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래서 오늘은 「百」자를 썼습니다.
2009.02.05. 작성
아침에 잠에서 깬 오키타는 일어나기가 무섭게 방 벽에 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가 있고 그 밑에 자기 글씨로 메모가 있는 걸 보고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글씨를 만지자, 얼마나 힘줘서 썼는지 종이가 펜에 눌린 게 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 정도로 중요한 날이었다. 오키타에게 있어서는.
사실 저걸 달력에 표시할 때도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다. 애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속으로 기억하(고 나중에 그걸 잊어버리)는 타입이지 절대 따로 메모하는 타입이 아닌 것이다, 오키타 소고는. 그리고 혹시라도 그 메모를 다른 대원들, 주로 히지카타가 봤다간 무슨 소릴 할지……. 결국 오키타의 타협안은 그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메모를 남기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 메모는 다른 사람이 보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알파벳으로 써있었다.
생각해놓은 건 많았지만 몇번을 고쳐도 역시 제일 처음에 떠올렸던 게 가장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키타는 오늘 자기 계획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땡땡이 친다고 뭐라 그럴 히지카타를 어떻게 따돌릴지를 생각한 후에 목을 가다듬었다. 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이젠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해봤지만 이번만은 연습이 필요했다.
"나리, 유원지 안 갈래요?"
百 : 일백 백, 힘쓸 맥
①일백 ②여러 ③백 번 ④힘쓰다(맥)
몇달만에 긴토키와 다시 찾은 오오에도 유원지는 여전히 평일엔 한산했다. 아직 소풍 시즌이라기엔 이른 시기라 노란색 원복을 입고 줄지어 다니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많으면 귀찮기만 하니까 이쪽 형편은 좋지만서도…….
"유원지라니 오키타 군, 중딩도 아니고……."
옆에 서있는 연상의 연인은 아직도 저런 소릴 하고 있었다. 사람이 큰맘 먹고 유원지 가잔 얘길 꺼냈는데 거기다가 "에-"라며 시원치않은 반응을 보인 사람이다. 그걸 겨우 설득시켜서-협박과 유혹과 애교로 꼬셨다.- 끌고왔더니 아직도 저 소리다. 그야 이 사람은 오늘이 무슨 날이고, 오키타가 무슨 생각으로 데려왔는지 모르니까 저런 소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상처 받는다.
"가끔은 괜찮잖아요? 그리고 기왕 온 거 재밌게 놀자구요, 그런 소리 말고."
"미안한데 오키타 군, 나 너랑 유원지 간 거 거의 트라우마거든?"
그야 그럴만도 하다. 오키타에게 끌려서 롤러코스터, 워터 라이드, 자이로드롭을 몇 번이나 타게 되질않나 토끼귀를 쓰고 다니게 되질않나 유령의 집에 가질않나 종국에는 관람차에서 정신병자랑 한판하게 되질않나…….
"뭘요, 즐거운 데이트였잖아요."
"긴말 안 할 테니까 당장 병원에 가봐라. 그리고 데이트 아냐."
"나한테는 데이트였어요. 나리와의 첫데이트."
희미하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이 사람이 보기엔 그냥 같이 땡땡이친 것뿐이겠지만, 이쪽은 기념할만한 첫데이트였다. 긴토키가 무서워하는 귀중한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토끼귀도 씌워봤고, 귀신의 집에서는 속여서 안아도 봤고, 관람차에서는 이 사람의 마음을 확신하게 됐으니까. 그 후로 여러 일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오키타 안에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긴토키는 오키타를 내려다보다가 휙 시선을 돌리고선 머리를 긁적였다. 바보가. 뭘 그렇게 행복한 표정 짓는거야? 데이트 정돈 그 후로도 질리도록 했고, 유원지도 이제 갈 생각만 있으면 언제든 둘이서 갈 수 있는데. 아- 아- 이상한 데서 사고가 순정파라니까. S 주제에. 마왕 주제에. 긴토키는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그대로 내려서 오키타의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는 평소 카구라에게 해주는 것보단 좀 더 난폭하게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리?"
"기왕 온 거 재밌게 놀자며? 안 가?"
아, 웃었다.
오키타는 멍하니 긴토키를 올려다보다가, 그를 따라 쑥스러운 듯이 웃고는 "네"라며 끄덕였다. 반칙이다, 이거. 긴토키는 얼른 자기 손을 잡고서 앞서나가는 소년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녀석이 앞장서서. 지금 건 위험했다…… 뺨에 열이 오를 정도로.
하지만 둘의 그런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
"뭐가요?"
"왜, 하필……."
그들은 또 유령의 집 대기열에 서있었다.
"나 이거 좋아해요."
