스기까지 함께 있는 너무나도 현실감 없는 광경에, 아이는 그것을 꿈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다시 눈을 비비는 아이. 그리곤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럼 긴 쨩은 아직 안 온거냐 해……?"
"아니…… 왔는데……."
"으우……."
졸린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 자고있는데 왜 졸리냐 해……? 뭐 좋다 해……. 마미- 안녕히 주무세요다 해."
"응, 잘 자."
"흐흥~."
비몽사몽한 상태로 긴토키 뺨에 입을 맞추는 아이. 긴토키는 반사적으로 그런 아이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만족했는지 작게 웃는다. 인사를 끝내고 긴토키에게서 떨어진 카구라는 휘적휘적 걸어서 다시 벽장으로 돌아갔다. 탁 소리나게 벽장문이 닫혔다.
"신센구미 1번대 대장이란 자도 내 생각보단 마음이 넓었던 모양이군. 자식까지 있는 이런 아저씨를 거둘 줄이야."
"아니, 응. 이제 됐어. 이제 일일히 츳코미 안 넣기로 했어."
참고로 마음이라면 별로 안 넓다.
"아아, 자식이라고 해서 생각났다만. 실은 결혼 선물을 가져왔다."
"진짜?!"
"아하하! 당연하지! 결혼 축하하려고 모인 거니까! 아하하하하!"
지금까지 들은 소리 중에 가장 반가운 말이다. 그럼 먼저 나부터, 라며 테이블 밑을 뒤지는 카츠라. 이윽고 이사할 때 쓰는 박스 같은 걸 꺼내 올려놨다.
"기왕 선물로 주는 거라면 실용적인 걸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많이 고민하고 골랐다."
"맛스틱 신발매 맛 같은 거 아니지…?"
"물론 아니다. 먹고 싶긴 하다만."
먹고 싶은 거냐. 츳코미를 속으로 삼키고 긴토키는 카츠라가 내미는 상자를 받았다. 별다른 포장도 없이 그냥 테이프로 봉인되어 있다. 예의 차릴 사이도 아니니 뜯어봐도 상관 없겠지. 그는 테이프를 뜯었다. 직직하고 종이가 접착제와 같이 뜯겨나가는 소리. 그는 상자를 열었다.
……이건…….
"가족 계획은 계획적으로 하는 것이 최고다. 물론 다산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해서, 피임 도구와 피임약이다. 약사는 피임약보다는 콘돔을 추천한다고 하더군. 아, 물론 노콘돔파라면 되도록이면 질내 사정을 피할 수 밖에 없다만. 어쨌든 콘돔의 사용법은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생각하고, 피임약은 약국에 물어 가장 좋다고 하는 걸로 사왔다. 아무래도 요즘 나오는 것들은 적은 에스트로겐으로 호르몬을 조절해 기존 제품보다 더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줄었다고…… 거헉!"
긴토키의 발이 카츠라의 머리를 테이블에 박았다. 쩌적하고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게 테이블인지 카츠라의 머리인지는 알 수 없다.
"아하! 아하하하하! 즈라가 안 움직이네!"
"여전히 대단하구만, 긴토키. 즈라 녀석이 수행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웃을 일도, 감탄할 일도 아니다.
"그럼 다음은 난가. 키지마."
"넵!"
갑자기 위에서 툭 떨어지는 소녀. 하지만 착지가 불안정했는지 "응갹?!"이란 괴성을 지르며 그다로 바닥에 넘어졌다. 통칭 붉은 탄환이라 불리는 귀병대 총의 명인, 키지마 마타코. 넘어지면서 부딪친 엉덩이를 문지르던 그녀는, 덕분에 초미니 스커트 안이 다 보인다는 걸 깨닫고 얼른 일어섰다. 헛기침을 한 번.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 마타코, 신스케 님을 위해서 지붕 위도 마다 않고 다리가 저리지만 열심히……."
"준비해온 걸 녀석에게 줘라."
"아, 넵!"
대답하고 뒤에서 상자를 꺼내는 마타코. 어디서 꺼낸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긴토키는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포장은 그녀가 한 것인지 붉은 포장지에 하얀 리본이 묶여있었다. 일단 겉포장만큼은 카츠라보다 낫다.
"신스케 님이 직접 주시는 결혼 선물임다!"
"열면 폭발하는 건 아니지……?"
"지금 열면 내가 말려들잖아."
안 말려들 경우엔 보낸단 거냐. 긴토키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끼며 리본을 풀었다. 포장한 장본인이 바로 앞에 있는 만큼 나름 주의깊게. 포장을 다 풀고 상자를 연다.
…………이건………….
"즈라 녀석은 뭘 모른다니까. 늙으면 할 수 없는 온갖 재미를 볼 수 있는 건 신혼 때 뿐인데 피임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녀석은 안 되는 거다."
크기별로 모양별로 색깔별로 다양하기도 한 바이브, 딜도, 로터. 구에 약품을 넣어 전부 다른 효과를 낸다는 온갖 종류의 개그. 굵은 것부터 가는 것까지 총천연색의 비즈. 개목걸이 몇 개와 정조대 서너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매우 의심스러운 링 약 10개. 어디에 하는지 상상하기도 무서운 피어스 세트. 물약과 젤이 들어있는 유리병 예닐곱병. 형태 한 번 다양한 수갑 세트.
"사실 코스프레 세트로 해야할지 이걸로 해야할지 고민했다만 역시 좀 더 메이져한 쪽이……."
