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히카리 나비팬티
흑(청+화)
비밀번호를 걸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고민했지만 직접 뭐가 나오는 건 아니니 안 거는 걸로.
문제의 나비팬티는 아마 트위터를 뒤지면 사진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쿠로코는 고개를 숙였고, 아오미네와 카가미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뭘?
하지만 대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쿠로코가 고개를 숙이기 전에 꺼내 그들 앞에 내놓은 상자 두 개. 고급스러움과는 별로 연이 없어 보이는 종이 상자는 상품명 및 로고와 함께 그 안에 들은 것을 모델이 입고 있는 모습이 인쇄된 것이었다. 거의 모든 의류 상품이 이와 똑같은 형식으로 포장되어 판매될 터이니 특별하다고 할 만한 점은 없었다. 다만 그저, 바로 그 ‘포장’이 너무나도 충격적일 뿐이었다.
가히 예술적인 곡선을 그리는 하얀 속살. 그것이 여성의 엉덩이라는 건 본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부드러워 보이는 엉덩이가 위에 걸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만큼 속살이 다 보이니 속옷이겠지. 거기까진 알겠다. 그럼 아랫도리에 걸치고 있는 속옷이니까 팬티겠지. 팬티일 거다. 팬티일 텐데…….
‘면’이라기보단 거의 ‘끈’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것은 카가미와 아오미네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팬티’와도 부합하지 않았다. 아니, 속히 말해 끈팬티라고 불리는, 지나칠 정도로 해방감 넘쳐흐르는 속옷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고 어떻게 생긴 건지도 알지만 그것과도 달랐다. 끈팬티처럼 엉덩이 쪽이 아주 휑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히 든든한 면적이 있느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다.
엉덩이 골이 시작되는 부분에 조금 큰 리본이 하나. 그리고 거기서부터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뻗어나가는 몇 개의 끈. 끈은 엉덩이를 가릴 정도의 위치에서 다른 끈과 만나, 일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팬티’의 겉모양을 만들었다. 하지만 겉모양이 일단 존재한다는 것뿐이지, 본래 면이 가리고 있어야 할 부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카가미는 순간적으로 거미줄을 떠올렸으나 잘 보니 상자의 상품명에는 ‘나비 팬티’라고 쓰여 있었다. 거미줄이 아니라 나비 모양이구나, 이거. 나비라고 하고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잘 보니 끈에 레이스도 달려있다.
“테츠…… 이거…… 설마……?”
“입어 주세요.”
역시 그거냐. 주저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문을 뗀 아오미네의 질문에 쿠로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야 이런 걸 주면서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 입어달라는 것밖에 없겠지만. 그건 알지만.
“싫거든?!”
“왜죠?”
“아니, 네가 ‘왜죠?’다! 미쳤어?! 내가 이걸 왜 입어!”
“입어야 합니다! 전 이걸 본 순간 아오미네 군과 카가미 군에게 꼭 입혀야 한다는 사명을 느꼈다고요!”
갔다 버려, 그런 사명감.
“보십시오! 일부러 아오미네 군 건 하얀색으로 사오지 않았습니까!”
“어쩌라고?!”
“입으라구요!”
“싫다니까! 내가 왜 이런, 팬티인지 뭔지도 모를 요상한 걸……!”
“예쁘잖습니까! 걱정 마세요, 아오미네 군이라면 분명히 어울릴 겁니다!”
“안 기쁘거든?!”
흉악한 인상으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아오미네와 거기에 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를 내며 맞서는 쿠로코. 그 기백은 가히 시합 때와 맞먹었으나, 조금도 멋있지 않은 건 왜일까. 카가미는 생각하며 슬금슬금,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밀어 조금씩 두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이대로 밖으로 도망갈 수 있다면 가장 좋을 텐데.
“뭐가 문제입니까?!”
“전부 다다, 이 멍청아! 테츠, 나랑 카가미랑 사귀는 시점에서 별로 정상이라곤 생각 안 하지만 눈 비비고 똑바로 잘 보라고! 나한테! 이게! 어울리겠냐?!”
“네!”
0.1초도 주저라곤 보이지 않는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 강경함에 아오미네는 순간 움찔했고, 쿠로코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히 사람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있던 쿠로코는 잽싸게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과 종이상자를 번갈아 가리키던 그의 손을 냅다 잡아챘다.
“아오미네 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저는 분명히 어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신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아오미네 군의 작고 탄력 있는 엉덩이가 이 정도도 소화 못 할 리 없잖습니까!”
“탄……?!”
“거기에 아오미네 군의 까만 피부에 하얀색 속옷이면 대비가 선명해서 분명히 더할 나위 없이 섹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증합니다.”
“세…….”
“부탁입니다, 아오미네 군. 아오미네 군을 생각하면서 사왔다구요. 한 번이면 됩니다. 한 번만 입어주시면 됩니다.”