"아니, 넌 좋아할지 몰라도 긴 상은 아니니까요. 긴 상 별로니까요, 이런 거."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요. 이따가 나도 나리가 좋아하는 거 같이 타줄테니까. 아, 혹시 무서운거면――."
"그런 거 아니거든!"
"그쵸? 설마 나리가 그럴 리가 있겠어요?"
상큼하게 웃는 오키타. 아아, 죽이고싶다. 확 유령의 집 유령 멤버 중 하나로 넣어주고 싶다. 이 망할 꼬맹이, 내가 유령 무서워하는 거 다 알고서…… 거기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절대 긍정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서……! 이 꼬맹이 속 같은 건 다 들여다 보이는데 그걸 못 피해가는 내가 싫다. 나 바보! 나 바보!! 긴토키는 마음 속으로 절규했다.
안 그래도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데 유령의 집은 유난히 손님이 없었다.
"오키타 군,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 계절에 유령의 집은 좀 아니지않아? 3월 초에 유령의 집이라니…… 아직 여름도 한참 남았는데."
"저번에 왔을 때도 11월이었어요."
……아, 이제 꺼낼 카드가 없다. 긴토키는 하는 수 없이 직원 아가씨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란 인사를 들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어라, 여기 리뉴얼했네요."
"헤, 헤에~ 그, 그래? 기기기, 긴 상은 잘 모르겠는데……."
그야 긴토키는 모를 수 밖에 없었다. 저번에 왔을 땐 오키타에게 착 붙어서 진짜로 귀신이 나올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까. 내장이 어땠는지, 어떤 종류의 가짜 귀신들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다를 건 없었다. 저번과 비슷하게 또 귀신이 나올까봐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닌 상태다. 참 발전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키타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무의식 중에 긴토키가 오키타의 대복 자락을 잡은 것이다. 저번이랑 똑같다. 하지만
"나리, 손 잡아요."
"아니…… 나 별로 무서운 거 아냐!"
"알아요. 내가 잡고 싶어서 그래요. 싫어요?"
달라진 건 이제 다른 핑계 안 대고도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오키타의 말에 긴토키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여전히 자기보다 조금 체온이 낮아서 시원한 손이었다. 오키타는 손을 꼭 쥐었다.
"여긴 아무도 안 보니까 나갈 때까지 이러고 있어도 돼죠?"
"……특별히 허락해주지."
"네, 네. 그것 참 감사하네요."
오키타는 소리 내서 웃었다. 긴토키의 손을 끌며 앞장서 걷자 그가 허둥대며 쫓아왔다. 오키타의 등에 딱 붙어서 걷는 긴토키. 뭔가 나타날까봐 두리번거리는 걸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유령의 집으로 데려온 게 역시 정답이었다. 이렇게 벌벌 떠는 긴토키는 웬만해선 볼 수 없다. 오키타는 그게 괜히 기분이 좋아서 일부러 보폭을 크게 해 걸었다. 앞서나갈 때마다 긴토키가 필사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유쾌했다. 평소에는 오키타가 긴토키를 쫓아다니느라 정신 없는데. 굉장히 기분 좋다. 되도록이면 나갈 때까지 이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역시 긴토키를 놀려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오키타는 갑자기 멈춰섰다. 오키타의 등에 부딪쳐버리는 긴토키.
"잠… 오키타 군! 갑자기 멈춰서면 안 되지!"
"……."
"오키타군?"
"나리…… 뭐, 안 느껴져요?"
"에……?"
돌아보자, 거기엔 벌써 얼어붙은 긴토키의 얼굴이 있었다.
"나 사실 아까부터 묘한 한기가 들어서……."
"하하하하한기? 오오오키타 군 감기 걸린 거 아냐? 그그, 그거 말이야…… 화, 환절기…… 니까……."
"……! 나리, 지금……."
"지금…… 뭐? 지금, 뭐? 지금 뭐? 지금 뭐어어어어어?!"
반쯤 울며 오키타에게 매달리는 긴토키. 오키타는 웃음이 터지려고 하는 걸 겨우 참았다. 전에도 그랬지만, 어두워서 정말 다행이다.
"나리,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있나봐요."
"있다니…… 뭐가……? 아, 아하…… 아하하하! 오오오키타 군, 농담도……."
"……."
"……진짜?"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오키타는 속으로 승리 포즈를 취하고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러고보면 귀신은……."
"헤?"
"즐거운 일을 하고 있으면 도망간다고 그러죠."
"에…… 뭐……."
오키타는 조금도 망설이지않고 긴토키의 어깨를 안으며 입을 맞췄다. 당연한 듯이 입안을 범하러 향하는 혀. 갑작스런 침입에 긴토키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틈을 타 그것은 멋대로 그의 안을 휘저었다. 어깨를 안은 손에 힘을 넣어서 몸을 밀착하고, 다른 한손은 허리를 쓸어올렸다. 움찔하고 반응하는 긴토키의 몸. 역시 시각이 쓸모없는 탓에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져 있었다.