"이거의 어디가 메이져어어어어어어어어어?! 타카스기군, 잠깐 영어 사전 꺼내서 major가 뭔지 찾아볼래?!"
"역시 기뻐할 줄 알았다."
"뭘 뿌듯한 표정으로 씩 웃는 건데?! 안과 아니면 정신과 좀 가라고!"
"신스케 님께 그 무슨 무례한 소릴!"
"넌 빠져, 이 아가씨야! 저 흉측한 걸 그렇게 예쁘게 포장한 거냐? 응? 뭐니, 그거. 신종 플레이?!"
아 정말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멀쩡한 놈이 없다. 이런 놈들이 일본을 바꾸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나라 앞날이 막막하다. 긴토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유용하게 써라."
"쓰겠냐아아아아아아아!"
긴토키의 킥. 하지만 타카스기는 간발의 차로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드르륵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신스케, 슬슬 갈 시간이오."
귀병대 검사, 카와카미 반사이였다.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지만 그의 눈이 긴토키 쪽으로 움직였다.
"아아, 시로야샤인가. 결혼한다는 소리 들었소. 축하하오. 결혼식에 축가라도……."
"필요 없어!"
"유감이오."
별로 유감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신스케."
"아아."
우아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타카스기. 긴토키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걸 지켜봤다.
"아아, 맞아. 긴토키."
"뭐야? 또 시덥잖은 소리면 진짜 날려버린다."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써보도록……."
긴토키의 발에 맞아 타카스기가 현관으로 날아갔다. 비명 하나도 안 지른다는 게 마지막 자존심인 모양이다. 반사이가 타카스기를 받고, 마타코가 "신스케 님!"이란 비명을 지르며 뒤쫓았다.
"그럼 실례했소."
의식이 없는 타카스기를 대신해 인사하는 반사이. 마타코는 타카스기를 때린 긴토키가 미운 건지 매서운 눈으로 한 번 쏘아보더니 반사이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과 시체와 다름 없는 한 사람이 떠난 직후, 다른 한 사람이 현관으로 들어왔다.
"실례하지."
"오오! 무츠! 거래는 잘 끝났나?"
"네가 없어서 무사히 끝났다."
"아하하하하하하! 그거 다행이구만!"
그러니까 웃을 일이 아니래도. 긴토키에게 눈인사를 한 무츠가 거실로 들어왔다.
"부탁한 물건이다."
"아하하! 수고 끼쳐서 미안하구만 그래!"
카츠라와 타카스기의 것을 두 배로 만든 정도로 큰 상자였다. 또 안 좋은 예감이 든다.
"킨토키! 내가 주는 결혼 선물이다!"
"……즈라에게 줬던 외계 생물체 같은 건 아니지?"
"아하하! 물론이지!"
웃으면서 말하지만 어떨런지……. 긴토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상자를 뜯었다.
………………이건……………….
"즈라도 타카스기도 멀리 볼 줄을 몰라서 큰일이라니까! 아하, 아하하하하하!"
보행기. 아기옷. 아기 신발. 아기 머리띠. 아기 물컵. 아기 수저. 아기 턱받이. 아기 쪽쪽이. 그 외에 온갖 육아 용품들.
"남자애가 태어날지 여자애가 태어날지는 모르지만 기왕이면 여자애가 태어났으면 하는 내 바람을 담아 전부 핑크로 맞춰왔다! 사내 자식은 키우면 여기저기 부러지고 싸움질이나 할 줄 아니까 귀여운 여자애가…… 크헉!"
긴토키는 인정사정 없이 발로 사카모토의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이번에는 콰직하는 소리가 났지만 뭐가 아작난 건지는 알 수 없다. 머리에서 피를 분수처럼 흘리면서도 "아하, 아하하하하"하고 웃고있는 사카모토. 호러다.
"조용히 시킬 수고를 덜었군. 고맙다."
감사 받을 일은 아니었다. 대장이 유령의 집에 있는 오브제 같은 상태가 됐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무츠는 담담히 그를 부축했다.
"늦은 시간에 우리 바보가 실례가 많았다. 그럼."
사카모토를 끌고 현관으로 향하는 무츠. 무츠가 더 키가 작아 필연적으로 사카모토의 발이 땅에 질질 끌렸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이내 무츠가 현관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닫힌지 1분도 안 돼 다시 문이 열렸다.
「카츠라씨 여기 있나요?」
왠지 모르게 온몸을 검은 타이즈로 감싸고 복면을 쓴 엘리자베스였다. 더할 나위 없이 은행 강도틱하다.
"이쪽 시체를 말하는 거라면 아마 맞을 거다."
흰자위를 드러내고 게거품을 물고 있는 카츠라를 가리키는 긴토키. 엘리자베스가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주인을 부축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과 한 마리(?)는 현관문을 나가 어둠으로 사라졌다. 거실에는 긴토키와, 처치 곤란인 상자가 세 개. 그는 쩍 갈라진 테이블과 거기 남아있는 혈흔, 그리고 푹 패인 바닥과 역시 거기에도 남아있는 혈흔을 보고 한숨지었다. 뒷처리 해야할 게 너무 많다. 그것도 카구라가 일어나기 전까지 해치워야할 게. 그는 친구들을 향한 매도를 쏟아내며 청소를 시작했다.
다음 날, 처치 곤란인 상자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감이 안 잡혀서 일단 방에 두자 오키타에게 발각당했다. 세 개의 상자를 뒤엎어서 하나하나 다 구경한 그는 아주 즐거운 듯이 긴토키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은 친구들이네요."
뭐라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