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호수가 있는 학교였습니다. 얼마나 크냐고 물으신다면…… 음…… 저희 학교 운동장만할 것 같네요. 안에 작은 섬도 있었습니다. 새집이 잔뜩 지어져 있더군요.
학생회관 오른편에 호수가 펼쳐져 있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 공연장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거기서부터 오른편에 호수를 끼고 일주할 수 있더군요. 호수에는 오리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름 모를 새들에, 물속에는 잉어와 자라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다들 다리 난간에 매달려서 물속을 들여다보고 오리들에게 모이를 주느라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는 굳이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고 싶다고까진 생각하지 않았고, 모이로 줄만한 것도 없어서 그냥 있었습니다만.
그리고 사실 그것보단 호수 풍경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네. 풍경이요. ……할아버지 같다뇨. 카가미 군에게 감성이 부족한 겁니다. 됐으니까 들으세요.
호수 주변으로 꽃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었습니다. 분홍빛의 작은 꽃잎이 풍성하게 달리는, 꽤 커다란 꽃이요. 꽃송이 자체는 제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습니다. 꽃잎이 작고 많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떨어지는 양도 많아서, 길이 온통 분홍빛이었어요. 바람이 조금 불 때마다 발치에서 흩날렸습니다. 나무는 적당하다고 해야 할까요……. 호수를 보기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간격으로 심어놓았더군요. 네. 저는 호수 쪽을 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부지 안에 연못이 있는 대학은 많지만, 이만큼 큰 호수가 있는 대학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리를 건너서 공연장 건물을 지나 조금 올라간 곳이었을까요. 거기서 한참이나 서있어서, 저를 못 본 다른 학생들에게 몇 번이나 부딪쳤습니다.
예뻐서요. 풍경이. 분홍빛 꽃잎이 잔뜩 맺힌 나무 사이로 호수가 보이는데, 위치 때문인지 태양의 높이 때문인지 물에 햇빛이 비쳐서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거예요. 눈이 부신 그런 게 아니라, 수면이 하얗게 돼서, 그게 계속 조금씩 흔들리면서……. 마치 그런 호수를 장식하는 것처럼 양옆으로 분홍색 꽃잎이 떨어지는데, 저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도저히 발을 뗄 수 없는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카가미 군을 생각했습니다. 이걸 카가미 군도 보면 좋을 텐데 하고. 카가미 군도 이 풍경을 보고 저와 똑같이, 감동이라든가 감격이라고 하는 그런 감정을 느껴주면 좋을 텐데 하고. 하지만 카가미 군은 그 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봤습니다. 눈을 감아도 그 풍경을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절대 잊지 않도록, 계속. 언젠가 카가미 군에게 말할 기회가 온다면 꼭, 조금도 빠뜨리지 않고 제 감동을 전해서 카가미 군도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쿠로코의 말이었다.
3학년 1학기. 본격적인 수험공부가 시작됨과 함께 학교에서는 캠퍼스 투어 안내문이 배부되었고, 학생들은 각자 원하는 학교를 선택해 하루 동안 교실을 비웠다. 카가미가 선택한 곳은 체육대가, 그 중에서도 농구부가 가장 유명한 사립대. 저번 WC가 끝난 직후에 가장 먼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곳이기도 했다. 쿠로코도 당연히 같은 곳을 선택했으리라고 카가미는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쿠로코가 희망자 목록에 이름을 써넣은 곳은 축산대와 넓은 캠퍼스로 유명한 다른 사립대였다. 그리고 “여기는 제가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카가미 군을 그쪽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한 마디. 결국 입술을 오리 마냥 내밀고 있던 카가미도 뚱하긴 했으니 알았다고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캠퍼스 투어 다음 날인 오늘, 아침 연습 후의 락커룸. 체육관을 비롯한 시설이 잘 되어있는 학교라고 평한 후 카가미가 “네가 갔던 데는?”이라고 물은 데에 쿠로코는 저렇게 대답한 것이었다.
침묵에 휩싸인 락커룸. 물론 그 이유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으나, 다른 이와 조금도 겹치지 않는 것은 카가미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 역시 카가미였다.
“나도…… 코트라든가, 엄청 잘 돼있는 운동장 같은 거 보면서 왜 옆에 쿠로코가 없지 했어.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분명히 엄청 좋다고 말해줬을 텐데. 사진이라도 찍어서 갖고 오면 좋았겠지만, 타카오나 키세는 몰라도 난 그런 거 잘 못 하고……. 설명도 잘 못하고. 응…… 아니, 그러니까…… 쿠로코는 나랑 다르게 그런 거 잘 하니까. 지금처럼. 그리고 아- 네 말대로 난 감성?이 부족하니까 그런 거 잘 모르고. 하지만 쿠로코는 아니니까. 그런 거 보고 예쁘다든가, 감동했다든가 그런 거……. 그런 거를, 느낄 수 있는 게, 나는 못 느끼지만 쿠로코는 느끼는 게, 좋아. 응. 그리고 그걸 보고…… 내 생각, 해주는 것도. 이렇게 말해주는 것도. ……그런 쿠로코가, 좋아.”
농구를 제외하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카가미다. 때문에 그의 말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투가 된 것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 쿠로코가 카가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 전부 귀를 기울이는 것도. 그리고 쿠로코는 카가미가 겨우 말을 끝내고 자신을 본 것에, 1학년이나 2학년들을 희미하게 알 수 있을 만큼, 3년을 함께한 동기들은 그 속마음까지 다 보일 만큼 웃어 보였다.
3년째 세이린을 지탱하는 에이스 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둘만의 세계를 형성한 것에 후배들은 당혹과 곤혹을 감추지 못했고,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서 납득시키면 좋을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후리하타는 생각했다.
이렇게 듣는 사람이 낯 뜨거워서 뛰쳐나가고 싶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면 이제 좀 사귀면 좋을 텐데.