오키타는 가만히 웃으며 자기의 혀를 긴토키의 그것과 얽었다. 잠깐 입술이 떨어진 사이에 긴토키의 입에서 뜨거운 숨과 함께 콧소리가 새어나왔다. 한 번 더 혀를 섞고, 점막을 농락해 그 숨을 거칠게 한 후에 오키타는 긴토키의 입술을 핥고서 떨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긴토키. 아직 온통 오키타의 잔향이 남아서, 무의식 중에 그는 손등으로 입술을 지긋이 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긴토키의 눈에 촛점이 돌아왔다.
"……읏! 소고…… 너……! 속였지?!"
"너무하네요. 속인 적 없어요. 내가 언제 '귀신이' 있다고 그랬어요?"
"귀신은 즐거운 일을 하고 있으면 어쩌구 하면서……."
"그냥 그런 얘길 들었단 거죠."
"그럼 키스는!"
"하고 싶었으니까."
안 돼요?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크게 뜨는 오키타. 긴토키는 무심결에 뒷걸음질 쳤다.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을텐데 붉어진 자기 얼굴을 가리면서. 오키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우우웃, 이제 나 너 몰라!"
긴토키는 그 말을 남기고 오키타를 지나쳐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라라, 너무 쑥스러워서 무섭지도 않은가 보네. 오키타는 그런 소릴 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유령의 집에서 나온 오키타는 삐친 긴토키를 점심 식사를 겸한 당분 풀코스로 겨우 달래고 그의 기분이 풀리기가 무섭게 롤러 코스터로 끌고갔다. 긴토키 말하기를, 지옥의 코스터였다. 물론 거기서 끝낼 오키타가 아니었다. 소년은 3번 연속 롤러 코스터를 타 휘청거리는 긴토키를 워터 라이드로 연행했다. 긴토키 말하기를, 스틱스 강을 건너는 배였다. 4번 연속 물에 떠다닌 덕분에 젖은데다 진까지 다 빠진 긴토키였지만, 오키타는 거기에 최후 통첩을 했다.
"오키타 군 바보! 멍청이! 악마! 마왕! S! 너 같은 거 너무 싫어!"
"손 놓을까요?"
"미안, 지금 거 취――………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자이로드롭은 긴토키의 간절한 기도도 전부 무시하고 수직 하강했다.
몇 번인가 비슷한 경험을 반복한 40여분 후, 긴토키는 벤치에 등을 기대고 늘어져있었다.
"……죽으면 기필코 네 배후령이 돼줄테다……."
"그거 좋네요. 나한테서 안 떨어질 테니까 어디 모르는 데 가서 어떤 놈이랑 시시덕대고 있을지 걱정 안 해도 돼고. 이참에 죽여줄까요?"
"오키타 군, 오키타 군. 상큼하게 웃으면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얘 앞에선 무슨 말을 못 한다.
"아- 이제 무리. 긴 상 이제 무리. 집에 가자."
"에에-."
"에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도 어차피 땡땡이 치고 온 거잖아?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걸린다?"
"그거야 그렇지만…."
오키타는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히지카타가 발도해서 쫓아올 거다. 점심도 긴토키랑 같이 먹었고, 조금 있으면 해도 지고…….
"그럼, 하나만 더 타고요."
"또 뭐?"
대놓고 불신의 눈빛을 보낸 긴토키였지만 오키타가 가리킨 것을 보고는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머리를 긁고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확 밝아지는 소년의 얼굴. 그는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는 긴토키의 손을 끌고는 잰걸음으로 걸었다.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람차는 정상 운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고,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나리, 그거 알아요? 관람차란 건 츄-하려고 만든 기구에요."
"바보냐? 그럼 네가 유령의 집에서 한 짓은 뭔데? 유령의 집도 츄-하려고 만든 거냐?"
"그건 허그."
"오키타 군, 좀 더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 핑크뇌."
"뭐어, 핑크뇌라고 못할 것도 없네요. 행복해서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일 정도니까."
방긋 웃는 소년. 긴토키는 고개를 돌려서 창밖을 봤다. 그러니까, 너 말이지…… 그거 반칙이라니까…….
"아, 그러셔. 뭐 그렇게 좋은 일이 있다고……."
"있어요, 좋은 일."
긴토키의 말을 끊고 오키타는 대꾸했다. 이윽고 긴토키의 손에 전해져오는 체온. 오키타의 양손이 긴토키의 한손을 꼭 잡아 들어올렸다.
"나리 손 잡고 싶으면 잡을 수 있고."