네? 라고 쐐기를 박는 쿠로코. 아오미네의 얼굴에는 이미 까만 피부로도 가리지 못할 만큼 열이 올라 있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칭찬의 말들과 낮은 자세로 하는 부탁. 그 말이 전부 쿠로코의 것인 이상, 그를 아오미네가 매정하게 내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아오미네가 카가미 쪽을 보았다. 이미 카가미는 슬금슬금 멀어져 부엌과 거실에 경계까지 가있었으나, 존재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사람은 서로를 놓치지 않았다. 눈이 맞고, 그리고, 카가미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상태의 쿠로코를 너나 내가 말린 적이 있냐? 포기해.
그 순간 아오미네의 푸른 눈이 확실하게 ‘카가미 너 이 배신자’라고 말했으나 카가미는 못 본체했다.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 한 번이다……?”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갈아입혀 주겠다는 쿠로코의 제안을 간신히 뿌리친 아오미네는, 그러나 방으로 도망치려는 것은 붙잡혀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려야했다. 홈웨어처럼 입는 탱크탑 아래로, 기이한 모양의 속옷 한 장. 휑한 뒤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차마 면이 많다고는 말할 수 없는 앞부분은, 본래 속옷이 감춰야 할 중요한 부분을 감추기에 매우 큰 고난과 역경이 따랐다. 아오미네가 어떻게 간신히 가려야 할 부분을 제대로 다 가렸을 때는 거의 울기 직전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이미 볼 것 다 본 사이라지만 아랫도리만 벗고 이런 속옷을 입는 것도, 그래서 제대로 국부를 가리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웠을 터였다. 앞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쿠로코의 시선이 느껴졌기에 더욱.
겨우 속옷 정리를 끝내고 손을 뗀 아오미네가 주저하며 앞을 보자, 하반신을 태워버릴 것처럼 보고 있는 쿠로코가 있었다. 울고 싶다.
“이, 이제 됐지?”
“아오미네 군.”
“또 뭐.”
“뒤로 돌아주세요.”
“아앙?!”
수치사할 것 같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겨우 입었는데도 또 튀어나온 쿠로코의 요구에 아오미네는 거의 반사적으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쿠로코는 거기에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아오미네는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앞으로 서있으면 뒤가 안 보이잖습니까. 그 속옷은 진면목은 뒷태에 있단 말입니다. 어서 뒤로 도세요.”
“입기만 하라며!”
빽 소리 지른 아오미네에게 쿠로코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어린애를 상대하는 것처럼 깊게 한숨을 쉬더니.
“생각해 보십시오, 아오미네 군. 아오미네 군이 ‘마이 쨩 상반신 누드’라고 광고하는 화보집을 샀는데 전부 뒤로 돌고 찍은 사진이라 가슴은 안 보이고 등만 보인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하아?! 그거 사기잖아!”
“네. 지금 아오미네 군이 한 말은, 다 벗어놓고 앞은 안 보여주겠다는 마이 쨩과도 같은 말입니다. 자, 아오미네 군. 어서 뒤로 돌아 주세요.”
그, 그런가……? 마이 쨩에 관련된 비유에 저도 모르게 크게 긍정해버리고 만 아오미네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어서 돌라고 재촉하는 쿠로코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오미네는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어깨는 넓고 엉덩이는 작은, 운동을 하는 남자라면 모두가 이상으로 할 만한 몸은 설사 상반신이 탱크톱으로 가려져 있다고 해서 빛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실용적으로 발달한 어깨, 팔근육, 가슴근육, 복근, 잔근육이 가득한 허리, 그 밑으로 매끈하게 빠지는 엉덩이와 거기서 이어지는 길쭉한 다리. 속살은 팔이나 다리에 비하면 하얀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까만 편에 속했다. 그것은 엉덩이나 국부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위를 지나가는 하얀 끈들. 거기에 달린 레이스. 튼튼한 골반 위를 지나 움푹 들어간 척추가 끝나는 부분에 사랑스러운 리본. 끈 사이로 보이는 단단한 엉덩이. 쿠로코는 마치 시선으로 핥는 것처럼 아오미네의 하반신을 보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얼굴이 붉어지던 아오미네는 결국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버렸다.
“테츠…… 다, 다 봤어……?”
얼굴을 가린 양 손 사이로 막혀서 들리는 아오미네의 목소리에 쿠로코는 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조금 아쉽지만, 뭐 오늘은 새벽까지 계속 볼 테니까…….
“네. 역시 제 예상대로였습니다. 예쁘네요, 아오미네 군.”
결국 아오미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것이었다. 192cm나 되는 성인 남성이 위는 탱크톱, 아래는 정체불명의 끈팬티 차림으로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주저앉는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으나 그러한 시각은 쿠로코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바빴다.
“카가미 군.”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어떻게든 현관으로 가려고 달팽이 마냥 이동하고 있던 카가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순간 목 안에 끌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가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관을 향해 달리는 카가미와, 언제 부끄러워하며 주저앉아 있었냐는 듯 맹렬한 기세로 뒤를 쫓아가는 아오미네. 한 때 고교 최고와 고교 최속이라는 타이틀이 이름 앞에 붙었고,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발전한 두 사람이었으나.
“어딜 도망가!”
“갸아아아아——! 놔 아호미네————!”
안타깝게도, 여전히 순수한 속도로 카가미가 아오미네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엎어져서도 현관을 향하려고 발악하는 카가미와 그걸 위에서 찍어 누르는 아오미네. 거대한 고양이과 맹수 둘이 엉켜 붙어 싸우는 것 같은 박력 있는 광경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한 쪽은 하반신 끈팬티 차림이었다. 그리고 아직 위아래 옷을 다 입고 있는 카가미의 아랫도리를 벗기려고 하고 있었다.
“히이이, 야, 너, 손, 놔! 미친, 야!”
“너 혼자만 안 입고 튀겠다고? 그렇겐 못 하지.”
살인범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서슬 퍼런 아오미네가 기어코 카가미의 바지를 벗겼다. 또 낮은, 하지만 큰 비명소리. 거기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아오미네는 “테츠!”라고 쿠로코를 불렀고, 직후 그의 손에 포장을 다 벗긴 것이-검은색 나비팬티가 쥐어졌다.
카가미의 저항은 가열찼으나(“놔, 이 미친놈아!” “아호미네!” “맛쿠로쿠로스케!” “매미쟁이!” “일주일 동안 벌 유충만 먹인다?!”) 아오미네는 굴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파닥거리는 다리를 붙잡아 거의 잡아 뜯다시피 해서 속옷을 벗기고, 온몸으로 퍼덕거리는 걸 쿠로코와 힘을 합쳐 억누르며 간신히 나비팬티를 입힌다.
저항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땐 카가미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온힘을 다해 저항하느라 열이 오르고 땀까지 배어난 살결. 가빠진 호흡. 난투를 벌이는 사이에 서로 잡아 뜯고 당겨 늘어나버린 탱크톱. 볼품없이 늘어져버린 면 너머로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흉근이 보였다. 아오미네도 자신과 체격이 거의 같은 카가미를 제압하는 건 힘에 부쳤는지 옆에 늘어져 버렸다. 쿠로코는 말없이, 헐떡이는 숨소리 사이로 간간히 서로를 매도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려다보았다.
남자 치고도 특별히 하얀 편에 속하진 않지만 아오미네 옆에 누워있으면 분명히 훨씬 하얗게 보이는 피부. 더 하얀 속살. 하지만 지금은 희미하게 붉은 기가 돌고 땀이 배어있었다. 거기에 선을 긋는 것처럼 지나가는 까만 끈. 조금 비스듬하게 흐트러진 리본이 척추 끝과 닿은 곳에서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 밑에, 언제나 쿠로코가 만족할 때까지 주무르는 곳이,
“……카가미 군.”
“……뭐.”
“왜 가리시나요?”
쿠로코의 시선이 향한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카가미가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둔부를 가려버렸다. 하지만 물음에는 묵묵부답. 거기에 다시 한 번 쿠로코가 이름을 부르자, 그는 조금 입을 비죽 내밀고.
“나, 는…… 어…… 엉덩이…… 크잖아…….”
“……하.”
한숨 같은, 탄식 같은 소리는 쿠로코가 낸 것인지 아오미네가 낸 것인지. 그들은 어렵지 않게, 카가미의 말이 아까 쿠로코가 했던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오미네는 엉덩이가 작아서 어울리지만, 자기는 아니라고.
“흐와아아아아?!”
“아- 확실히 나보단 크네.”
카가미의 기성은 비교적 얌전히 옆에 누워있던 아오미네가 몸을 일으키더니 대뜸 큰 손으로 자신의 둔부를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아귀에 힘을 주어 카가미의 엉덩이를 주무르기까지 했다.
“야이 미친놈아 손 안 떼?!”
“왜? 맨날 테츠가 주무르잖아.”
“쿠로코는 쿠로코고!”
“그런 게 어딨어. 쩨쩨하게 그러지, 힉!”
이번엔 아오미네의 입에서 기성. 그리고 그 원인은 물론, 지금까지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속옷을 입고 있는데도 바로 살에 닿는 게 좋기도 하고 야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잠깐, 테츠, 으히이이이…!”
카가미는 바로 앞에 보이던 아오미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며 그가 고개를 쳐드는 걸 보았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목젖. 아마 밑에서, 구체적으로는 그의 하반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리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오미네의 손에서 힘이 빠졌고,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엔 쿠로코의 손이 들어왔다.
“저는, 작은 것도 큰 것도 둘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보기 드물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쿠로코. 거기에 바보 아니냐고 한 마디 쏘기도 전에 카가미는 그의 손에 두는 익숙한 쾌락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