그리고 오키타는 그 손을 끌어당겨 긴토키의 얼굴을 가까이 했다. 별로 센 힘도 아니라 저항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남자는 순순히 다가갔다. 코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소년의 얼굴. 깊은 붉은 색. 커다란 눈이 긴토키를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이상할 거 없고."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와서 진홍의 눈동자를 가렸다. 긴토키도 그를 따라 눈을 감았다. 가까웠던 거리가 완전히 줄어들고, 입술에 닿을 뿐인 입맞춤. 부드럽게 애정을 전하는 그것은 특별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나 따스한 것이라, 한참이나 온기를 전하다가 떨어졌다. 여운에 조금 젖어있던 긴토키가 눈을 뜨자, 아까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년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키스도, 맘대로 해도 돼고."
좋은 일 맞죠? 라며 고개를 갸웃하고 웃는 소년. 거기에 "누가 맘대로 해도 된대?"라며 한 마디 쏘아붙여주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긴토키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는 웃고있는 오키타를 가만히 보다가 눈을 감고 한 번, 끄덕였다.
"저번에 왔을 땐,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오키타는 줄곧 잡고 있던 긴토키의 손을 끌어 입가에 갔다댔다. 손가락 끝에 입술이 닿았다.
"난 계속 이러고 싶었어요."
속삭이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였다.
"긴토키."
눈을 뜨면,
"좋아해요."
그 때부터 세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훨씬 더 어른스러워져버린 소년.
"좋아해요."
"……."
"좋아해요."
"너 말이지…… 그런 말은 많이 할 수록 가치가 없어지는 거라구."
"어쩔 수 없잖아요, 말하고 싶으니까."
쑥스러워진 긴토키가 던진 말도 깨끗하게 멀리로 치워버리고.
"정말…… 좋아해요."
마치 기도하듯이 자기의 손을 꼭 잡고 속삭인 말에 긴토키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당신은?"
"……."
"긴토키~."
"내릴 때 다 됐다."
에- 라며 항의하는 오키타. 긴토키가 시선을 피해버린 게 어지간히 맘에 안 들은 모양이다. 남자는 그런 소년의 목소리에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받은 게 있으니까. 긴토키는 다시 오키타 쪽을 향했다. 삐쳤는지 긴토키 손도 놓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나리 치사해" 같은 소릴 중얼거리면서.
"소고."
한 번만 이름을 부르고, 오키타가 자기를 본 걸 확인한 후에 긴토키는 입을 열었다.
'좋아해'라고, 소리도 없이 입모양만으로 전하는 말.
희미하게 입가에 걸린 미소.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긴토키는 아직 제위치에 도착하지도 않은 관람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남겨진 건 멍한 표정의 소년이 한 사람.
"우, 우아아아아……."
오키타는 새빨갛게 변해버린 귀를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해도 저 사람은 못 당한다. 정말 당해낼 수가 없다. 그런 표정으로…… 입모양만으로……. 결국 소년은 직원이 말을 걸기 직전까지 이 말을 중얼거리며 관람차에 앉아있었다. 그거, 반칙.
긴토키와 다시 합류한 것은 유원지 밖이었다. 분수대에 앉아서는 느긋하게 오키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네, 오키타 군. 그렇게 회복하는 데 오래 걸렸어?"
"당신 말이죠……."
긴토키는 소리를 내서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옷을 툭툭 털었다.
"그럼 간다."
"에……."
"오키타 군 둔소로 갈 거잖아?"
"네에……."
오키타는 말을 흐렸다. 말하는 게 좋을까? 오늘이 무슨 날인지. 하지만…….
"나리, 오늘……."
"응?"
"……."
역시 안 하는 게 좋겠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어린애 같은 짓이다. 분명히 이 사람은 그런 거 전혀 신경도 안 쓸테고. 오키타는 입을 열고 망설이다가 결국 다른 말을 뱉었다.
"또 와요, 유원지."
"응. 다음엔 1000일에 오자."
……헤?
"당신…… 알고 있었어요?!"
"몰랐는데, 오늘 오키타 군 행동이 이상하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구."
장난스럽게 웃는 긴토키.
"애구나~ 오키타 군. 별로 이런 거 일일히 기념하지 않아도 앞으로 훨씬 더 오래 같이 있을텐데."
"……알아요."
"그래."
남자는 큰 손으로 소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뒤를 향해 흔들리는 손. 남겨진 소년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분한듯이, 조금은 기쁜듯이 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래도 나름……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온통 지기만 한 기분이 든다.
3월 10일, 오후 5시 16분. 오키타 소고가 사카타 긴토키의 연인이 된지 정확히 100일째 되는 날.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이 불어서 앞서가는 남자의 키나가시 자락과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년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흔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